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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참회하는 영웅’ 대장장이 연금술사

등록 2014-08-03 19:58

김정란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김정란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김정란의 판타지소설 ‘두룬’
삼국유사 ‘비형랑 설화’ 바탕
청소년 겨냥한 3권 장편서사
“소설보다는 콘텐츠로 집필”
가슴에 불이 들어 있다. 불의 에너지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입고 온 보라색 원피스는 차라리, ‘마녀’의 표지라기보다는 가슴속 불의 열기를 일정하게 식히려는 차가운 지성의 표식이 아니었을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사회를 향해 전투적으로 발언해온 김정란(사진)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08년 어름 이후 길었던 ‘침묵’과 칩거 아닌 칩거의 시간을 뚫고, 뜻밖에도 판타지 소설을 품고 돌아왔다. <삼국유사>의 ‘비형랑 설화’에 바탕을 둔 ‘도깨비 두룬’의 신화적 서사시 <두룬>(김재훈 그림, 웅진주니어 펴냄)이다. 신라 진지왕과 도화 사이에 태어났다는 아이인 ‘비형랑’이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도 회자되는 도깨비의 원형이라는 데 착안한 소설이다. 주 독자층으로 청소년을 겨냥한 세 권짜리 장편이다.

그는 시 외에 소설의 욕망도 키웠던 걸까? 지난달 28일 만난 김 교수는 “소설이라기보다는 편안하게 콘텐츠다, 이야기다 생각하고 만들었다”고 했다. “콘텐츠란 문화상품이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지향한다. 다양한 플랫폼에 실리도록(멀티 유즈) 하려면 먼저 원 소스를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두룬>은 그런 맥락에서 생산한 콘텐츠다.” 책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초입에 구상하여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던 2012년 탈고했다. 올해야 나온 것은 삽화 작업에 걸린 시간 때문이라고 했다.

<두룬>은 불을 다루어 물질의 본질에 다다라 끝내 금을 만들고,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르는 대장장이요, 연금술사들의 이야기다. 대장장이 연금술사의 신 두룬은 그 무엇보다도 도깨비다. ‘불의 지배자’이다. 도깨비란 말 자체가 ‘돛아비’, 불(돛)을 만드는 사람(아비)이란 뜻이다. <두룬>을 통해 우리는 한 아름다운 영혼의 성장담, 그에 이은 타락과 기나긴 참회의 서사를 실어 나르는 근사한 ‘토종’ 영웅의 탄생을 목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두룬이 우리네 신화나 설화, 전통 영웅서사 속 주인공과 사뭇 다른 점은 바로 ‘속죄하는 영웅’이란 점이다.

“우리 문화는 소위 참회, 속죄의 개념이 대단히 흐릿하고 소극적이다. 이런 점이 나는 고통스러웠다. 왜 우리는 잘못 저지른 사람이 결코 속죄하지 않는가. 성공한 쿠데타라는 끔찍한 개념이 통용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말을 독점한 자들이 진실을 보이지 않게 막고 있기 때문이다. 두룬은 사람들이 진실을 보게 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찢으면서 싸우는 사람이다.”

두룬은 사로국 마룬왕의 혼과 어머니신 유화를 섬기는 신녀 ‘복숭아꽃’ 사이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반인반신. 사로국을 떠나 북녘 대장장이 마을 ‘다다라 마을’에서 자신과 하나의 운명으로 이어져 있는 여주인공 ‘아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니와 함께 연금술사의 최고 단계인 ‘두두리’에 오르는 성장담이 제1권이라면, 자신이 아니라 ‘아니’가 그 마을 촌장이 되고 아니의 리더십에 환호하고 아니를 사랑하는 다다라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질투를 이기지 못하여 비극의 서막을 연다. ‘진실의 집’과 ‘대원칙’의 저주를 받아 두 뿔 달린 흉측한 도깨비 괴물이 된 두룬이 악과 선 사이에서 결국은 자신의 선택을 하는 여정이 제2~3권의 내용을 이룬다.

“문학적 욕망을 누르고 썼다”지만, <두룬>은 도깨비 영웅의 서사를 시적이면서도 쉽고 유려한 문장에 실어 펼쳐놓는 철학적 판타지이자, 동아시아적인 판타지 소설의 한 전범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야차국의 언관들인 ‘뱀의 혀’들이 진실을 보이지 않게 막는 수법을 여러 나라에 수출한다는 설정도 재미있거니와, 두룬에게서 금을 취하려고 갖은 꼼수를 구사하는 “얌체머리 없는” ‘송영감’ 캐릭터는 “이명박 대통령이 모델”이라고 한다. 배꼽에서 실을 꺼내어 옷을 짜는 ‘숭이’, 말을 할 줄 아는 신마 ‘흰구름’, 여우 인간 ‘길달’ 같은 캐릭터가 1000쪽이 넘는 소설을 쉼없이 이끈다. 주인공 두룬과 길달이 공중에서 추는 불의 춤이요 무공 쇼라 할 ‘우정의 연금술’은 두 영혼의 아름다운 성장을 별 총총 하늘에 그려 보이며 소설의 백미를 이룬다.

<두룬>의 시공간은 1천년을 흐른다. 굳이 역사적 시간에 대입한다면 6~7세기 신라 진평왕 대부터 16~17세기 조선이랄까. 소설이 종국에 인물들의 삶과 선택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삶이란 어떤 순간에도 다시 생각하고 다시 살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인간 삶을 의미있게 해준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사람은 본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선인이 되고 악인이 된다.” 두룬은 극한 상황에서 악에 사로잡히지만, 그 광기와 힘(권력)의 쾌락으로부터 종내는 빠져나온다. 두룬의 상대역이자 ‘거악’으로 설정되는 ‘아차’조차도 정의와 진실의 편인 왼손(흰손)과 악과 거짓의 편인 오른손(검은손)을 갖고 태어나 끊임없이 두 손 사이에서 길항한다.

김 교수는 한국 신화·설화를 서양의 그것과 견주어 공부해 오면서 “실은 오래전부터 한국 신화에 기반해 <해리 포터> 같은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고 했다. “해리 포터가 그냥 나온 것 아니다. 켈트 전통이라는, 굉장히 오래된 신화적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라고 왜 안 되겠는가. 철저하게 한국적인 소재를 찾다가 도깨비를 만나게 됐다.” 글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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