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진은영
<문학의 아토포스>
진은영 지음
그린비·2만원 요 몇년 새 시와 정치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가 활기를 띠게 된 데에는 시인 겸 철학자 진은영(사진)이 <창작과비평> 2008년 겨울호에 발표한 논문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 시에 대하여’가 결정적 구실을 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책 <감성의 분할: 미학과 정치>의 짙은 영향 아래 쓰인 그 글에서 진은영은 자신을 괴롭혀 온 “사회참여와 참여시 사이에서의 분열”에 대한 해법을, “문학을 비롯한 예술 전반의 문제는 ‘감각적인 것을 분배하는’ 문제이며 그런 한에서 예술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관계한다”는 랑시에르의 결론에서 찾을 수 있었노라고 토로한다. 시집 이외의 책으로는 진은영의 첫 책이 되는 <문학의 아토포스>는 바로 그 논문과 그 뒤 그가 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쓴 논문 아홉을 묶은 책이다. 진은영이 생각하기에 문학의 정치성은 좁은 의미의 ‘정치’보다 훨씬 근본적인 맥락을 지닌다. 기왕의 문학적 논의에서 ‘문학적’이지 않다고 여겼던 시간과 공간을 문학으로 채우는 것이야말로 진정 정치적인 문학 활동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기존의 문학적 공간을 ‘토포스’(topos, 장소)라 이르는 데 견주어, 부정의 접두어를 붙인 ‘아토포스’(atopos, 비장소)를 그가 책 제목에 넣은 것은 그런 취지에서다. “정체가 모호한 공간, 문학적이라고 한번도 규정되지 않은 공간에 흘러들어 그곳을 문학적 공간으로 바꿔 버리는 일. 그럼으로써 문학의 공간을 바꾸고 또 문학에 의해 점유된 한 공간의 사회적-감각적 공간성을 또 다른 사회적-감각적 삶의 공간성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문학의 아토포스이다.” 이런 서술이 모호하다면 진은영 자신이 참가했던 일련의 문학 퍼포먼스 사례가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동료 시인 및 뮤지션 등과 함께 2010년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매달 철거 예정 식당 ‘두리반’에서 꾸렸던 ‘불킨 낭독회’가 대표적이다. 철거 반대 싸움의 일부였지만 낭독되는 시는 통념상 정치적이거나 민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철거 장소에서의 문학적인, 너무나 문학적이기만 한 시 낭독이 계간지의 얌전한 지면에 실린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의 시 창작보다 덜 정치적인 활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 진은영의 믿음이다. 이 책에서 진은영은 좁은 의미의 정치에 대한 예술의 복속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새로움과 실험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미학적 스노비즘’과도 거리를 두면서, “삶이 예술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다시 작품이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움직임”을 북돋고자 한다. 글 최재봉 기자,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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