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경제학회 ‘21세기 자본’ 연구
한국의 비판적 경제학자들이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집중 검토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비롯한 비주류 경제학 방법론으로 사회경제 이론과 체제 연구를 모색해온 한국사회경제학회(회장 강신준 동아대 교수)는 29일 오전 고려대 정경대에서 ‘<21세기 자본>과 한국 경제’라는 제목으로 여름정기학술대회를 연다.
이번 행사에서는 피케티의 이론과 기존 주류·비주류 경제학을 비교 검토하는 논문들이 여럿 발표될 예정이다. 먼저 ‘피케티의 새로운 점과 오래된 점’이란 제목으로 그의 가설을 사상·이론사적으로 조망하는 홍훈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의 논문이 눈에 띈다. 홍 교수는 피케티가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소득불평등이 심화하고 있으며 이를 완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점을 성과로 인정하고, 피케티의 이론을 기존 소득분배이론과 비교한다. 피케티가 각 세력관계나 협상 등 여러 정치사회적 요인들에 따라 소득분배가 결정된다는 ‘세력관계, 협상이론’을 위주로 하되 부분적으로는 신고전학파와 마르크스의 이론을 결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홍 교수는 피케티가 법과 정책을 통한 소득불평등의 완화를 주장한 점이나 소득과 상속에 대한 누진세를 중시하고 자본세를 주창했다는 점 등이 한계생산성이론을 위시한 신고전학파를 비판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현재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소득결정의 정당성이 부족하고 소득분배가 안정적이지 않다고 본 점도 신고전학파의 이론과 대척점을 이룬다. 그러나 홍 교수는 피케티가 신고전학파 이론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며, 특히 자유무역에 관해 동의를 표시한다고 본다. 생산과 소유, 생산과 분배, 유통을 구분하지 않으려 한 점이 신고전학파와 가까운 점이라는 것이다. 홍 교수는 피케티 이론의 이런 점 때문에 사회 불평등을 증명하는 기본법칙인 ‘자본/소득 비율’이 “금융자본을 포함했다가 생산자본에 국한되었다가 하는 등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한다.
반면, 피케티의 이론에서 ‘역사’에 대한 의존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가깝다고 홍 교수는 분석한다. 특히 “내용적으로 자본의 자기증식, 곧 자본이 내버려두어도 투자돼 수익을 스스로 끌어오는 재생산·증식에 집중한 점, 일단 한번 발생한 불평등이 자신의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는 주장도 마르크스주의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나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중시하지 않는 신고전학파 입장과 대비되는 점이다. 또 자본 자체에 세금을 부과해 관리하자고 주장하고, 자본소득을 불로소득으로 보아 누진세를 주장한 측면 또한 마르크스에 가까운 입장이라며 홍 교수는 이 점에서 피케티의 이론이 “통상적인 경제학자들보다 근원적”이고 “주류 경제학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홍훈 교수>
“소득불평등 완화·자본세 도입
소득·상속 누진세 주창 등 성과
생산과정·작취 고려 안한 과오도”
<류동민·주상영 교수>
“피케티 ‘자본’은 사실상 ‘부’이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 비판 유보돼야”
그러나 홍 교수는 이 책이 일단 ‘변증법적’ 논리와 무관한 점, ‘자본’을 주로 ‘유산’으로 간주하면서 토지와 구분하지 않은 점, 마르크스가 자본이 생산을 통해 가치와 잉여가치를 낳는다고 본 반면 피케티의 경우 자본은 소유를 통해 수익을 가져다준다고 설명한 점이 서로 크게 다르다고 풀이한다. “피케티는 자본 자체 자기 재생산을 인정하면서도 생산과정, 착취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감정노동의 착취도 지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홍 교수는 “r(수익률)>g(성장률)에 근거해 성장률이 높아야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그의 생각은 생산이나 경제활동을 그 자체로 정당화하는 생산주의의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날 ‘피케티 이후의 마르크스비율’을 발표하는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피케티의 자본(capital)은 사실상 부(wealth)”라며 “좌우파를 막론하고 피케티에 대한 비판이 집중되는 부분 중 하나도 다름 아닌 이 자본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자본은 사회적 관계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적 규정에 따를 때, 당연히 피케티의 자본 개념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 또한 이자와 지대를 잉여가치에서 파생된 형태로 간주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피케티에 대한 비판은 유보될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다.
이밖에 이날 학회에서는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스쿨(소아스)에서 마르크스경제학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공회씨도 ‘99%를 위한 경제학인가, 9%를 위한 경제학인가’라는 제목으로 피케티 저작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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