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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예순 넘어 꺼낸 젊은날 ‘어둠 속의 시’

등록 2014-09-16 19:04

이성복 시인(서 있는 이)이 16일 낮 파주출판도시 열화당에서 열린 자신의 출간 기념 모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열화당 제공
이성복 시인(서 있는 이)이 16일 낮 파주출판도시 열화당에서 열린 자신의 출간 기념 모임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열화당 제공
이성복 시인 미발표작 150편 엮어
묵혀뒀던 산문집·대담집도 펴내
“내 첫 시집의 지하실 같은 것
망가진 정신 소생 위한 줄기세포”
“당신은 내 발가락 속으로 파고들어 옵니다./ 청초하던 내가 단풍듭니다./ 당신은 내 발가락 속에서 교태부립니다./ 그러나 이 동네 바람이 내 귓밥을 핥고 있지요./ 당신은 내 발가락 속에서 무좀일 뿐입니다./ 나는 언어를 연마하지요,/ 선배들과 후배들과 함께/ 창녀의 숯불 같은 자궁에서.”(이성복 <정든 유곽에서> 앞부분)

이성복의 1976년작인 이 시는 같은 제목을 지닌 그의 1977년 등단작과는 다른 작품이다. “누이가 듣는 음악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남자가 보였다”로 시작하는 등단작은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에 실렸지만, 같은 제목의 1976년작은 40년 가까이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비로소 빛을 보았다. 이성복이 등단 무렵부터 두번째 시집 <남해 금산>(1986) 사이에 썼던 미발표작 150편을 모아 펴낸 책 <어둠 속의 시: 1976-1985>를 통해서다. 출판사 열화당은 산문집 <고백의 형식들-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와 대담집 <끝나지 않는 대화-시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까지 그의 새 책 세권을 한꺼번에 내놓았다.

80년대 벽두 그가 첫 시집은 단박에 이성복을 한국 시의 아이콘이자 ‘스타 시인’으로 만들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그날>)던 시대의 고통과 치욕을 불온한 언어에 담아 노래했던 그의 시들은 80년대 이후 등장한 후배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70년대 중반부터 10년이 내 문학의 황금기였고 줄이면 78년에서 80년까지, 더 줄이면 1979년이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1979년에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해요. 그 무렵에는 글을 많이 썼는데, 첫 시집과 두번째 시집으로 추려 내고서도 상당 부분이 남아 있었죠. 말하자면 이번 시집은 첫 시집의 지하실과 같다고 할까요.”

16일 낮 파주출판도시 열화당 회의실에서 열린 출간 기념 모임에서 이성복 시인은 ‘지각 출간’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날 모임에는 시인과 대담을 나누었던 후배 시인 이문재·김민정과 박준상 숭실대 철학과 교수, 문단 동료인 소설가 이인성과 평론가 정과리, 계명대 제자들과 두 자제, 고교 동창 그리고 김기덕 감독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이문재 시인은 “1982년 봄 <시운동> 4집에 시를 발표하고서 그해 가을 대구에서 이성복 선생을 처음 뵈었다”며 “그때 선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게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은 한참 뒤에나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첫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에서 제목이 가장 긴 시 <돌은 움직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쓰는 것일까>는 선생님의 첫 시집에 내 나름으로 대항해 보려는 시도였다”고 밝혔다. 고교(경기고)와 대학(서울대 불문과) 후배인 소설가 이인성은 “고교 문예반에서 교지를 편집할 무렵 도서관 앞에서 처음 보았을 때 카프카를 빼닮은 얼굴에서 광채가 사방으로 난반사하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느꼈다”며 “대학 시절 다시 만나 그가 쓴 시를 접하니 그때 그 눈빛 같은 시를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새로 낸 시집에는 <병장 천재영의 사랑과 행복> <병장 천재영과 그의 시대> 같은 연작들이 있고 산문집 첫머리에 실린 장르혼합형 산문 <천씨행장> 역시 ‘천재영’이라는 이름을 지닌 인물에 대한 추억담이다. 시인은 “시든 소설이든 산문이든 글은 하나라 생각한다”며 “글의 사명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말을 받아 김기덕 감독도 “나 역시 영화란 사람을 불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인은 책 출간의 소회를 담아 편집자에게 보낸 글에서 “이번 시집에 묶인 시들이 쓰인 1976~1985년의 기간은 제 정신 성장의 부름켜에 해당하는 시기이지만 그 뒤로도 제 정신은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는 느낌”이라며 “저에게 이 세권의 책들은 이미 예술가로서 망가진 몸과 정신을 다시 소생시키기 위한 줄기세포가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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