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두번째 장편 <저녁이 깊다>를 낸 작가 이혜경.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짐작하게 되는 어떤 것들, 뒤늦게 깨닫는 생의 또 다른 면모”(‘작가의 말’)를 소설에 담고자 했다.
이혜경 20년만에 두번째 장편
2000년대 초까지 세월 갈무리
2000년대 초까지 세월 갈무리
이혜경 지음
문학과지성사·1만2000원 ‘과작의 작가’ 이혜경이 20년 만에 두번째 장편 <저녁이 깊다>를 내놓았다. 1982년에 등단한 그는 그 뒤로 소설집 네권과 산문집 하나를 펴냈지만, 장편은 1995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길 위의 집>이 유일했다. <저녁이 깊다>는 2009~10년 <문학과 사회>에 ‘사금파리’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것을 다듬어 내놓은 작품. 연재가 끝나고도 책으로 내기까지 4년 넘게 걸린 시간이 그의 신중하고 꼼꼼한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소설은 기주와 지표 두 주인공의 시점을 오가며 서술된다. 작가의 고향인 충남 보령으로 짐작되는 지방 소읍의 초등학교 동창인 둘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교와 대학을 거쳐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는 1960년대 중후반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세월이 모두 4부로 나뉜 작품 안에 차곡차곡 갈무리된다. 기주가 상대적으로 넉넉한 집안에 공부도 잘하는 여학생이라면, 전라도 출신임을 감추고자 표준말을 쓰며 등장한 전학생 지표는 가난한 살림에 머리가 좋아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남학생. 여기에다가 지표 못지않게 가난해서 일찌감치 학업을 중단하고 노동을 통해 자수성가하는 병묵 그리고 병묵의 육촌이면서 읍내 제일가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공부에는 소질이 없고 친구들을 괴롭히는 데에만 취미를 붙인 형태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 네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인생 행로를 통해 작가는 자기 세대와 사회의 자화상을 그리고자 한다. 텔레비전 초창기 아이들을 사로잡았던 요괴인간 벰 베라 베로, 가난한 고학생들의 경제적 출구였던 입주과외, 대학가의 학생운동 열기 그리고 90년대 거품 경제의 몰락까지, 작가는 지난 시절의 크고 작은 지표들을 살뜰하게 소설 속에 끌어들인다. 특히 과묵하며 신중하지만 심지가 굳은 기주에게는 작가 자신의 면모가 짙게 투영되어 있다. “어쩌면 늘 이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그 경계에 머무를지 모른다는, 생의 중심으로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가두리에서만 빙빙 돌지 모른다는 예감이 새벽 한기로 몸을 감아왔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경계에 서서, 양쪽에서 날아드는 돌을 맞는 것, 그걸 제 몫으로 할지 모른다는 예감.” 대학 시절 기주가 호기심에 참석했던 학생 집회에서 함부로 편을 가르고 매도하는 선동가의 언설에 등 떠밀려 집회장을 떠나면서 곱씹는 상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 일을 하면서 늦도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그는 지표와 이성 친구로 지내면서 동창들과 사회를 관찰하는 구실을 한다. 그런 그를 90년대 중반 즈음에 만난 지표는 문득 달라진 기주의 면모를 발견한다. “기주의 말 뒤편엔 늘 침묵이 작은 동굴처럼 고여 있었다. 그 동굴이, 기주의 말에서 울림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그 동굴이 메워지기라도 한 듯, 그날 기주의 말은 퍼석거렸다. 기주도 나이가 든 거라고 생각했다.” 지표의 눈에 달라져 보인 기주의 모습만큼이나 이 소설 <저녁이 깊다>도 기존의 이혜경 소설과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시시콜콜한 대사가 많아졌고, 문장의 만듦새에서도 특유의 신경질적인 엄격성이 많이 누그러졌다. 너그러워졌다고나 할까. 그 덕분에 소설은 편안하게 읽히는데, 한편으로는 이혜경만의 고집과 개성이 무뎌진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소설 도입부에서 필통 위에 올린 종이에 연필을 거듭 그어 양각된 무늬를 만들었던 기주는 소설 말미에서는 유리문에 덧바를 종이를 접고 그에 가윗밥을 내어 원하는 무늬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다시 접어서 가윗밥을 내고, 또다시 접어서 가윗날을 댈 때쯤엔 이제 자기가 만드는 게 어떤 무늬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게 아닐까. 자기가 만들면서도 뭐가 될지 모르는 어떤 것, 예측불가인 그걸 만드느라 모두 애쓰는 게 아닐까.” 가난의 운명에 맞서 성실성과 끈기로 일어섰으나 결국 구제금융에 발목 잡혀 자살로 삶을 마감한 병묵은 물론, 온갖 사건 사고가 난무하는 속에서 무탈한 일상을 행복이라 여기게 된 ‘보통 인간’ 지표 역시 삶의 예측불가능성을 온몸으로 웅변하는 존재들이라 하겠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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