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를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마련된 에세이 공모전 선정작을 모은 책 <0416>을 정석구 편집인(왼쪽)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농성중인 유가족에게 전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책 ‘0416’ 나오기까지
한겨레 창간주주 이영구씨
한국사회 갈 길 묻는 글쓰기 제안
공모와 책 출간 위해 1천만원 기탁
고민에 동참한 글 200편 모여
한겨레 창간주주 이영구씨
한국사회 갈 길 묻는 글쓰기 제안
공모와 책 출간 위해 1천만원 기탁
고민에 동참한 글 200편 모여
가을햇살이 따갑던 지난 22일.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앞 농성장에는 여전히 세월호 유족들이 있었다. 참사가 일어나고 <0416>이라는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5개월이 걸렸지만 변한 건 없었다. 이날 농성장을 찾은 정석구 <한겨레> 편집인은 유족들에게 <0416>을 전달했다. “책을 읽어보면 국민들이 여러분의 아픔을 공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라고 위로했다.
“너무 아파서 아프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어요. 누군가 아프다는 말을 대신 해주길 바랐는데 그걸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는 책을 받아들고 엷게 웃었다.
<0416>의 시작은 ‘노란 나비’의 날갯짓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던 5월9일, <한겨레> 창간주주 독자 이영구(82)씨가 신문사를 찾아왔다. 6·25 참전용사인 그는 26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1976년에 예편해 수출기업에서 일하며 ‘산업화’에 기여했다. 80년대에는 데모하러 다니는 아들을 쫓아다니며 의도치 않게 현장에서 ‘민주화’도 경험했다.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에게 세월호 참사는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건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고민하는 ‘글쓰기’였다. 이씨는 글쓰기 공모와 책 출간을 한겨레가 맡아달라며 1000만원을 선뜻 내놓았다.
한겨레는 한시적인 기획편집팀을 꾸리고 ‘한국사회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글을 모았다. 뜨거운 슬픔과 분노, 냉철한 분석과 성찰이 담긴 글들이 속속 도착했다. ‘우리’와 ‘사회’를 걱정하는 마음엔 나이와 공간의 제약이 없었다. 92살의 전직 교사는 떨리는 손으로 꾹꾹 눌러쓴 원고를 보냈고, 14살 중학생은 어머니의 전자우편 계정으로 글을 보내왔다. 독일 베를린과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거주하는 동포도 고민에 동참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 지구촌 곳곳에서 세월호 이후를 걱정하는 이웃들의 글 200편이 그렇게 모였다.
책에 실을 원고를 골라내는 건 출판 과정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 글의 진정성과 완결성, 세월호 참사와의 연관성, 대안의 현실성 등을 고려해 기획편집팀에서 우선 100편을 추렸다. 고명섭 논설위원, 문현숙 문화·스포츠 에디터, 이기준 콘텐츠평가팀 심의위원이 2차 심사에 나서 고심을 거듭한 끝에 총 59편을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이 글들은 책 속에서 ‘잊지 않겠습니다, 2014.04.16’, ‘사람이 중심이다’, ‘이젠 참여와 행동이다’, ‘공동체와 공공성을 위하여’라는 4개의 주제로 묶였다.
글쓰기 제안자인 이영구씨는 심사가 끝난 뒤 200편의 글을 모두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감사의 글’을 이렇게 적었다.
“아주 작은 몸짓이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나비 효과’를 생각합니다. 저의 작은 제안이 여러분의 참여로 한 권의 책이 되고 그 내용이 많은 사람의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간다면, 앞으로 10년 후 우리의 미래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지금 저의 희망이고 꿈입니다.”
한겨레가 지난주 출간한 <0416>은 온라인 서점과 대형 오프라인 서점(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에서 구입할 수 있다. 수익금은 기획 취지에 맞게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사용할 계획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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