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수 작가가 포착한 꽁꽁 얼어붙은 한강 철교 밑을 오가는 사람들. 1956~63년 사이로 추정된다. 각 출판사 제공
고 한영수 ‘서울, 모던 타임즈’
한국전쟁뒤 서울 생생히 담아
고 김기찬 ‘잃어버린 풍경’
강남 개발 광풍 현장 또렷
한국전쟁뒤 서울 생생히 담아
고 김기찬 ‘잃어버린 풍경’
강남 개발 광풍 현장 또렷
잘 정돈된 한강 둔치를 따라 뻗은 산책로, 멀티플렉스 상영관, 스타벅스 등 다국적 커피전문점, 타워처럼 솟구친 주상복합 아파트, 최고급 외제 승용차… 우리 삶을 너무 깊이 파고들어, 오래전부터 항상 존재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하지만 반세기만 거꾸로 눈을 돌리면, “그땐 그랬지. 정말 그랬지”라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우리네 풍경이 있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철교 밑을 자전거로 오가고, 드넓은 백사장이 펼쳐진 한강 물에 ‘께벗고’ 뛰어들던 그 시절. 도로 위로 전차가 달리고, 작은 빗물에도 진창이 되는 길, 부푼 꿈을 안고, 때로는 야반도주하듯 발 디딘 서울역. 그 시리고 아련한 기억을 담은 사진집이 최근 잇따라 출간됐다. 1958년 한국 최초의 리얼리즘사진 연구단체인 ‘신선회’를 창립하고 거리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기 시작한 한영수(1933~1999)의 <한영수-서울, 모던 타임즈>(한영수문화재단 펴냄), 골목 사진작가로 알려진 김기찬(1938~2005)의 <잃어버린 풍경>과 <역전풍경>(눈빛 펴냄)이다.
한영수의 <서울, 모던 타임즈>엔 한국전쟁이 남긴 생채기가 여전했던 1950년대 중후반에서 60년대 초반 서울의 다양한 모습이 담겼다. 어미들은 강둑에 모여 빨래하고, 누이는 잠든 동생을 둘러업고 힘겹게 발길을 옮긴다. 극장과 터미널에선 고교생이 담배 행상을 하고, 러닝 차림의 남자는 허름한 좌판에 짚으로 엮은 달걀 꾸러미를 펼쳐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고, 힘겹게 가족을 지켜낸 우리 어미와 아비, 누이와 형들의 모습이다. <서울, 모던타임즈>에는 또 서울 명동에 들어선 양장점, 세련된 옷차림으로 양산을 쓰거나 중절모를 쓰고 거리와 한강 백사장을 거니는 멋쟁이들, ‘모던걸’ ‘모던보이’도 등장한다. 이영준 사진평론가는 한영수의 사진 세계를 “축축한 도시, 눈과 얼음의 도시, 미인들의 도시, 생활하는 도시, 우리가 모르는 도시”라는 5개의 범주로 나누며 “한영수가 찍은 것은 전쟁 후의 남루한 현실이었으나 그의 사진은 또 한겹의 현실을 추가했다. 그렇게 하여 남보다 앞서서 근대적 표상 양식을 선취했다”고 적었다.
김기찬의 사진집 두 권에는 경제개발의 기치가 드높던 1967년부터 강남 개발의 광풍이 잠실 주변을 헤집던 1988년까지 삶이 고스란히 담겼다. <잃어버린 풍경>은 경기 하남, 부천, 구리, 수원 등에 산재한 초가집과 그 안에서 삶을 꾸리는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을 포착한 1부,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으로 마구 파헤쳐지는 송파, 방이, 오금, 고덕, 문정 등 잠실 주변과 강남구 개포동을 다룬 2부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킨다. 무덤의 봉분을 깔아뭉개고 묘지를 지키던 문인석이 나뒹구는 한편에 하나둘 솟아오르는 아파트 단지, 모심던 논과 콩팥 심던 밭이 파헤쳐지는 모습을 서럽게 바라보는 노파와 며느리… 개발의 광풍이 휩쓸고 간 흔적을 기록한 사진은 우리가 잃어버린 게 뭔지를 묻는 듯하다.
<역전풍경>은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상경하는 촌로와 서민의 모습부터 역전을 터전 삼아 생존을 이어가는 짐꾼과 행상, 그리고 비 오는 날 역 광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상을 담담하고, 때로는 유쾌하게 담았다. <역전풍경>은 2002년 절판된 책의 개정판이고, <잃어버린 풍경>은 초판 매진 뒤 10년 만에 다시 나온 책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강남 개발로 파헤쳐진 터전을 바라보는 노파와 며느리(1985년 6월 송파구 문정동). 각 출판사 제공
김기찬 작가의 카메라에 잡힌 지게꾼(1970년 6월). 각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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