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출판 잠깐독서
남재일 지음
천년의상상·1만8000원 8년 전 그는 비교적 구체적인 적대를 말했다. 칼럼집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에서 문화비평가 남재일 경북대 교수는 “시스템 속에서, 집단의 등 뒤에서,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뒤통수에 소리없는 독화살을 날리는” 가해자들을 돋보기를 들고 솎아냈다. 가해자를 숨겨준 제도를 꼬집는 적확한 한국어 단어를 찾아냈다. 이들이 가한 폭력을 명징한 언어로 고발했다. 8년 만의 칼럼집에서 남재일이 규정하는 현대 사회는 ‘지배 없는 착취’를 통해 ‘동의의 형태로 기만하는’ 사회다. 직접 ‘소리없는 독화살을 날리던’ 폭력 체제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동의의 형태로 기만하는’ 체제는 물리적 폭력마저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1%가 99%를 지배하려면, 99%가 1%를 욕망하게 하되 그 욕망을 좌절시켜야 한다. 만약 99%가 ‘1% 되기’의 불가능성을 각성하고 다른 삶의 방식을 꿈꾸면, 1% 지배 체제는 위기를 맞는다. 부당한 질서에 동의하게 하는 기만, 유혹의 정치가 발생하는 까닭이다. 기만 체제에서 자기를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은 물질적 성취다. 타인과 마주할 때도 자신의 욕망밖에 보지 못한다. ‘누구나 세상에 말을 건네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기묘한 노출증의 시대’ 역시 그런 독백의 산물 아닌가.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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