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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피로사회? 과잉노동? ‘자본’에 답 있다

등록 2014-09-28 22:47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읽어야 할 마르크스는 과거 실패한 소련에서 내세운 마르크스가 아닌, 21세기 자본주의의 모순과 결함에 대한 답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읽어야 할 마르크스는 과거 실패한 소련에서 내세운 마르크스가 아닌, 21세기 자본주의의 모순과 결함에 대한 답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강신준 교수 인터뷰

한국 노동시간 영국 농노보다 많아
스파르타쿠스처럼 사슬 끊어내야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을 30년 동안 붙들고 있었다. 강신준(60) 동아대 교수는 1987년 이론과실천사에서 처음 나온 <자본> 1권의 번역 감수를 맡았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친구인 김태경(작고) 사장이 고생을 하긴 했지만, 어쩐 일인지 검사가 기소를 중지했다. 그 뒤 2, 3권은 실명으로 직접 번역했다. 2010년엔 <자본> 독일어 원전인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MEW·메프)을 한글로 완역해냈다.

“2008년 세계 금융공황 이후 마르크스에 관심이 늘었다. 학교에서도 60여명 듣던 <자본> 강의에 200명 정도가 들어오고, 생활협동조합 등 바깥에서도 강의 요청이 많은 편이다.”

<자본> 원전을 홀로 읽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2012년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사계절)라는 청소년용 입문서를 썼고, 그해 8월부터 7개월 동안 <경향신문>에 <자본> 관련 연재를 했다. 최근 펴낸 <오늘 ‘자본’을 읽다>(길)는 이 원고를 대폭 늘려 쓴 것이다. 마침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돌풍을 불러일으키면서 국내에도 마르크스 이론과 관련된 책들이 잇따라 나왔다. <자본>을 새로 읽으려는 흐름이 생긴 것이다.

이 책은 <자본> 1~3권을 따라가며 강독하는 길잡이다. 상품과 화폐, 화폐와 자본,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임금, 자본의 축적 과정과 순환, 이윤 등을 자세히 다룬다. 강 교수는 1848년 프랑스 혁명이 자본주의가 미성숙한 상태에서 일어나 패배했다고 분석했고, 소련의 실패도 이 때문이라 덧붙였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보면,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문 연재를 보고 그의 독해가 왜곡됐다는 비판들도 나왔다. 그중 하나는 강 교수가 변증법에서 긍정과 성숙이라는 측면만 부각시키고 있으며 혁명적인 유물사관을 ‘수정주의’로 각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강 교수는 수정주의라는 ‘딱지’가 지나치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밝혔다. “변증법 중 ‘부정’(반)에만 매몰돼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아무런 실질적 성과도 얻지 못하고 있는 우리 노동운동의 현실”이 안타깝다는 얘기였다.

그는 오랫동안 노동운동의 이론적 배경이 돼주려 노력했다. 1994년 민주노총 건설 준비위원회부터 참여해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노동자의 무기’가 될 수 있는 기금을 만들고 계급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교육휴가를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이번 책에서도 강 교수는 노동자들이 노후자금 같은 저축금액 일부를 하나로 모으기만 해도 많은 것이 해결되리라 보았다. 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고, 정리해고를 단행한 자본가의 경영권을 아예 빼앗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향을 생각조차 않는 것은 “우리 노동운동이 자본주의적 관계의 변혁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썼다. 그는 왜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데도 끊임없이 ‘대안’을 구상하는 걸까.

“생전의 김진균 서울대 교수가 ‘학자는 들판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와서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 돼줄 수 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학자로서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쉬어갈 곳을 마련하고, 오래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싶었다.”

마르크스 또한 이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자본> 서문을 보면,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오랫동안’이라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100년, 200년을 두고 싸울 수 있는 진용, 젓갈 담그듯 푹 익어갈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그는 여러번 강조했다. 그래서 강 교수는 노동시간의 단축을 중요 과제로 내세웠다. 13세기 영국 농노의 연간 노동시간은 약 1620시간인 반면, 2011년 한국은 2090시간이나 된다는 것이다. 독일과 북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이나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금액을 주자는 ‘기본소득’도 찬성하는 쪽이다.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고, 교육의 여건까지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이 제시한 답은 자본주의적 관계의 변혁이고, 그 관계의 핵심은 타인을 위한 노동이다. 장기적 조직, 안정적 교육체계, 노동조합의 기금을 활용해 스파르타쿠스처럼 스스로 사슬 끊을 준비를 해야 한다.”

물론 마르크스를 읽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강 교수는 이번 책에 대해 “산을 오르는 한가지 길일 뿐”이라고 밝혔다. <자본>을 둘러싼 많은 논쟁에도 정작 국내 대학 강단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런 상황에 도움이 되려고 그는 동료 학자들과 함께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메가)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옛소련과 동유럽이 주도한 메프판과 달리 메가판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정본이라는 의미가 크지만, “비용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진척이 더디다”고 했다. “올겨울까지 초고를 끝낼 계획인데, 더 늦어지면 계약 위반 벌금을 물게 된다. 뜻있는 노조와 개인들의 후원이 있지만 지원이 여전히 절실한 상태”라고 그는 말했다. (후원 문의: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 (051)200-8691, meinstitut@donga.ac.kr)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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