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1830년 7월 프랑스 혁명에서 영감을 얻었다. 프랑수아 피에르 기욤 기조(1787~1874)는 프랑스를 지적 발전과 사회적 발전이 조화를 이룬 나라로 보고, 유럽 문명의 전위로 내세웠다. <한겨레> 자료사진
유럽 중심 보편적 문명사에
비서구의 근대성 재조명도
비서구의 근대성 재조명도
프랑수아 기조 지음, 임승휘 옮김
아카넷·2만8000원
브랜든 심스 지음, 곽영완 옮김
애플미디어·2만4000원, 2만6000원
양동휴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3만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음, 김택현·안준범 옮김
그린비·2만9000원
프랑수아 피에르 기욤 기조(1787~1874).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당시 시위대들의 요구에 따라 총리에서 물러난 자유주의 정치가다. 그는 “부르주아지의 반동과 편협한 보수주의를 구현한 인물”(옮긴이)이란 혹평을 받아왔지만 사실 19세기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역사가였다. <유럽 문명의 역사>(1828)는 기조의 유럽사 강의를 묶은 대표작이다. 그는 로마 제국 몰락부터 18세기까지 1500년 유럽 역사를 ‘정부와 인민’이라는 거대한 힘의 등장으로 수렴되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한다. 유럽을 중심으로 인류의 ‘보편적인 문명사’를 완성한 것이다. “인류에게 보편적 숙명이 존재하고, (…) 우리는 문명에 관한 보편적인 역사를 서술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이 그들 고유의 문명사를 손에 쥐고 ‘인류 보편’을 상정하게 된 건 이런 일관되고 강력하면서도 쉬운 설명방식에 기댄 바 크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역사학과 브랜든 심스 교수의 <유럽>은 근대 유럽이 탄생하는 15세기부터 현재까지 560년의 역사를 ‘패권 투쟁’으로 기술한다. ‘영토’를 중심에 둔 설명 방식인 셈이다. 특히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1453년을 “유럽에서 근세가 시작한 해”로 보고 이슬람권과 기독교권의 충돌을 중요하게 거론한다. 지은이가 책 전반에서 핵심 축으로 삼는 나라는 독일이다. 이슬람에 대항하는 최전선이었으며, 19세기 전제군주제 주창자들과 입헌주의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출현했고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 정당이 존재했으며, 나치즘이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20세기 베를린은 분열된 세계의 상징으로 냉전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유럽연합에서 독일은 여전히 통합의 문을 여는 열쇠를 쥐고 있다. 양동휴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쓴 <유럽의 발흥>은 경제를 중심으로 분석 범위를 넓힌다. 유럽이 ‘근대적 경제성장’으로 나아간 과정을 살펴보며 중세 시기 경제적, 군사적으로 후진적이었던 유럽이 어떻게 아시아를 추월했는지 16~18세기를 중심에 놓고 비교경제학적으로 검토한다. 예컨대 10~13세기 송나라 시대는 무역, 상업, 도시, 금융, 철공장이 발달한 경제혁명의 시대였지만 이후 ‘지대추구’라는 성장 저해 요인 때문에 근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지대란 원래 토지나 시설물을 이용한 대가로, 지대로만 먹고산다면 성장은 정체된다. 하지만 유럽은 11~16세기 동안 자본 형성이 누적됐고, 무엇보다 시장과 국가가 협력해 부르주아 계급의 세력이 커졌다. 아시아 같은 ‘지대 추구’ 경향이 성장을 저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쉽게 결론내기를 유보하는 편이긴 하지만, 지은이는 근대적 경제성장, 임금, 시장, 재산권, 재정국가, 군사력, 화폐와 금융 등 광범위한 부분에서 정교하게 동서양의 경제사를 비교해 나간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는 유럽 중심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유럽을 중심에 놓고 근대성과 자본주의를 ‘글로벌한 것’으로 보이도록 하는 ‘역사주의’는 발전만을 염두에 두고 비서구를 뒤떨어진 시간대로 놓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그는 대신 기존 역사 서사에서 은폐된 ‘서발턴’(하위주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비서구의 근대성’을 새롭게 조망한다. 따라서 이 책은 유럽에 대한 연구라기보다 서구 관점에서 탈피한 철학, 역사학, 경제학의 이론적·방법론적 성찰을 설명한다. 특히 19~20세기 인도 벵골의 상층 카스트 일부에게 시민주체, 시민사회, 가부장적 형제애, 공·사 구별, 봉급 노동 등의 주제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상세하게 검토해 서구와 다른 근대적 주체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유럽을 지방화’하는 프로젝트는 결국 유럽을 ‘기원’이나 ‘보편’에 놓는 역사학, 경제학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변방’의 경험을 가진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공감과 영감을 줄 법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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