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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깨어 있는 사람들이 만든 평등·자유의 복지국가

등록 2014-10-12 20:52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의 한 장면. 웹 부부는 영화에서 상징되는 악명 높은 빈민법을 폐지하는 데 앞장섰다. <한겨레> 자료사진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의 한 장면. 웹 부부는 영화에서 상징되는 악명 높은 빈민법을 폐지하는 데 앞장섰다. <한겨레> 자료사진
‘요람에서 무덤까지’ 베버리지 등
영국 복지정책 이끈 11명 재조명
북유럽 3국 복지모델 기틀 만든
사회민주주의 역사와 논쟁 다뤄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영국편
이창곤 지음
인간과복지·1만3000원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
니크 브란달, 외이빈 브라트베르그, 다그 에이나르 토르센 지음, 홍기빈 옮김
책세상·2만원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보듯, 19세기 영국 빈민의 삶은 참혹했다.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라는 비난을 벗어던지고 빈민들이 시민권을 얻게 된 건 단지 경제성장 덕분만은 아니었다. 개인 삶의 안전을 위해 발벗고 나선 사람들의 열정적인 도전과 이에 동의하는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은 영국 복지정책을 이끈 11명 인물들의 생애와 업적을 검토하며 복지정책 발달사를 조망한 책이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인 <한겨레> 이창곤 기자가 영국 버밍엄대학 대학원에서 연구한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인물사로 보는 영국 복지정책의 역사’를 흥미롭게 재구성했다.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비어트리스 웹(1858~1943)과 시드니 웹(1859~1947) 부부다. 이들은 개인이 최소한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내셔널 미니멈’(국민생활최저선)을 주창했다. 이 개념은 복지국가의 지도원리로서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복지정책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비어트리스 웹은 1905~1909년 영국이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고 구성한 ‘왕립빈민법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빈민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소수파 의견서’를 주도했다. 다수파는 빈민법의 억압성이 지나쳤던 것이지 법 자체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양쪽의 갈등은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진 보수-진보의 복지 논쟁과도 유사성이 있다.

윌리엄 베버리지(1879~1963)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문구로 유명한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 이른바 <베버리지 보고서>를 1942년 펴냈다. 핵심 개념은 ‘생존 수준의 정액 급여’(균일한 생계비 지원)로서, 국가는 국민의 ‘품위있는 최저 수준’을 자산 조사 없이 보장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약본은 단 20쪽에 불과했지만 발간 한달 만에 10만부가 팔려나갈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고, 그 덕분에 베버리지는 일약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연립내각 총리인 처칠은 세금이 많이 든다며 이 구상을 반대했지만, 1945년 7월 영국 총선에서 국민들은 보수당을 버리고 노동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독자 정부를 구성한 노동당은 1946년 실업급여, 질병급여, 은퇴연금, 장례비 등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국민보험법을 마련했다.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1863~1945) 총리는 1908년 재무장관 시절 영국의 첫 사회보험인 노령연금을 시행하면서 복지국가의 문을 열었다. 노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우체국으로 달려나갔다. 1909년엔 건강보험 등 재원 마련을 위해 부자증세와 누진세 도입을 뼈대로 한 ‘인민의 예산’(People’s Budget)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에 로이드 조지는 “수백만명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소수의 쾌락에 과세함으로써 빈곤에 대한 타협 없는 전쟁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영국인들 스스로 “복지국가라는 왕관에 박혀 있는 보석”이라 일컫는 제도는 1948년 시작한 ‘국가보건서비스’(NHS: National Health Service)다. 이에 따라 영국의 모든 의료는 무료로 행해졌으며 약값 또한 약간의 본인 부담금만을 두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후진적 의료제도’라는 다른 나라의 비난이 있지만 사실은 서구 선진국 가운데 대다수 평가에서 만족도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제도다. 실제 이를 현실화한 정치가 어나이린 베번(1897~1960)은 뛰어난 논객이었다. 연설 도중 보수당에 “기생충보다 못한 놈들”이라는 비난을 퍼부어 ‘악질적’이라는 평판도 함께 얻었지만, 노동당 좌파 계열의 수장으로서 2006년 영국 보수당이 뽑은 ‘위대한 영국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그는 끈질긴 협상가였다. 1948년 의사협회가 보이콧을 선언하며 국가보건서비스에 반발하자 18개월 동안 끈질기게 ‘당근과 채찍’을 써가며 뜻을 관철한 의지의 정치인이었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북유럽 3국을 중심으로 복지국가의 기틀이 되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역사와 논쟁을 다뤘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고고학·정치학 연구자들인 지은이들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를 화해시키려는 노력으로서 사회민주주의를 검토한다. 평등 못지않게 자유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는 사회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봤을 때, 특권적 소수가 자유를 독점하지 않도록 하려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국민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의 차이는, 불가능한 것을 성취하는 쪽이 조금 더 오래 걸린다는 것뿐이다.”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영감을 받은 노르웨이 노동당의 강령(청서)을 언급하며 지은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결국 중요한 건 정치적 힘과 연대다. 신자유주의의 온갖 부작용에도 북유럽 사민주의와 복지국가가 여전히 건재한 건, 공동체의 합의를 깨뜨리지 않는 정치적 의지와 운동의 역동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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