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문예동 문인들이 남과 북 문인들 150여명과 함께 백두산의 북한 쪽 봉우리인 장군봉 아래 개활지에 모였다. 문인들은 자작시를 낭송하고 소감을 말했으며, 몇몇은 서로를 끌어안고 사뭇 눈물바람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와 북일관계가 악화되면서 문예동 작가들은 일본 땅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고립돼버렸다. 백두산/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싱크탱크 광장] 재일 총련계 ‘문예동’ 작가 2인 시집 출간
통일 열망과 고향에 대한 향수 담아
‘문예동’ 맹원 일본 전역 1천명 활동
2·3세로 내려가며 창작물 크게 줄어
한국·일본 관계 악화로 교류도 뜸해
‘우리 민족 값진 자산’이란 인식 필요
통일 열망과 고향에 대한 향수 담아
‘문예동’ 맹원 일본 전역 1천명 활동
2·3세로 내려가며 창작물 크게 줄어
한국·일본 관계 악화로 교류도 뜸해
‘우리 민족 값진 자산’이란 인식 필요
총련계 문예조직인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이하 문예동) 소속 작가 두 사람의 시집이 남쪽에서 출간됐다. 정화흠(91) 시인의 <내가 가는 길>과 김두권(89) 시인의 <내 고향>(이상 문화기획자 이철주 기획, 도서출판 선인 펴냄)이 그것이다.
문예동 소속 작가들의 시집이 남쪽에서 출간된 것은 2008년 <치마저고리>(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기획편저, 도서출판 화남 펴냄)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당시 <치마저고리>가 정화흠, 김두권 두 시인 외에도 정화수, 김학렬 등 모두 8명 시인의 시 선집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출판은 남한에서의 ‘총련계 동포 작가 개인시집 첫 출간’이라는 의의를 갖게 됐다.
두 시인은 시집에서 통일에 대한 간절한 바람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일이 고향인 정화흠 시인은 “나는 죽으면…시퍼렇게 치솟는 불길이 되어/ 분계선 철조망을 쪼박쪼박 삼키고/ 새파란 하늘이 열리게 하고 싶소”(나는 죽으면)라고 한생을 다한 뒤에까지 통일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천이 고향인 김두권 시인은 “내 렬차에 몸을 실을 때마다/ 언제나 느끼는 바 있거니/ 이 철길 어디까지 달리면/ 고향마을에 가 닿는지”(이 철길 어디까지 달리면)라고 고향에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아픔을 노래한다.
“문예동 문인 남북대화 간절히 염원”
정화흠·김두권 두 시인이 소속된 문예동은 1959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산하조직으로 결성됐다. 그동안 문예동은 문학을 비롯해 음악·연극·영화·미술·무용·사진·서예 등의 영역에서 우리 문화를 지켜왔다. 문예동 김정수 위원장은 “현재 애호가를 포함한 맹원들은 모두 1천여명이며, 지난해 홋카이도에 지부가 결성되면서 지부도 12개로 늘어난 상태”라고 말한다.
2004년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문예동과 분단 사상 처음으로 학술토론회를 연 바 있는 임헌영 당시 해외동포문학편찬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현 민족문제연구소장)은 문예동을 “8·15 이후 일본에서 우리말로 문학예술운동을 한 유일한 단체”라고 평가했다.
2009년까지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예동 문인들과 교류했던 김응교 교수도 “당시 만난 고 김학렬 시인 등 많은 문예동 문인들은 통일을 바라고, 남쪽과 북쪽이 대화하기를 진정으로 바라셨다”며, 그 한 사례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시인이 3800여권에 이르는 자신의 장서를 2008년 남쪽 서울대학교에 기증”한 사실을 꼽았다.
문예동 활동에서도 핵심적인 부문은 문학이다. 문학은 우리말·글과 직접 관련돼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활동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말로 시와 소설을 쓴다는 것은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김응교 교수는 김학렬 시인(전 재일 조선대 교수)이 이를 “일본에서 차별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일본이라는 제국과 싸우는 혁명”에 비유했다고 전한다. 일본말로 생활하고 사고해야 하는 조건에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우리말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찾고 만드는 과정이 ‘혁명’과 같이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 혁명투사들인 재일동포 1세대 시인들의 현재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2·3세로 내려가면서 창작자와 창작물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시집을 낸 시인들처럼 1세대 시인들은 이제 80~90대다. 이들은 그나마 일본에 건너가기 전 우리말을 우리 땅에서 배우고 간 사람들이다.
그런데 2세대로 내려가면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재일 조선인 2세 문옥선(55)씨는 1세대 시인들의 시집이 한국에서 출간됐다는 소식에 “지금까지는 우리의 시는 북쪽에서만 출판되거나 일본에서 자비 출판 형태로 출간돼왔다”며 “남녘에서 시집을 읽는 사람들이 재일동포들의 문학 사랑을 알아주면 너무 기쁠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 번역가 및 시인으로 활동하는 문씨는 2세로서 자신들의 창작능력은 1세들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고백한다. 그는 “2세들은 우리말과 글을 생활에서가 아니라 ‘우리학교’에서 비로소 배웠다”며 “이에 따라 토론문 같은 것은 그나마 쓰지만, 시와 같이 심금을 울리는 정서적인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토로한다.
그는 “남이나 북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들은 ‘밝다’라는 표현도 수십개를 알고 있을 텐데, 재일동포 2세들은 한두 개밖에 모른다”며 “시 창작을 하는 데서 언어의 부족을 절감한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그러나 시를 놓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우리말을 버리면 일본 사람이 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우리말이 없어지면 조선 사람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문씨보다 한 세대 아래인 재일조선인 3·4세로 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2세들은 집에서는 부모들이 우리말을 쓰는 것을 보고 자랐지만, 이들은 집에서조차 일본말을 들으면서 성장했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조선학교에서 외국어를 배우듯 배운 세대들이다. 따라서 우리말과 글을 문학의 도구로서 벼릴 수 있는 기회가 더욱 없는 세대인 셈이다.
이렇게 세대가 내려가면서 우리말 문학이 차츰 무너지면, 그 여파는 그대로 우리학교 등의 우리말 교육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우리학교 학생들의 교과서에 실을 ‘재일동포들의 삶을 생생하게 다룬 시나 수필, 소설’ 등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재일동포들의 우리말 문학이 2·3세로 가면서 약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 중 하나로 재일동포들의 ‘고립 현상’을 꼽는다. 문예동 소속 문인들은 오랫 동안 북과 활발히 교류해왔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고향방문단으로 남쪽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에는 남쪽 방문도 어려워졌고, ‘납치사건’ 등의 여파로 2000년대 중반 이후 북한과의 인적 교류마저 힘들어졌다. 일본의 대북제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문예동 고립, 아메리카 인디언 수준”
김응교 교수는 “현재 우리말로 문학을 하는 재일동포 문인들이 겪고 있는 ‘고립 수준’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그것에 견줄 만한 것”이라고 말한다. 문학에서 이런 고립과 단절은 바로 문학의 생명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일 조선인 문예선’은 재일동포 우리말 문학의 꽉 막힌 고립에 작게나마 숨통을 열어주는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문예선 기획자인 이철주씨는 “오는 12월에 우리학교와 관련된 시집 두 권을 더 내고, 내년 4월에는 <조선신보>가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1978년부터 해마다 공모해온 ‘꽃송이’ 공모전 입선작들을 중심으로 단행본을 발간하는 등 문예선을 계속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일동포 우리말 문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문예선 출간 이상의 더욱 심화된 교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임헌영 소장은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문예동의 활동을 역사적인 사실로 보면서 우리가 다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며 “그러면 문예동은 남북이 문화예술 방면에서 대화해나가는 데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예동 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한 ‘우리말로 된 재일동포 문학’이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지키고 키워야 할 우리 민족의 값진 자산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문예동 소속 작가들의 시집이 남쪽에서 출간된 것은 2008년 <치마저고리>(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기획편저, 도서출판 화남 펴냄)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당시 <치마저고리>가 정화흠, 김두권 두 시인 외에도 정화수, 김학렬 등 모두 8명 시인의 시 선집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출판은 남한에서의 ‘총련계 동포 작가 개인시집 첫 출간’이라는 의의를 갖게 됐다.
김두권(89) 시인의 <내 고향>, 정화흠(91) 시인의 <내가 가는 길>
연재싱크탱크 광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