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도상(54) 씨
자살 청소년의 죽음 뒤 49일
삶·죽음에 대한 깨달음 그려
아들 자살 겪은 작가의 뒤늦은 호소
“아이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있나요?”
삶·죽음에 대한 깨달음 그려
아들 자살 겪은 작가의 뒤늦은 호소
“아이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있나요?”
“저는 나름대로 아이와 무척 친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과 중학 1학년이었을 때 강원도 고성에서 강화도까지 540킬로미터를 15박16일에 걸쳐 두번 걷기도 했거든요. 걸으면서 얼마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겠어요? 그런데 막상 일이 터지고 나니까, 내가 정말로 아이의 내면에 들어가서 ‘진짜’를 보지는 못했다는 뒤늦은 후회가 생기더군요.”
중학교 2학년 초 어느날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좋아하는 그림만 그리고 싶노라는 뜻을 밝혔다. 아버지는 ‘적어도 중학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말로 아이의 말을 무질렀다. 그로부터 4~5개월이 지났을 때 아이가 지나는 말처럼 툭 던졌다. “아빠한테 많이 실망했어.” 그리고 다시 두어달 뒤 아이는 달리는 전철에 몸을 던졌다. 9년 전이었다.
“아이가 왜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했는지, 자세하게 얘기를 나누었어야 했어요. 최선을 다해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을 했더라면 비극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내 자식이지만 모르는 영역이 엄연히 있다는 걸 몰랐던 거지요. 저는 이미 늦었지만 이 책을 읽는 다른 부모와 어른들에게는 꼭 당부 드리고 싶어요. 아이와 진심으로 소통을 하시라고요.”
소설가 정도상(54·사진)씨가 청소년 자살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 <마음오를꽃>(자음과모음)을 내놓은 까닭이다. <마음오를꽃>은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살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고민하다가 자살을 택한 중3 남학생 우규와, 엄마의 과도한 관심 그리고 그런 엄마에 대한 지나친 의존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폭력을 당한 끝에 역시 자살한 고3 여학생 나래, 두 청소년을 등장시켜 청소년 자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선 작품이다. 평범한 하루를 보낸 규가 “안녕, 얘들아. 그동안 즐거웠어”라는 문자를 보내고 전철에 뛰어드는 첫 장면은 9년 전 작가가 겪었던 일 거의 그대로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아이들의 죽음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두 주인공이 ‘가운데 하늘’이라는 죽음 뒤의 세계에서 지내는 49일 동안이 이 소설의 몸체에 해당한다.
“‘가운데 하늘’이란 한자어 중천(中天) 또는 중음(中陰)을 순우리말로 바꾼 것이지요. 티벳 말로는 ‘바르도’라고 하는 영역이 그곳입니다. 이 소설은 <티벳 사자의 서>와 제주도 설화 ‘원천강’ ‘서천꽃밭’ 그리고 바리데기 설화를 서사의 근간으로 삼았습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죽은 아이들이 49일 동안 겪는 심판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심판이란 죄에 대해 벌을 받는 것이라기보다는 삶과 죽음에 관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작가는 “대체로 고통스러운 상황을 회피하고 자신을 포기하려는 생각에서 자살을 택하는데,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삶과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면서 “혹시 지금 이 순간에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의 죽음은 남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고 가족을 무너뜨립니다. 소설에서 죽은 아이들로 하여금 지상에 남은 가족들의 모습을 확인하도록 한 것은 그런 뜻에서입니다. 아이들이 그 순간에서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설 수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쓴 소설이에요. 어른들도 역시 한 걸음 물러서서 아이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14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작가에게 ‘저승에서 아이가 이 소설을 읽으면 뭐라고 할까’ 물었더니 “‘아빠는 너무 늦었어’라고 말할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 아이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너무 늦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는 다시금 당부했다.
“이 책을 들고 청소년 대상 강연을 적극적으로 다닐 생각이에요. 아이들에게 진정을 다해 하소연할 겁니다. 저 자신의 경험도 있고 하니까 아이들도 좀 더 진지하게 듣지 않을까요?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좀 더 마음으로 다가가라구요. 실패한 사람의 뒤늦은 호소입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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