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순덕씨의 ‘쉽게 만들어보는 현대 예술제본’
인터뷰/‘쉽게 만들어보는 현대 예술제본’쓴 백순덕씨
“제본을 그저 낱장들을 풀칠해 책을 만드는 일로 여기면 안 됩니다. 본래 제본은 책을 오래 건강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지켜주고, 또 세월 탓에 망가진 책을 분해해 일일이 손질하고 치유하는 일이죠. 책의 건강관리라고 할까요. 유럽의 중요한 책의 문화인 ‘예술제본’은 창작이면서도 보수·복원 기술이기도 합니다.”
개성을 살린 ‘나만의 책’을 만드는 법을 일러주는 <쉽게 만들어보는 현대 예술제본>(안그라픽스 펴냄)의 지은이 백순덕(41)씨는 “예술과 기술을 담은 수공예의 정신인 예술제본이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책의 질이 높아지고 책의 문화가 다양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6년 동안 예술제본을 본격 공부해 국내 ‘예술제본가 1호’로 불리는 그는 최근 예술제본 공방 운영, 예술제본 전시회는 물론이고 예술제본을 알리는 책 저술을 기획하며 부쩍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국내 출판·문화계에서도 책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현대 예술제본>은 그가 정통 예술제본의 맛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일반인을 위해 지은 실용서다. 낱장 종이를 한장씩 실로 엮어 이어붙이고 또 가죽 표지를 자르고 꿰매고 금박·은박 등으로 문양을 내어 나만의 책을 만드는 방법을 일러준다. 그는 “예술제본은 책을 향한 사랑과 정성이 아니면 탄생할 수 없는 지난한 작업”이라며 “아날로그의 감수성과 수공예의 땀방울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예술제본은 본래 유럽식 제본과 장정을 뜻한다. 중세 수도원에서 신과 성인한테 바치는 책을 튼튼하고 화려하게 엮어내면서 본격 출발했고, 르네상스 시대엔 프랑스를 중심으로 주변 나라들에서 발전해왔다.예술제본은 ‘소수의 책’을 위해 발전했고 주로 왕이나 귀족·성직자 등이 누리는 상류 고급문화였다. 지금은 앨범이나 개인기록물, 비망록, 포트폴리오 등을 장정하는 책의 문화로 일반인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그가 예술제본의 길을 걷게 된 건 우연한 기회로 찾아왔다고 한다. 1980년대 철거민 주거공동체에서 활동하고 사회과학 출판사에서 잠시 일하다가 새로운 길을 찾겠다며 1991년 훌쩍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고풍스런 예술제본학교에서 풍기는 중세의 아날로그적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 예술제본을 공부하게 됐다. ‘파리예술제본학교’(UCAD)에서 3년 공부하고 예술제본 교원기술자격증(CAP)까지 딴 데 이어 현대적 예술제본을 가르치는 ‘베지네’에서 다시 3년을 공부했다. “머나먼 나라에서 온 내가 유럽식 예술제본을 공부하겠다고 하니까 프랑스 동료학생들도 ‘한국에 예술제본 책들이 있느냐, 배워 무엇하냐’고 반문하더군요. 가족도 잘 이해해주지 못했지만 그 분위기에서 빠져나오질 못했죠.”
그가 바라보는 국내 책들의 제본 상태는 아직 암울한 상황이다. “책들이 쏟아져나오지만 책을 오래 두고 읽을 수 있게 제본하려는 문화는 국내에 적은 것 같아요. 낱장을 풀칠해 제본하는 방식이 대부분이고 실을 꿰매 보존성을 높이는 제본은 출판사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니까요. 책 종이들도 대부분 펄프 함량이 적어 오랜 세월 보존하기에 어려워 예술제본이 뿌리내리기도 쉽잖습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몇몇 출판사들이 실로 꿰매는 제본, 오래 보존되는 장정 책 만들기에 조금씩 관심을 보여 희망이 보인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예술제본 총서’라는 이름으로 예술제본을 널리 알리는 책들을 잇따라 펴낼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일반인을 위한 실용서인 이번 책에 이어 예술제본 이론을 담은 <책을 지키는 예술, 예술제본>을 곧 낸다. 이런 식으로 해마다 실용서 한 권과 이론서 한 권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그는 ‘예술제본 총서’라는 이름으로 예술제본을 널리 알리는 책들을 잇따라 펴낼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일반인을 위한 실용서인 이번 책에 이어 예술제본 이론을 담은 <책을 지키는 예술, 예술제본>을 곧 낸다. 이런 식으로 해마다 실용서 한 권과 이론서 한 권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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