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
소설가 이승우(46)씨가 경장편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창해)을 내놓았다. 청계천 복원에 맞추어 기획된 ‘맑은내 소설선’의 네 번째 소설이다.
제목은 물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제목에서 비롯됐다.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들이 즐겨 찾는 카페 이름으로 쓰인다.
소설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숱한 제약이 따르는 비규범적 사랑, 이른바 불륜을 소재로 삼는다. 서른일곱 먹은 노총각 시인과 유부녀 사이의 ‘혼외 사랑’이다. “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지만, 왜냐하면 나도 믿지 않았으니까, 광화문 한복판에 땅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라는 소설 첫문장은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장이 바뀔 때마다 똑같이 반복됨으로써 소설의 주제의식을 구축한다.
비행기 옆자리에서 똑같이 보르헤스를 읽고 있다가 만난 두 사람은 남자 쪽의 적극적인 접근 덕에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세상의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질책하는 타인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그들의 사랑이 오롯이 피어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광화문 지하의 땅굴’은 그런 그들의 은밀하면서도 간절한 희원이 만들어 낸 신비의 공간이다.
주인공들에게 광화문 땅굴의 존재를 알려준 이는 단골 카페에서 만난 ‘김소령’이라는 이름의 수수께끼 같은 인물. 그 땅굴은 200여 년 전 아버지 왕에게 배척받은 ‘아현세자’와 기생 ‘묘선’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산물로 확인되는데, 아현세자의 부인이 기록한 <비록>과 묘선이 쓴 <취화당일기> 같은 허구의 텍스트가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김소령 역시 카페 여주인을 상대로 비극적인 ‘혼외 사랑’을 키웠던 인물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소설은 삼중의 ‘불가능한 사랑’을 다루는 셈이 된다.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사랑을 가능케 하는 허구적 땅굴의 의미는 소설 말미에서 주인공 유부녀가 하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적절히 요약된다 할 수 있다.
“현실의 보이지 않는 뒤쪽. 우리들 사랑의 간절함과 안타까움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틈. 일종의 블랙홀. 우리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 틈을 통해 여기로 들어온 걸 거예요.”(195~6쪽)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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