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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작 찔려야 할 분들, 지금 뭐 하세요?”

등록 2014-11-03 19:56수정 2014-11-03 20:44

출판계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 진행자들이 지난달 27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바갈라딘(박태근·알라딘), 오라질년(정유민·웅진지식하우스), 백시인(백상웅·다산책방).
출판계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 진행자들이 지난달 27일 저녁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바갈라딘(박태근·알라딘), 오라질년(정유민·웅진지식하우스), 백시인(백상웅·다산책방).
‘출판계 나꼼수’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 3인방
‘출판계의 해적방송이자 PD수첩’을 지향하는 본격 출판 팟 캐스트인 ‘뫼비우스의 띠지’(뫼띠)가 출판계에서 화제다. 듣다 보면 웃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출판계의 어두운 이면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출판계의 나꼼수’라고 일컬어도 무방할 듯하다.

‘뫼띠’는 지난해 12월 첫 방송을 시작했다. 그중 지난 9월 어느 출판사 간부의 편집자 성추행 사건을 폭로한 ‘아프니까 고발한다’, ‘나쁜 놈들 전성시대’ 편은 큰 반향을 얻었다. ‘출판 노예 12년’도 대형 출판사의 대량 해고 사건을 둘러싸고 출판 노동 문제를 진지하게 접근해 반응이 뜨거웠다.

가장 큰 미덕은 들으면 즐겁고 후련하다는 것이다. 편집자인 진행자들은 방송에 대놓고 “막내 편집자만 집적거리는 작가”를 비꼬며 말한다. “모든 막내 편집자들은 쪽지 주세요. 언니가 지켜줄게!” 그러곤 왁자지껄 웃는다. 마감을 지키지 않는 고질적인 필자 관리법도 전수한다. “마감을 안 지키는 필자가 트위터에 ‘심심해’라고 올려도 그냥 지켜봐야 돼요. 마감은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물으면 안돼요. 마감을 묻는 순간 감시의 기능은 끝나는 거예요.” 편집자이면서 동시에 시인인 진행자는 “나도 작가야!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킬 때가 있다”고 말한다.

진행자 3인방은 ‘바갈라딘’, ‘백시인’, ‘오라질년’이다. ‘바갈라딘’ 박태근(33)씨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 인문 엠디(MD)로 2만권의 책을 소장한 장서가이자 출판경력 “99개월”의 베테랑. 백시인 백상웅(33·다산책방)씨는 문학 담당 편집자이자 등단 시인(2008년 창비)이다. ‘오라질년’이란 별명으로 출판·언론계에서 이름 높은 정유민(33·웅진지식하우스 편집장)씨의 캐릭터는 웹툰 작가 강무선의 <자유부인>에서 따온 것이다. 이들을 지난 27일 저녁,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프로그램의 출발부터 지금까지의 얘기를 들어봤다.

‘바갈라딘’ 박태근
출판노동자 연대 보여주고 싶었죠
편집자는 사장과 필자 앞의 ‘약자’

‘오라질년’ 정유민
성폭력, 출판계선 일상적이고 보편적
친분으로 감싸는 이들 더 웃겼죠

‘백시인’ 백상웅
친분으로 얽히고 설킨 출판계
제대로 비판도 못하고 넘기죠

정유민(이하 정) 원래 온라인 편집자 모임이 있어요. 철저한 비밀그룹, 사조직 같은 거죠. (웃음) 우리끼리 수다 떨며 농담으로 팟 캐스트를 해볼까 하다가 진짜로 하게 됐어요.

백상웅(이하 백) 저는 처음에 인터넷 서점 엠디인 ‘바갈라딘’이 같이 방송을 하겠냐고 하기에 ‘오케이’한 거예요. 사실은 1번만 나가는 줄 알았어요. 엠디니까 방송 하며 친분 쌓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웃음) 고정인 줄은 나중에 알았지만, 그냥 모른 척 했어요.

‘바갈라딘’ 박태근
‘바갈라딘’ 박태근
박태근(이하 박) 아, 그랬었나?! 사실 저희 셋이 방송 전에 만난 건 한번밖에 안 돼요. 동갑이지만 말도 최근에 놓은 걸요. 캐릭터는 따로 정하지 않았어요. ‘오라질년’은 원래 ‘지하세계 강자’였기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백시인은 적재적소에 한마디 하는 ‘출판 꿈나무’ 캐릭터, 저는 사회를 봅니다. 두 분은 ‘뫼띠’로 스타가 됐죠. 뿌듯합니다.

아, 저도 나름 전주와 여수에서 잘 나가던…. 그런데 두 사람이 너무 저를 무시해요.

(백시인을 보며) 됐어, 캐릭터는 그냥 각자 성격 그대로예요.

‘뫼띠’가 출판가에서 가장 크게 화제가 된 건 출판사 쌤앤파커스의 간부 성추행 사건을 다룬 방송을 하고 나서였다. 지난 9월 언론노조 출판지회에서 이 문제를 폭로하는 성명서가 발표되었고, 긴급히 특집방송을 구성했다. 비슷한 성희롱·성추행을 당했다는 편집자들의 제보도 쏟아졌다. 반응이 뜨거웠다.

그 방송은 뒷 이야기가 더 웃겼던 것 같아. 가해자쪽과 친분 등으로 얽혀있는 게 뻔한 것 같은 사람들이 SNS에서 은근슬쩍 가해자쪽을 감싼다든지, 출판계에서 내로라 하는 인사들이 “나는 입장이 없다”는 식으로 미묘하게 발언하는 분위기도 있었고 말이에요.

차라리 조용히 있었음 좋았겠는데 말야.

‘오라질년’ 정유민
‘오라질년’ 정유민
‘아프니까 고발한다’ 다음에 2부로 ‘나쁜 놈들 전성시대’ 편에서 제보를 받고, 출판계 성폭력 문제 전반을 다루었는데 마치 출판계 전체가 ‘강간의 제국’인 것처럼 말한다는 비판이 있었어요. 그럴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이런 문제가 오래 이어진다는 건 친일청산, 독재청산 못한 거랑 똑같은 거예요. (웃음) 권력자들이 여러 관계로 얽히고 설켰다며 제대로 비판 못 하고 넘어가니까요.

어쩌다 한 사람이 재수 없어서 잘못 걸린 일이라고 비춰지는 게 싫었어요. 사실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문제거든요. 공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에요. 일각에서는 ‘오라질년’이 누구냐고 뒷조사까지 했었잖아.

이 동네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게 있죠. 그런 공간에 너무 오래 머물러있어요.

출판계의 성희롱, 성폭력을 비롯한 여러 부당노동 행위 문제에 용기를 낸 분에게 비슷한 처지에 있는 출판 노동자들이 보내는 지지와 연대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편집자들은 사장 또는 필자들과 일대일로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 약자거든요. 회사를 옮길 때도 위력을 가진 사람들의 평판조사가 취업의 당락을 결정짓습니다. 그러니까 구조적으로 문제가 덜 드러나고 지속되죠.

편집자들이 하는 일은 생산보다 커뮤니케이션이 전부이다시피 해요. 사실 영화로 치자면 감독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데 말이에요. 주도권이 사장이나 지은이에게 가 있어서 그저 편집자들은 ‘시다바리’가 되는 거예요. 일본이나 미국에서의 편집자와 사회적 지위가 전혀 달라요. 주도권을 가진 사장이나 필자들 비위를 맞춰줘야 편집자가 커뮤니케이션을 잘 한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편집자는 자기 권리를 내세우기가 힘들죠. 출판계엔 여자가 많지만 가부장적 문화가 사라지지도 않고, 남자가 드물다며 여자가 저평가되는 구조도 있고요. 여성 경영자들도 많은데 출판계 남성 가부장 문화를 답습해 ‘여자 마초’, ‘명예 남성’ 같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이들은 출판가의 ‘이상한 문화’에 대해서도 오래 얘기를 나눴다. 가부장적인 문화, 직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출판사 행사도 그저 출판계에서는 ‘신선한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유명짜한 출판계 관계자들이 성추행이나 성희롱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얘기가 오고갔다.

‘백시인’ 백상웅
‘백시인’ 백상웅
물론 출판계에 이런 문제만 있는 건 아니죠. 저 같은 경우에는 일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나름 좋은 데서 일하는 거였어요. 사장님과도 격의없이 얘기하고 그러니까요. 사실 지금 우리는 셋다 적정 수준 이상 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송도 할 수 있는 거겠죠. 정 편집자의 경우에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고생을 좀 하던 케이스였거든요. 그에 대한 얘기를 듣고 출판계가 너무 충격적인 것 같아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어요.

옛날 제 경험을 보면, 일부 작은 출판사에서는 서너명이 일하는 상태에서 사장 말에 엄청난 말에 영향을 받게 돼요. 사장이 “다른 회사도 (돈은) 이것밖에 안줘” 하면 그런 줄 알죠. “아, 원래 한달에 100만원밖에 안 주는 구나” 생각하면서 자존심은 바닥을 치고…. 지금도 신입 편집자들이 가장 많이 힘겨운 사연을 보내요. 정신적 스트레스가 아주 크죠.

규모가 작은 출판사 일부는 돈을 벌어서 그만큼 노동자들에게 대우하려 생각하지 않고 그냥 파이를 키우려고 모아버리기만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정당한 대우 없이 노동자들을 수단처럼 생각하고 사용하고, 사람을 교체하면서 같은 수준의 월급을 유지하니까요.

그래도 출판사는 남는 거고, 편집자는 약자니까. 이 바닥에서 ‘노동자성’이 안드러나는 게, 책이라는 결과물에 모두 수렴되니까 그런 점이 있지요. 그때는 부당했을지라도 책이 나오면 통과의례처럼 여기고 추억처럼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업무를 분절해서 보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선배들이 왜 우리는 팟 캐스트에서 싫은 소리만 하냐고 핀잔을 주는데, 꼭 필요한 얘기가 듣기 싫은 얘기니까 그런 거예요.

출판계 어르신들 가운데는 우리 방송을 보고 ‘뒷담화’라고 안 좋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긴 할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출판계의 문제점만 얘기하고 ‘너 한 사람 죽이겠다’는 게 아니예요. 뒷담화로 생각하시고 웃으며 넘어갔음 좋겠어요. “니네들 또 뒷담화 하냐?” 하는 ‘쿨한’ 교장선생님처럼….

꼭 뒷담화만은 아니지. 우리에게 사실 제일 중요한 건 재미거든요. 방송하면서 우리도 재미있어야 하고, 컨텐츠의 재미가 최우선의 과제죠.

아, 사실 저도 이렇게 막 나와서 사람들 만나고 그러는 사람이 아닌데… 대화를 나누는 게 피곤해요. 고요한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에요. (웃음) 우리 사장님이 제가 방송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저는 모르겠는데, 듣지는 않으시는 것 같아요. 어쨌든 우리는 그나마 여건이 나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이렇게 방송도 하고…. 문제만 있는 건 아니죠.

어려운 환경에서 잘 하고 계신 젊은 사장님들이 방송에서 하는 쓴소리를 듣고 “찔린다”고 하시는데, 사장님들~ 여러분들은 아니예요! 정작 찔려야 할 분들은 안 찔려 하십니다…. 언제까지 방송을 할 거냐고 하는데, 저희가 재미를 못 느낄 때까지. 의무감이 드는 순간이 오면 미련 없이 접을 거예요.

소재가 고갈될 염려는 없는데 말야. (웃음)

아, 저는 정말 스타 편집자가 돼서 저를 무시하는 ‘바갈라딘’과 ‘오라질년’을 놀리고 싶어요. “둘이 얼마나 잘 났어! 책이나 좀 팔아보고 그런 얘길 해! 내가 기획이라는 것을 알려줄게!” 그러면서…. 저 둘이 출판사 차린다면 절대 안 들어갈 거예요. 제가 보기엔 두 사람은 정말 일중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잔소리를 많이 하겠죠. 그런데 출판사는 안 차려. 자멸의 길이야.

출판 노동의 부당함을 폭로하는 것이 애초 우리 관심은 아니었지만, 이를 계기로 출판 전반의 상황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우리는 방송하고 의미를 만들고 하는 것도 즐겁지만 출판계의 어떤 얘기도 함께 나눌 수 있고, 아무 때나 두드릴 수 있는 친구가 되었고,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돼요. 좋아하는 작가들이 방송을 들으면 좋겠다 생각도 하고요.

김애란 작가님~ 사랑해요! 이 말은 꼭 신문에 적어주세요.

이런 두분을 모시고 하는 사회자의 고충이란…. 손석희씨의 어려움을 알겠더군요. (웃음)

## 좌담 뒷 이야기

정유민 편집장(오라질년)이 신문에 꼭 적어달라는 마지막말은 결국 지면 사정으로 빠졌다. 인터뷰를 마친 그날 밤, 뒤풀이로 신문사 앞 호프집에 앉아있는 동안 가수 신해철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각자의 핸드폰에 떴다. 세 사람은 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다음날, 신씨의 사망 기사 때문에 기사 게재가 며칠 뒤로 밀렸다. 그 사실을 전하자 이들은 “당연한 것”이라며 문자를 보내왔다.

## 11월 3일, ‘뫼띠’ 17회가 인터넷에 공개됐다. 제목은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요’. 바갈라딘은 ‘때로는 너무 넓고, 때로는 너무 좁은 앞날개. 이곳을 메우기 위해 저자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편집자는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들어보자’고 SNS에 소개했다. 언제 또 녹음을 했을까. 그들의 말대로 ‘소재 고갈’은 멀어보인다. 이들의 열정과 활약은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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