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문학동네·1만3000원
1989년 봄, 김연수는 ‘영문도 모른 채’ 대학 영문학과 신입생이 되어 있었다. 본래 천문학과를 지망했던 그는 전기 입시에 실패한 뒤 과도 다른 후기 대학에 입학한 터라 “영문학과 신입생으로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중앙도서관을 놀이터 삼아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한 그는 곧 노트에다 무언가를 쓰게 되었고 그 결과 1993년에 시로, 이듬해에는 소설로 등단했다. 그러니까 올해는 그가 등단한 지 20년이 되는 해라는 뜻. 벌써?!
20여 성상을 작가로 살아 온 ‘중견’ 작가 김연수(사진)가 새로 낸 책 <소설가의 일>에서 자신의 글쓰기 비결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작가 지망생을 위해 소설가들이 한권씩 쓰곤 하는 창작론인 셈이다.
“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
“소설가는 어떤 사람들인가? 초고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소설가의 일>에서 김연수가 강조하는 것은 쓰고 또 쓰는 일의 중요성이다. 어떻게 하면 소설을 쓸 수 있냐는 질문에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소설을 쓰면 된다”는 장난 같은 대답을 내놓는데, 농담처럼 들리는 이 말에 소설가라는 실존의 본질과 고뇌가 들어 있다. 소설가는 쓴다는 행위 속에서만 소설가라는 것, 한번 소설을 썼다고 해서 다음 소설 쓰기가 그만큼 수월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그 고뇌 어린 본질의 핵심이다.
“생각하지 말자. 구상하지 말자. 플롯을 짜지 말자. 캐릭터를 만들지 말자.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자.”
김연수는 처음 쓴 문장을 토가 나올 정도로 고치고 또 고친다는 뜻에서 ‘퇴고’가 아닌 ‘토고’라는 말을 쓰는데,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가 권하는 방법은 하루 세시간씩, 하루에 원고지 5장을 꾸준히 써 버릇하라는 것이다.
소설가의 경험에서 우러난 구체적인 요령을 바라는 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김연수 자신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가리켜 “어떤 입양아가 자신의 출생과정에 대해서 알아내려고 고향을 방문했다가 수많은 비밀을 접하게 된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한 다음, 주인공의 행위에 대해 ‘왜?’와 ‘어떻게?’라는 두가지 질문을 거듭 던지고 그에 독창적으로 답하는 과정이 바로 소설 창작이라고 설명하는 데에서 보듯 독자 쪽의 실용적 궁금증을 풀어 주는 데에도 게으르지 않다. 그간 그가 쓴 소설들에 공통되는 한가지 숨은 비밀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의 서가 배치 원칙은 무엇인지에 관한 귀띔은 가외의 선물이랄까.
글 최재봉 기자,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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