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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입다물기 싫은 우리는 10대

등록 2014-12-04 20:20

중고생 학급 문집 글
감성 폭발 경험담 ‘실감’
나도 할 말 있음·나도 생각 있음
신경림·김병호·최재봉 외 엮음/창비교육·각 1만원

얄밉도록 똑 떨어지는 제목이 재미있다. 짧은 교복치마에 앞머리를 가지런히 내린 소녀가 ‘나도 할 말 있음’, 더벅머리에 안경을 쓴 소년이 ‘나도 생각 있음’ 팻말을 든 채 입을 앙다물고 시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어른들은 늘 말한다. “대학 갈 때까지 공부 말고는 다른 생각 하지 마.” “쪼끄만 게 무슨 할 말이 많아.”

2013년 창비는 한겨레신문사, 한국작가회의, 서울시, 각 시·도교육청과 손잡고 ‘우리 반 학급 문집 만들기’ 행사를 열었다. 아이들이 서랍 속에 접어뒀던 생각을 꺼내고 털어놓을 수 있는 판을 깔아주기 위해서다. 신청과 선정 작업을 통해 나온 802개의 중고생 학급 문집 가운데 골라 총 141편의 학생 글을 두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엄마, 나 사실 말 못 했던 비밀이 있는데// 시험 못 봐도 웃으면서 집에 들어가는 거/ 수백,수천 번은 고민하고 들어가는 거야/ 울면서 들어가면 엄마도 나도 더 슬퍼지니까/ 엄마가 나한테 너는 속도 없냐고/ 못 본 게 슬프지도 않으냐고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괜찮다고, 다음에 더 잘 보면 된다고 했던 내 대답/ 사실 다 거짓말이었어”(서울 혜성여고 장동은 ‘엄마에게’ 중)

<나도 할 말 있음>은 일상, 가족, 친구 편으로, <나도 생각 있음>은 사물·자연, 성장, 사회·역사, 독서·기행 편으로 갈래를 나눠 담았다. 가족 편에서는 위의 시처럼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 아빠에게 섭섭한 감정들이 자주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고단한 삶 속에서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고 반항했던 행동을 후회하며 다음엔 내가 더 참아야지 속 깊은 결심을 한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온 쓸쓸한 현관문/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데, 어?/ 구멍 난 양말 밖으로 쏙 튀어나온 엄지발가락// 괜스레 울컥해진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나의 존재처럼// 다른 발가락들은 모두 함께 포근한데/ 혼자서만 차가운 세상 구경하는 엄지발가락”(경기 화성 예담중 송혜원 ‘구멍 난 양말’) 성적 고민에 치이면서도 구멍 난 양말, 병아리 한마리에도 감성 ‘터지는’ 아이들은 모두 예민한 관찰자이자 시인들이다. 평소 늘 웃는 얼굴이지만 사실은 가면이고 좋지 못한 교우관계 때문에 힘들어도 부모에게는 꼭꼭 숨기며 “이런 제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요. 때문에 전 속으로만 울고 있죠”라고 써놓은 아이의 진짜 속내는 ‘글’이라는 매개가 없었으면 드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집이든 일기장이든 아이들에게 꽉 막힌 현실의 숨통을 틔워주는 방편으로 글쓰기를 권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그림 창비교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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