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집안 고구려 고분 환문총은 망자의 생전 생활이나 조상신들이 머무는 내세를 그린 당시 벽화와 달리 정체모를 겹둥근무늬 동심원들이 가득해 그 조성 경위와 내력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김영사 제공
고구려 고분 최고 권위자 전호태 교수
타임머신 탄듯 시대 넘나들며 비밀 탐구
타임머신 탄듯 시대 넘나들며 비밀 탐구
전호태 지음
김영사·1만6000원 무용총, 각저총, 강서대묘, 안악3호분, 덕흥리 벽화분…. 널방과 천장고임에 벽화가 가득한 고구려 고분은 끊임없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별자리, 사냥과 일상의 장면 등이 담긴 벽화는 1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인들의 삶을 읽어내고 그들의 내세관, 종교관, 우주관을 해석하는 장의미술이다. 중국 집안 고구려 무덤 환문총 벽화에는 정체 모를 겹둥근무늬 동심원들이 가득하다. 그 동심원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도 희미하게 비친다. 남겨진 벽화 아래 먼저 그려진 또 다른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120여기의 고구려 고분 벽화 가운데 세부적인 표현을 일부 수정한 사례는 많다. 하지만 먼저 그린 그림 위에 석회를 바르고, 주제를 바꿔 전혀 다른 그림을 다시 그린 경우는 환문총이 유일하다. 더욱이 망자의 생전 생활상이나 내세인 조상신의 세계가 아닌 동심원을 가득 채웠다. 현재까지 그 이유는 비밀로 남아 있다. <비밀의 문 환문총>은 그 미스터리의 해답을 찾아 1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전호태 울산대 교수(울산대박물관장)는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를 필생의 업으로 삼으며 축적한 성과를 이 책에 쏟아부었다. 환문총 미스터리를 고리 삼아 북한 남포의 강서대묘, 중국 집안의 무용총과 사신총 각저총 등 산재한 고분의 벽화 사진과 모사도는 물론 고분 조성 및 벽화 제작 방식, 발굴 기법 등에 관한 고고학적 지식을 종합적으로 풀어냈다. 또 고분이 조성될 당시인 4~6세기 동북아의 패권을 둘러싼 고구려와 북위, 송, 유연의 ‘4강’ 쟁탈전 속에서 전쟁포로나 노예로 팔려가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 불교 전파를 위해 고행의 길에 나선 승려들의 모습까지 두루 담아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서술 방식의 독특함이다. 지금껏 고구려 고분 벽화를 다룬 책들은 대부분 고고학적 전문서적 성격이 강했다. 대중적인 것조차 벽화 그림을 따라가며 해석하는 데 집중했다. <비밀의 문 환문총>은 미스터리 소설 형식을 차용했다. 벽화가 제작됐을 4~6세기, 발굴이 한창이던 일제강점기, 고분이 방치 훼손됐던 한국전쟁과 중국 문화혁명기까지 1500년의 역사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하듯 넘나들며 각 시대마다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벽화의 비밀을 풀어간다. 이야기는 1988년 여름 국립박물관 미술부의 신입 학예사 한인규에서 시작된다. 고구려 고분 환문총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한인규는 논문과 박물관 특별전 때문에 좀체 연구에 집중할 엄두를 못 내는 그야말로 신입이다. 하지만 대학 선배가 청계천 헌책방에서 구해 온 1960년대 후반 출간된 책 꾸러미 속에서 자신보다 먼저 환문총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고태일 교수의 자료를 접하면서 환문총의 실체에 한발 한발 다가가는 설정이다. 1966~76년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을 피해 연길로 떠난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 조선족 교사 이윤호와 한국전쟁 참전 동기 만대복의 회고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상황에 몰린 자신들이 대동강과 재령강, 중국 집안 일대에 산재한 고구려 벽화 무덤 속에서 추위와 미군의 폭격을 피하며 생존한 얘기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실제 고분이 방치되고 훼손된 당시 현실도 담아낸다. 또 벽화 발굴에 참여했던 가상 인물 아즈마 다다시 등의 독백을 통해 일제 강점기 고분을 발굴 조사한 일본 관학자들의 모습과 당시 발굴에 동원된 조선인의 고뇌를 다룬다. 120여기의 고구려 벽화 가운데 널리 알려진 무용총, 각저총, 강서대묘, 강서중묘 등이 일제 강점기에 발굴된 것을 염두에 둔 설정이다. 책의 주제인 한 무덤에서 벽화의 내용이 완전히 뒤바뀐 환문총의 비밀을 풀기 위해 지은이는 고구려의 요충지 북부여성을 지키는 성주 한보를 무덤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 생전 생활상과 사후 조상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려내는 당시 보편적인 벽화와 새로 도래한 불교 사상을 벽화에 구현하려는 인물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통해 당시 종교관, 내세관, 우주관의 충돌을 포착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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