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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위기의 시대’ 다시 마르크스에 길을 묻다

등록 2014-12-25 21:58

세월호 유족들의 진상규명 시위를 반대하는 우파단체의 집회.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석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마르크스의 <자본>을 다룬 책 발간 붐이 올 한해 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김성광 류우종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세월호 유족들의 진상규명 시위를 반대하는 우파단체의 집회.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석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마르크스의 <자본>을 다룬 책 발간 붐이 올 한해 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김성광 류우종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2014년 학술계
올봄부터 학계는 세월호 대참사로 떠들썩했다. 여름 내 원인 분석과 책임론을 둘러싼 분석이 잇따랐다. 9월엔 <21세기 자본> 지은이 토마 피케티의 방한과 마르크스의 <자본> 다시 읽기가 유행했다. 교육부가 입학생 급감에 대비하자며 준비해온 대학구조개혁안은 이명박 정권 때보다 더 후퇴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연말 도서정가제 실시를 앞두고 벌어진 책 할인행사에서 뜻하잖은 철학서 판매 붐이 일기도 했다. 흐름을 주도한 건 30~40대였다.

세월호 참사

침몰한 ‘세월호’ 선원의 생존율은 78%, 일반 승객은 68%, 학생은 그 3분의 1 수준인 23%에 그쳤다. 계간지 <역사비평> 겨울호 책머리에 정병욱 편집주간은 “학생들은 왜 그렇게 많이 죽었는가?”라며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가만있으라’는 명령 자체가 ‘배반’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누적된 사회경제적 문제가 압축적으로 터져나온 구조적 모순의 결과라고 보았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한국 자본주의 모델>(책세상)에서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무책임 자본주의”를 지목했다. 공공성을 외면하는 한국식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내릴 수 없는 배>(웅진지식하우스)를 펴낸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경제와 정치가 가장 슬프게 만나 일으킨 참사”로 규정하고 “아이들은 경기 진작을 위해 배에 강제로 ‘태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계간 <진보평론> 가을호에서 오창룡 고려대 연구교수는 ‘책임 회피’ ‘책임 축소’가 신자유주의 국가의 전략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지난 7월 방한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 또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정치권력이 재난에 ‘조직화된 무책임’으로 대응하려 하는 것을 꼬집었다.

지난 18일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발표회에서 나익주 전남대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원은 “보수 프레임의 덫에 걸려 참사의 진짜 원인인 신자유주의(민영화) 경제정책의 문제가 은폐되었다”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에 대한 비난 등 ‘매카시즘’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김정인 춘천교육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지난 5월 한국역사연구회 학술대회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능에 대한 비판까지 ‘종북’으로 매도한 것은 ‘종북 프레임’의 폐단 증상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라고 보았다.

토마 피케티.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석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마르크스의 <자본>을 다룬 책 발간 붐이 올 한해 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김성광 류우종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토마 피케티.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석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마르크스의 <자본>을 다룬 책 발간 붐이 올 한해 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김성광 류우종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피케티와 마르크스

지난 9월 출간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글항아리)은 12월 말 현재까지 8만5000부가 팔려나갔다. 한국의 보수적 경제학자들은 “71년생 아들뻘 학자”라며 무시했지만, 그의 실증적 분석은 만만찮았다. 300년에 걸친 과세자료를 놓고 부와 소득이 상위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왜 자본은 일하는 자보다 더 많이 버는가>(시대의창),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바다출판사), <불평등 경제>(마로니에북스), <피케티 패닉>(글항아리)도 출간되었는데, 일부는 피케티의 이론보다 더 뛰어난 통찰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마르크스 <자본> 관련 책들이 붐을 이뤄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더숲),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자본론 공부>(돌베개), 강신준 동아대 교수의 <오늘 ‘자본’을 읽다>(길), 번역서 <맑스를 읽다>(창비), <돈이 왕이로소이다>(솔)가 나왔다.

내년 피케티 열풍이 식을 것이라 보긴 힘들다. 당장 다음달 출판사 글항아리는 피케티의 <세금혁명>을 내고, 피케티와 함께 과세자료를 분석한 경제학자 앤서니 앳킨슨의 <불평등>도 4월께 미국과 거의 동시에 출간할 예정이다. ‘피케티 지수’를 한국 상황으로 계측한 정태인 칼 폴라니연구소 연구위원, 주상영 건국대 교수와 류동민 충남대 교수도 관련 책을 준비하고 있어 벌써부터 학계의 관심이 뜨겁다.

마르크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석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마르크스의 <자본>을 다룬 책 발간 붐이 올 한해 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김성광 류우종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마르크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석과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마르크스의 <자본>을 다룬 책 발간 붐이 올 한해 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김성광 류우종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
세월호 참사 원인 분석 잇따르고
피케티와 마르크스 관심 뜨거워
대학 구조조정 강행 속 철학서 인기

대학 위기·철학서 열풍

교육부가 2023년까지 입학정원 16만명을 줄이는 목표로 ‘대학 구조개혁’을 실시하겠다고 밝혀 대학가엔 광풍이 휘몰아쳤다. 한국대학학회(회장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는 대학 구조조정이 각 대학에 미치는 교육적 영향을 조사 분석하고 정책대안을 연구할 목적으로 지난 6월 출범했다. 학회는 전국 대학 순회토론회와 전국 학술대회를 열고 현장의 위기상황을 검토했다.

지난 23일 교육부의 구조개혁 확정안이 발표된 뒤 대학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학점관리의 적정성’이라는 교육부 방침에 따라 1점이라도 더 얻으려는 대학들이 올해 2학기 성적평가 방식을 엄격한 상대평가로 돌연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한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는 “학교에서 갑자기 엄정하게 성적평가를 해달라는 메일을 보내왔다”며 “교수의 자율성을 무시하며 학점까지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정말 모욕적”이라고 말했다.

대학 안에서는 인문학 위기 현상이 심각하지만,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특이하게도 철학서 구입 붐이 일었다. 11월21일 도서정가제 실시를 앞두고 연 할인행사에서 서양 철학서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아카넷은 11월14일부터 20일까지 니체 <비극의 탄생>을 1600권 판매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1·2>도 각각 1400~1500부 가까이 나갔고, <실천이성비판>도 1200부가 팔렸다. 평소 1년치 판매량에 가깝다. 도서정가제 실시 뒤 ‘판매 절벽’을 예상했지만, 30~40대들 사이에서 칸트 책 판매량은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다고 출판사는 밝혔다.

10여종의 칸트 철학서 번역을 해온 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철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칸트에 관심을 갖는다는 얘기에 외국 학자들도 놀라워한다”고 말했다. 니체·칸트·쇼펜하우어 따위의 어려운 서양 고전철학을 소장하려는 지적 허영일 수 있지만 이것이 철학 공부의 출발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백 교수는 “지금까지는 인식론인 ‘순수이성비판’쪽이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제 막 칸트 철학서를 읽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질문하는 ‘실천이성비판’을 먼저 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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