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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혀로 읽는 중국 역사

등록 2015-01-15 20:52

베이징덕으로 유명한 식당 ‘전취덕’에서 화덕에 오리를 굽는 1930년대 모습. 전취덕은 1864년 노점으로 시작해 1952년 국가와 개인이 공동 경영하는 공사합영 음식점이 됐다. 교양인 제공
베이징덕으로 유명한 식당 ‘전취덕’에서 화덕에 오리를 굽는 1930년대 모습. 전취덕은 1864년 노점으로 시작해 1952년 국가와 개인이 공동 경영하는 공사합영 음식점이 됐다. 교양인 제공
동서남북 섭렵한 ‘만한전석’
베이징 요리의 근본이 되다
매운맛 좋아했던 마오쩌둥
지금 전국에서 매운맛 경쟁
혁명의 맛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
교양인·1만6000원

중국의 4대요리는 베이징·상하이·광둥·쓰촨 요리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혁명의 맛>을 읽은 사람이라면 베이징 대신 산둥 요리를 넣고 싶을 것이다. 베이징 요리는 중국의 모든 맛을 대표하는 “정치적 중앙의 맛”이자 숱한 민족과 역사를 휘감는 요리의 용광로 같은 존재여서 다른 지방의 요리와 등가로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청나라 궁정 요리사가 거의 모두 산둥 출신이었을 만큼 산둥 요리는 중국 요리의 커다란 기둥이다.

오늘의 베이징 요리를 만든 일등공신은 청나라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은 변방의 가난한 민족으로서 광활한 대륙을 통치하기 위해 ‘한족문화 존중정책’을 썼다. 이 정책이 요리에 반영된 결과가 만한전석(滿漢全席)이다. “지방에 부임한 만주족 관리가 토박이 한족과 교류하는 방법이었는데, 연회를 베풀 때 만주족 요리와 한족 요리를 똑같은 숫자로 내놓는 것이다. (…) 남쪽 요리와 북쪽 요리를 각각 54종씩 마련하여 크고 작은 요리가 전체 108종, 거기다 만주족의 뎬신(點心, 가벼운 간식거리)을 44종 더한 규모가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만한전석이 처음 선보인 것은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 때였지만, 전성기를 누린 것은 제 6대 건륭제 때였다. “만약 건륭제가 남방 요리를 즐기지 않았다면 만주족과 한족의 융합은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 청나라 왕조는 한족 요리에 만주족의 풍미와 만주에 가까운 몽골 스타일의 맛을 섞고, 거기에 후이족(回族) 요리를 더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음식제국’을 완성하게 된다. 남방 요리 전통의 뿌리인 북송(960~1127)의 변경(지금의 허난성 카이펑)과 남송(1127~1279)의 임안(지금의 항저우), 쿠빌라이 칸(원나라)의 양고기와 주원장(명나라)의 쌀밥이 만한전석에 통째로 녹아 있는 것이다.

<혁명의 맛>은 ‘다리가 네 개 달린 것은 책상 빼고 다 먹는다’는 음식제국, 중국의 역사를 혀의 시각으로 정리한다. 한마디로 “요리에 깃든 해체와 융합의 중국사”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야심찬 기획은 지은이 가쓰미 요이치(1949~2014)의 천부적 감각과 개인적 행운 덕분에 가능했다. 요리 평론가이자 미술 감정가였던 그는 포르투갈 리스본과 프랑스 파리에서 음악과 미학을 가르치며 미슐랭 가이드북 제작에 참여한 미식가였다. 할아버지가 일본 도쿄에서 운영하던 미술품 가게 단골손님이던 중국인 유력자와의 인연으로 1960년대 말 문화대혁명 시절부터 중국을 드나들었다. 중국 방문 명목은 미술품 감정이었다.

혁명의 맛은 어떤 맛일까. 문화대혁명 당시 거민(주민)위원회가 운영하는 거민식당의 맛을 지은이는 이렇게 표현한다. “밍밍하고 시큼한 맛. (…) 흑초 맛도 나기는 했지만, 정체 모를 신맛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당시 널리 쓰이던 유지를 묻힌 저질 코크스 냄새가 배어들어서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하여튼 빈약하고 허전한 맛이었다. 외국에서는 얼마나 맛있는 중국 요리를 먹고 있는지 가르쳐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홍위병들은 유명 맛집들을 습격했다. “노동 인민 착취의 상징”이라며 간판과 메뉴를 바꿔 버렸다. 도회적 세련미는 사라지고 ‘농민적 요리’로 획일화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의 주역인 4인방이 드나들던 고급 연회장은 중국 요리의 전통을 지키고 있었다. 차오더우취안쯔(草斗圈子, 삶은 송아지 대창), 셰추(상하이 게의 살과 알을 이겨 만든 동그란 튀김), 훙사오자위(紅燒甲魚, 자라 간장 찜) 따위가 줄을 이어 나왔다. ‘죽의 장막’ 속살을 본 외국인에게 ‘혁명의 맛’은 ‘불평등의 맛’이었다.

마오쩌둥은 후난(湖南)의 성도인 창사에서 50㎞ 떨어진 샹탄을 지나 산골짜기로 60㎞를 더 들어간 사오산에서 태어났는데 이 지역은 특별히 요리라고 할 게 없는 곳이라고 지은이는 폄하한다. 마오는 유난히 매운맛을 좋아했다. “고추를 좋아하는 사람은 못 해낼 일이 없다. 홍군에 몸담은 이들 중에 고추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고추를 즐기는 쓰촨 사람과 후난 사람의 출신이 같기 때문인 것 같다는 게 지은이의 평이다. 마오쩌둥의 영향 탓인지 지금 중국 전역에서는 매운맛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직선적이고 명쾌한 맛, 미각을 수렴한 맛이다. 이를테면 두께가 1㎝나 되는 강철 청룡도를 예리하게 간 듯 선뜻한 느낌. 민간의 세련된 맛과는 또 다르다. 그런데 이제는 각 대원(군인들이 사는 거대한 구역)이 매운맛을 겨루게 되었으니 재미있는 일이다.” 2009년 사망한 지은이가 생전에 한국어판을 위해 별도로 추가했다는 제9장 ‘고추와 쓰촨 요리의 탄생’은 매운맛의 비밀에 관한 선명한 지식을 전해준다.

“중국의 맛은 남쪽은 달며 북쪽은 짜고 동쪽은 시며 서쪽은 맵다고 대략 나눌 수 있었으나 이 구분이 앞으로 몇 년이나 이어지겠나. 이제 순수한 만주족의 맛을 아는 사람은 없다. 한족도 마찬가지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무렵, 은퇴한 중국인 요리사가 지은이에게 했다는 이 말은 요리의 흥망성쇠만이 아니라 인간사의 덧없음에 대한 한탄 아닐까.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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