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초부터 1950년대 초까지 여성잡지들. 맨 윗줄 왼쪽부터 <성애> <위생과 화장> <일본부인>, 가운뎃줄 <부인> <근우> <여성지우>, 맨 아랫줄 <여성> <여인> <직업여성>.
개화기~해방공간 여성잡지 대거 발굴
개화기부터 해방공간까지 발간된 여성잡지들 가운데 본격적인 성담론을 다루거나 여성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발간한 잡지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개벽사의 <신여성>과 제호는 같지만 또 다른 <신여성> 잡지도 새로 발굴됐다. 이 잡지들은 최근 <아단문고 미공개 자료총서 2014>(소명출판)를 발간하는 과정에서 확인된 것이다. 총 39권짜리 세트(390만원)로 나온 이번 총서는 1910년대 초부터 1950년대 초까지 발행된 여성잡지 45종 228권을 영인본으로 묶었다. 대부분 원본 상태로 처음 공개되는 희귀본이다. 재단법인 아단문고가 소장한 근현대 간행자료를 영인본으로 묶어내는 4번째 총서다.
아단문고 미공개 자료총서 2014
45종 228권 묶어…원본 첫 공개
“정조관념 몰락” 본격 성담론에
공장 여성 내세워 주체성 강조도
기존 ‘신여성’과 동명잡지도 발굴
‘군국 어머니’ 뜻…일제 선동용인듯 이번에 처음 발굴된 잡지 <성애>는 1924년 3월 창간됐다. 여성의 성 담론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여성지로서 확인된 것은 이번 2호가 유일하다. 편집인 윤석중은 “썩어진 인습주의에 대한 강렬한 반대운동을 일으키어라”라고 선동했고, ‘연애혁명’ ‘열정적인 이태리 학생의 연애’ ‘정조관념의 비판’ 등의 기사를 다뤘다. 그런데 잡지 표지엔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쥐고 괴로워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총서에서 잡지표지 해제를 쓴 서유리 충남대 강사는 “여성은 자유연애의 대가로 슬픔을 얻을 것임을 경고하는 듯하다”고 풀이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성 담론을 펼쳤지만, 남성 인사들이 대거 필명이나 가명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총서에 수록된 1930년대 잡지 <여성시대> 기사 ‘신정조론’도 “묵은 의미로서의 정조관념은 흔들리고 있다. 그것은 몰락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기존에 알려진 개벽사의 <신여성>(1924년 창간)과 다른 또 하나의 <신여성>도 발굴되었다. 이 ‘신여성’이란 ‘모던 걸’이 아니라 태평양 전쟁 말기 후방을 지키는 책임을 진 ‘군국의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발행인과 편집인은 모두 일본인이며, 발행처인 흥아문화출판주식회사는 ‘내선일체’와 ‘황민화정책’을 선동한 잡지인 <녹기>를 펴낸 곳이었다. 해제를 쓴 서지학자 오영식씨는 “흥아문화출판주식회사는 일제강점 말기의 출판문화 한 축을 장악하고 있었던 세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대일본부인회조선본부에서 1944년 창간한 <일본부인>의 일본어판 외에도 우리말판이 처음 발굴되었다. 정비석, 장덕조, 조풍연의 글이 실려있고, 이광수의 ‘갱생소설’을 실었다. 황민화 정책 홍보용으로 보인다.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한 잡지들도 두루 확인된다. 영인본으로 처음 공개된 <여인>(1932년 6월 창간)은 온건 좌파 경향의 <비판>(1931년 5월 창간)의 자매지다. 공장 설비를 배경으로 신문을 보는 여성의 모습을 싣고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여인들의 옥중편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2호와 4호가 새로 발굴된 월간종합여성지 <현대부인>(1928년 창간)은 1920년대 중후반 조선에 만연한 사회주의 사상의 자장 안에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발행인 이정화는 무산자계급운동가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조직에 간여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노선은 대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아, 창간호가 며칠만에 매진될 정도였다. 1931년 6월께 창간한 <현대여성>은 달려가는 로봇 기계에 올라탄 현대 여성이 로봇을 이끌며 달려나가는 잡지 표지를 형상화했다. “금후 조선의 현대여성의 과업”으로 과학을 중요하게 내세우며 모성과 과학, 산업과 지식과 노동을 위해 헌신할 현대여성의 모습을 강조했다. 1950년 6월1일 직업여성문화사에서 창간한 <직업여성>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 창간돼 창간호가 종간호였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와 독자 대부분이 방직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고려방직 탐방을 특집으로 다뤘으며, 부녀국장 유각경이 ‘여성근로자의 나갈 길’을 썼다. 서지학자 오영식씨는 해제에서 “지금까지 발간된 다른 영인본에서 빠진 부분을 새롭게 다수 보충했으며, 최초로 영인본이 소개되는 종류가 여러권 수록되어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동해제자 국문학연구자 신혜수(이화여대)씨는 “여성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거나 사상가·운동가들이 실천을 위해 만든 잡지들이 기존에 알려져 있지만, 현장 여성들이 하위주체로서 자발적이고 주체성을 드러낸 잡지들이 이번에 다수 발굴된 것이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그림 소명출판·아단문고 제공
45종 228권 묶어…원본 첫 공개
“정조관념 몰락” 본격 성담론에
공장 여성 내세워 주체성 강조도
기존 ‘신여성’과 동명잡지도 발굴
‘군국 어머니’ 뜻…일제 선동용인듯 이번에 처음 발굴된 잡지 <성애>는 1924년 3월 창간됐다. 여성의 성 담론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여성지로서 확인된 것은 이번 2호가 유일하다. 편집인 윤석중은 “썩어진 인습주의에 대한 강렬한 반대운동을 일으키어라”라고 선동했고, ‘연애혁명’ ‘열정적인 이태리 학생의 연애’ ‘정조관념의 비판’ 등의 기사를 다뤘다. 그런데 잡지 표지엔 얼굴을 두손으로 감싸쥐고 괴로워하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총서에서 잡지표지 해제를 쓴 서유리 충남대 강사는 “여성은 자유연애의 대가로 슬픔을 얻을 것임을 경고하는 듯하다”고 풀이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성 담론을 펼쳤지만, 남성 인사들이 대거 필명이나 가명으로 글을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총서에 수록된 1930년대 잡지 <여성시대> 기사 ‘신정조론’도 “묵은 의미로서의 정조관념은 흔들리고 있다. 그것은 몰락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기존에 알려진 개벽사의 <신여성>(1924년 창간)과 다른 또 하나의 <신여성>도 발굴되었다. 이 ‘신여성’이란 ‘모던 걸’이 아니라 태평양 전쟁 말기 후방을 지키는 책임을 진 ‘군국의 어머니’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발행인과 편집인은 모두 일본인이며, 발행처인 흥아문화출판주식회사는 ‘내선일체’와 ‘황민화정책’을 선동한 잡지인 <녹기>를 펴낸 곳이었다. 해제를 쓴 서지학자 오영식씨는 “흥아문화출판주식회사는 일제강점 말기의 출판문화 한 축을 장악하고 있었던 세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대일본부인회조선본부에서 1944년 창간한 <일본부인>의 일본어판 외에도 우리말판이 처음 발굴되었다. 정비석, 장덕조, 조풍연의 글이 실려있고, 이광수의 ‘갱생소설’을 실었다. 황민화 정책 홍보용으로 보인다.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한 잡지들도 두루 확인된다. 영인본으로 처음 공개된 <여인>(1932년 6월 창간)은 온건 좌파 경향의 <비판>(1931년 5월 창간)의 자매지다. 공장 설비를 배경으로 신문을 보는 여성의 모습을 싣고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간 여인들의 옥중편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2호와 4호가 새로 발굴된 월간종합여성지 <현대부인>(1928년 창간)은 1920년대 중후반 조선에 만연한 사회주의 사상의 자장 안에 있었던 것이 확인된다. 발행인 이정화는 무산자계급운동가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조직에 간여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노선은 대중의 열렬한 환호를 받아, 창간호가 며칠만에 매진될 정도였다. 1931년 6월께 창간한 <현대여성>은 달려가는 로봇 기계에 올라탄 현대 여성이 로봇을 이끌며 달려나가는 잡지 표지를 형상화했다. “금후 조선의 현대여성의 과업”으로 과학을 중요하게 내세우며 모성과 과학, 산업과 지식과 노동을 위해 헌신할 현대여성의 모습을 강조했다. 1950년 6월1일 직업여성문화사에서 창간한 <직업여성>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 창간돼 창간호가 종간호였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와 독자 대부분이 방직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었다. 고려방직 탐방을 특집으로 다뤘으며, 부녀국장 유각경이 ‘여성근로자의 나갈 길’을 썼다. 서지학자 오영식씨는 해제에서 “지금까지 발간된 다른 영인본에서 빠진 부분을 새롭게 다수 보충했으며, 최초로 영인본이 소개되는 종류가 여러권 수록되어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동해제자 국문학연구자 신혜수(이화여대)씨는 “여성을 계몽의 대상으로 삼거나 사상가·운동가들이 실천을 위해 만든 잡지들이 기존에 알려져 있지만, 현장 여성들이 하위주체로서 자발적이고 주체성을 드러낸 잡지들이 이번에 다수 발굴된 것이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그림 소명출판·아단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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