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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코맥 매카시와 엘리 위젤, 하느님을 법정에 세우다

등록 2015-01-22 20:18

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1만1000원

샴고로드의 재판
엘리 위젤 지음, 하진호·박옥 옮김/포이에마·1만2000원

“많은 아이들이 부모한테 버림받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마약을 하고 매춘에 종사합니다. 왜 하느님은 이런 일들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시나요? 아이들은 아무 죄도 없는데요.”

지난 18일 필리핀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열두살짜리 소녀가 울면서 던진 질문이다. 교황은 소녀의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못하고 한동안 소녀를 끌어안아 주기만 했다. 교황은 준비해 온 영어 연설을 하는 대신 스페인어로 즉흥 연설을 했다. “소녀는 대답이 있을 수 없는 질문을 던진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말이 아니라 눈물로써 표현했어요.”

신은 왜 악행과 비극을 보고만 있는가? 교황도 대답할 수 없었던 소녀의 질문과 통하는 문학작품 두권이 나왔다. <로드>의 작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 <선셋 리미티드>와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유대인 작가 엘리 위젤(87)의 희곡 <샴고로드의 재판>이 그것이다.

<선셋 리미티드>는 철로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한 백인 대학교수와 그를 구한 흑인 목사 사이의 논쟁으로 이루어진 ‘희곡 형식 소설’이다. 백인은 삶이란 무의미하지 않으면 유해한 헛수고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울부짖는 공허 속에 알 수 없는 몸짓을 하며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하나의 물건”이며 “그 생명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믿는다. “세상이란 기본적으로 강제노동수용소이고 (…) 사람들이 세상을 낫게 만들려고 노력할수록 어김없이 세상은 더 나빠졌”다고 파악한다. 극도의 염세주의다.

흑인은 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에서 동료 죄수와 싸움을 벌여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때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너는 여기 있을 수 없을 거다.” 그 뒤 크게 개심한 그는 흑인 빈민가에서 마약과 범죄에 찌든 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져서 어떻게든 크게 한 걸음을 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을 하느님이 눈여겨보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왜 하느님은 비극을 방치하시나?
소녀가 교황에게 던진 그 질문
선과 악, 죄와 구원 다룬 작품들

“빛이 선생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만 선생이 어둠밖에 보지 못할 뿐이다. 그 어둠은 바로 선생이다. 선생이 그 어둠을 만드는 것이다.”

논쟁은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고 교수는 좌절된 자살 시도를 다시 하겠노라면서 자리를 뜬다. 논쟁에서 밀리고 교수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목사는 하느님에게 묻는다. “내가 저 사람을 돕기를 원하셨다면 왜 나한테 할 말을 주시지 않은 겁니까? 저 사람한테는 할 말을 주셔놓고. 나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198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의 희곡 <샴고로드의 재판>은 하느님을 피고로 삼은 모의재판을 등장시킨다. 재판이 벌어진 17세기 동유럽 마을 샴고로드에서는 유대인 집단학살의 광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고, 그 학살의 와중에 가족을 잃고 어린 딸이 잔인하게 윤간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여관 주인 베리쉬가 하느님을 재판정에 세운다.

“살인자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인하게 두면 신에게 책임이 있는 거요. 고통당하거나 고통을 야기하는 모든 사람, 강간당한 모든 여인, 학대당하는 모든 어린이는 신이 연루되어 있음을 보여주오.”

“인간이 서로를 죽이고 있을 때, 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당신은 그분을 살인자들 사이에서 봅니다. 하지만 전 그분을 희생자들 사이에서 찾지요.”

‘검사’ 베리쉬에게 맞서 하느님의 ‘변호인’을 자처한 낯선 사내 샘은 말한다. 신의 깊은 뜻을 인간은 알 수 없고 우리에게 남은 일은 “인내. 수용. 그리고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차분한 논리와 두터운 신앙심으로 뭉친 샘의 변호는 바위처럼 단단하다. 그러나 그가 다름 아닌 사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결말은 이 희곡을 다양한 해석을 향해 열어 놓는다.

소녀의 질문에 대한 교황의 ‘답’은 눈물이었다. “울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너의 질문에 가까이 갈 수 있다”고 교황은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어떤 사실들은 눈물로 씻은 눈으로만 볼 수 있다”고. 자살하려는 교수와 샴고로드의 유대인에게 그 대답은 충분할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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