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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근대-전근대-탈근대 뒤섞인 ‘긴 20세기’

등록 2015-01-22 20:36

이승만(왼쪽 사진 오른쪽)과 박정희는 20세기 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을 지배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승만(왼쪽 사진 오른쪽)과 박정희는 20세기 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을 지배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임혁백 고려대 교수 연구 집대성
‘비동시성’으로 한국의 근대 설명
“전근대적 가산주의 청산해야”
비동시성의 동시성
-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
임혁백 지음/고려대학교출판부·4만3000원

등이 휠 것 같은 ‘시간’의 무게였다. 영화 <국제시장>의 논란 또한 각자 다른 20세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충돌일지 모른다. 21세기, 아직도 누군가는 ‘옛날’인 전근대적 시간대에 틀어박혀있다. ‘지금 여기’의 한국인들 모두가 ‘동시대인’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비동시성의 동시성-한국 근대정치의 다중적 시간>은 1876년 개항 뒤 2015년인 지금까지 100년 넘게 지속되는 ‘긴 20세기’를 분석한 연구서다. 거시역사적, 정치학적 관점으로 복잡한 근대적 시간의 경합과 충돌 양상을 재검토했다. 한국의 대표적 정치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정책대학원 원장)가 장장 856쪽에 걸쳐 지금까지의 연구를 집대성해 20세기 한국인들의 저항과 순응, 변혁과 협력, 기대와 실망에 대한 중층적인 분석에 나섰다.

이 책이 가리키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란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의 개념에서 비롯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지금’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서구를 단시일 내에 따라잡으려는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에 이 개념이 잘 들어맞는다고 판단하고 블로흐의 주장을 한국에 맞게 발전시켰다.

한국 근대화의 바탕에는 권위주의적 산업화와 민주주의 발전론이라는 커다란 대립이 있었다. 역사적 충돌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일찌감치 나타났다. 식민지 한국과 일본제국주의의 시간이 맞불을 일으킨 이때, 일제 협력 지주는 근대적 토지 소유권을 얻었고 농민들은 전근대적 소작인으로 퇴행했다. 식민지 지식인들은 탈근대적 경향까지 나아간 반면, 빈곤층과 항일운동세력은 디아스포라로 전락했다.

해방의 시간(1945~48)에는 국가건설이라는 ‘근대’의 시간과 민족 파괴라는 ‘탈근대’의 시간이 공존해 한국 근대화의 비극적 씨앗이 뿌리를 내렸다. 미군정은 농민 유화정책의 하나로 신한공사 관리 토지를 재분배했으며, 그 대가로 농민들은 미 군정의 단독정부 수립 정책에 순응하고 이승만 정권을 끝까지 지지했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도 ‘자유헌정주의’와 ‘반공적 국가주의’가 대립했다. 특히 주권의 소재를 ‘인민’에서 ‘국민’으로 바꾼 과정은 서로 다른 근대를 상상한 세력간의 충돌 양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애초 유진오가 제출한 헌법기초안은 ‘인민’이란 말을 사용했지만 냉전 탓에 ‘국민’이란 단어를 최종 선택했다. 지은이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세계에서도 희귀한 단일민족(한겨레, 배달민족)의 파괴를 통해 ‘결손 근대국가’가 탄생했다고 본다. 그뒤 한국전쟁은 국민들에게 자신의 ‘국가’가 어느 진영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쳤고, 한국은 분단국가로서 확실한 자기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1960년대의 주역은 대학생들과 군인들이었다. 특이한 점은 1963년 선거에서 4·19혁명의 주역과 5월 쿠데타의 주역들 사이에 화해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일부 대학생들은 윤보선을 옛 지주계급을 계승한 것으로 인식했고, 박정희에게서 ‘혁신’ 후보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권위주의적 근대의 시간으로 통합을 시도했고, 그 결과 실패했다.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이 노동자들과 연합해 형성한 ‘민중민주주의’라는 대항적 헤게모니의 도전을 거세게 받은 것이다.

박정희 사후 전두환과 정치군인들은 ‘서울의 봄’을 마감시킨 뒤 광주민주화항쟁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며 군부 권위주의를 복원시켰다. 지은이는 전두환에 대해 국민들의 사랑도, 공포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 “최악의 리더”였다고 평가한다. 노태우는 “스마트하지 않으면서 게으른 리더”였지만 민주주의 과도기를 부드럽게 넘긴 인물이라고 분석한다. 김영삼은 ‘권력의 사유화, 세습화, 가족주의’라는 가산주의와 민주적 응답성을 결여한 리더였다. 김대중은 ‘책임윤리’에 충실했으며 복지국가의 밑돌을 괸 “애통해하는 리더십”으로 분류한다. 가장 진일보한 과거청산·인권보호·국가폭력 예방 조처를 추구한 노무현은 “공론장 에티켓과 포용이 없는 ‘토론 공화국’”의 리더였다고 본다. 이명박은 정치를 사유화하는 ‘사인주의’적 리더였으며 ‘고소영라인’ 같은 전근대적 가산주의 전통을 심화시켰다.

지은이는 결론에서 ‘지금, 여기’의 문제를 소환한다. “‘근대의 시간’은 과거 시간으로 기억되지 않고, 현재 산업화 시간을 이끈 주역들과 자손들이 ‘탈근대의 대한민국’을 이끄는 역사적 시간의 역진을 목격하고 있다.” 경제위기 때마다 일어나는 ‘박정희 향수론’ 같은 퇴행적 신드롬을 주의하라는 뜻이다. 지은이는 “산업화의 성공을 위해서 민주주의가 후퇴해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발전론의 관점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민주주의 무능론’은 실증적 근거가 전혀 없고, 민주적 발전론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절대 우위에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무엇보다 정치·사회 영역에서 전근대적 가산주의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의 사례에서 보듯 “전근대적 가산주의의 시간이 근대적인 민주적 선거에서도 작동”하고 있으며, 한국의 재벌기업이나 사립대학 족벌체제에서도 이런 전근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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