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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얼어붙은 땅에서 기다리는 동포들

등록 2015-01-22 20:41수정 2015-01-22 20:41

잠깐독서
사할린
최상구 지음/일다·1만3500원

새해에도 사할린에 음력 달력이 배달됐다. “초복 4일 전에 배차 심고, 중복 때 무 심어요. 그러면 그거 가지고 김장 하요.” 우글레고르스크에 사는 최문자씨는 시민단체 지구촌동포연대가 가져온 음력 달력을 받아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일상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구하기는 어려운 음력 달력. 한인들은 공책에 일년 열두달을 그려 넣고 음력을 계산해서, 설과 추석, 24절기가 언제인지 표시해 둔다. 손 없는 날에 이사하고 음력 물때에 맞춰 조개 잡고, 절기에 맞춰 1년 농사를 짓는다. 음력은 부모에게서 대물림된 고향이다. “까레얀카”(한국 여성)라고 자신을 규정하는 이들은 달력에 인쇄된 고향 풍경을 보고는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간 ‘최고의 오락거리’ <한국방송>을 보며 시름을 달래왔지만, 2012년 디지털 전환이 되고 나서는 그마저 안나와 답답하다. 고국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무국적 설움의 간난고초를 견뎌낸 그들에게 ‘1945년 8월15일 이전 사할린에서 출생자’라는 영주귀국 조건은 또다시 가족해체의 아픔을 불렀다.

‘현대판 고려장’이 되지 않으려면, 귀국 대상자를 넓히고 그곳에 남은 이들도 지원하는 ‘사할린 동포 특별법’이 속히 제정돼야 한다. 일제의 강제징용으로 비롯돼 해방 뒤 소련에 탄압받고 조국에 외면받은 ‘역사의 희생양’. 지은이는 사할린에서 직접 만난 한인들의 간절한 목소리와 고단한 삶을 기록하며, 이제 대한민국이 존재 이유를 답할 때라고 강조한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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