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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위대한 생각 발전기, 커피를 생각한다

등록 2015-01-29 21:05수정 2015-01-31 10:02

커피의 각성 효과는 철학과 잘 어울린다. 커피가 없었던 플라톤 시대에는 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술을 마실 때 도출되는 철학적 씨앗은 커피에 미치지 못한다. “감각이 무뎌지거나 자제력이 약해져,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지 않고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생각을 표출하게 (되고) 술기운이 떨어지는 순간 (…) 열렬하던 확신도 어디론가 사라진다.” 따비 제공
커피의 각성 효과는 철학과 잘 어울린다. 커피가 없었던 플라톤 시대에는 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술을 마실 때 도출되는 철학적 씨앗은 커피에 미치지 못한다. “감각이 무뎌지거나 자제력이 약해져,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지 않고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생각을 표출하게 (되고) 술기운이 떨어지는 순간 (…) 열렬하던 확신도 어디론가 사라진다.” 따비 제공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
스콧 F. 파커·마이클 W.오스틴 외 지음, 김병순 옮김/따비·2만2000원

커피이스트 매니페스토
스티븐 D. 워드 지음, 김경영 옮김/초록물고기·1만2800원

다섯살짜리 루이 15세를 제치고 섭정이 된 오를레앙 공을 비방한 죄로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된 볼테르는 하루 평균 60잔의 커피를 마신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파리의 카페는 지식인과 계몽운동의 후예들로 문턱이 닳을 정도였다는데, 1789년 7월14일 파리에서 가장 유명했던 ‘카페 드 푸아’에서 나온 일단의 프랑스 혁명가들이 바스티유 감옥으로 돌진했던 건 우연이 아닌 듯하다.

정신을 깨어있게 하는 ‘생각 발전소’ 커피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합리한 제도와 국왕의 폭거에 대한 비판 정신을 벼리게 했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논리적으로 말 잘하는 사람이 으뜸이었던 카페 문화는 혁명 정신의 요람이 되기에 충분했다. 유럽의 국왕들은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건너온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며 금지시키고 카페를 폐쇄했는데,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그들로서는 당연한 처사였던 것 같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초기 저작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공론장으로서 커피하우스를 조명한다. 하버마스는 당시 영국 정부의 성명서 중 하나를 인용한다. “사람들은 자유를 함부로 휘두르면서, 커피하우스뿐만 아니라 공적이든 사적이든 온갖 장소와 모임에서까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비방하고, 국왕 폐하의 선량한 온 백성의 마음속에서 시기와 불만이 싹트고 자라도록 선동함으로써, 국가의 운영 방식을 감시하고 모욕해왔다.”

여러 철학자들과 커피 전문가들이 함께 쓴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은 형이상학과 문학, 미학, 윤리학의 영역으로 나눠 커피를 사색하는 독특한 책이다. 철학의 대중화를 주창한 ‘만인을 위한 철학’ 시리즈의 하나다. 대화와 우정, 예술과 독서, 정치와 혁명이 커피와 어떤 관계인지 밝히는 것도 이 책의 관심사다.

커피의 각성 효과는 철학과 잘 어울린다. 커피가 없었던 플라톤 시대에는 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술을 마실 때 도출되는 철학적 씨앗은 커피에 미치지 못한다. “감각이 무뎌지거나 자제력이 약해져,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지 않고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생각을 표출하게 (되고) 술기운이 떨어지는 순간 (…) 열렬하던 확신도 어디론가 사라진다.” 따비 제공
커피의 각성 효과는 철학과 잘 어울린다. 커피가 없었던 플라톤 시대에는 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술을 마실 때 도출되는 철학적 씨앗은 커피에 미치지 못한다. “감각이 무뎌지거나 자제력이 약해져,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지 않고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생각을 표출하게 (되고) 술기운이 떨어지는 순간 (…) 열렬하던 확신도 어디론가 사라진다.” 따비 제공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도덕성의 표준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아무 이유 없이 아기를 끓는 물에 삶는 것은 잘못된 짓이라고 느낀다. 따라서 “갓 볶은 신선한 원두커피가 오래된 묵은 커피보다 더 맛있다”거나 “강배전 커피가 약배전 커피보다 더 좋다” 같은 심미적 판단 역시 “보편적인, 요컨대 완벽하지는 않지만 거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취향”의 기준을 정할 수 있다. “<트와일라잇>이라는 소설을 좋아한다고 그 사람이 잘못되었다거나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 밖의 생각”이지만 “<트와일라잇>이 이를테면 <일리아드>나 <오디세이>보다 더 뛰어난 문학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더 밀고 나가면 “당신이 커피를 마실 때 누구나 진정으로 공감하는 특성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맛을 음미하지 않는다면, 이는 아마도 도덕적으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악마의 음료’ 비난받던 커피
혁명을 볶아낸 커피하우스
“커피 맛을 음미하지 않는다면
도덕적으로 게으름을 피우는 것”
직접 커피 볶는 사람 많아질수록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몫 늘어

사르트르가 밤마다 카페를 찾았다는 것은 철학사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인간을 극단의 고독한 존재로 묘사한 실존주의는 토론을 중시하는 커피하우스 정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르트르의 음울한 실존주의는 노트북과 아이팟의 세계에 몰입한 채 ‘대중 속의 고독’을 즐기는 스타벅스와는 잘 맞는 측면이 있다. “오늘날 커피하우스는 상호 작용의 장소이기보다는 공동 고립의 장소가 되었다.”

사람이 먹고 마시는 물질 가운데 커피만큼 찬반 논란이 그치지 않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1000여년 전, 에티오피아의 목동이자 시인이었던 칼디가 염소들이 커피나무 잎사귀와 열매를 먹은 뒤 뒷발로 서서 춤을 추는 것을 목격한 이래, 커피는 ‘까만 흙탕물과 만병통치약’ 사이를 오가며 극단의 비난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런던의 여성들은 커피가 자기 남편이나 애인의 생식 기능을 약화한다고 굳게 믿었다.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커피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논란에서 이 책은 확실히 커피를 지지하는 쪽에 서 있다. “18세기 말 스웨덴 왕 구스타프 3세는 커피가 독약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실험을 했는데, 살인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한 사람에게는 날마다 커피를 마시게 하고, 또 다른 죄수 한 사람에게는 차를 마시게 했다. 하지만 두 죄수는 모두 왕과 그들을 관찰한 의사들보다 더 오래 살았다.”

이 책이 철학만을 논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하지만 최저 구매 가격을 추구하는 공정무역보다, 농민들과 ‘직접 무역’을 하는 ‘스텀프타운’ 같은 원두 업체들을 소개하며 ‘녹색 커피’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 속하는 커피 재배 농민들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돌아가는 방법에 대한 실천적 고민이다.

조선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D. 워드가 쓴 <커피이스트 매니페스토>는 좋은 커피를 찾아 나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용적인 조언을 모은 책이다. 예를 들어 커피 나무는 크게 ‘코페아 아라비카’와 ‘코페아 카네포라’(로부스타)로 나눌 수 있는데 주로 인스턴트커피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로부스타 품종은 피하는 게 좋다고 워드 교수는 말한다. “로부스타 원두는 커피를 블렌딩할 때 (양을) ‘채우는’ 용도로만 사용해 대단히 우수한 아라비카 품종의 원두에 나가는 돈을 절약한다. (…) 한번은 서울에 있는 한 카페에서 프리미엄 로부스타를 사용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핸드드립 커피를 다른 카페의 반값에 판다고 자랑스럽게 써 붙여 놓은 것을 보았다. ‘한국의 베벌리 힐스’라 불리는 그 유명한 강남에 있는 카페였다. 프리미엄과 로부스타를 한 문장 안에 넣는 사람은 커피 업계에 몸담고 있을 자격이 없다.”

커피 로스팅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미치도록 쉽기 때문”이라며, 집에서 커피를 볶자고 선동한다. 집에서 커피를 볶고 내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커피 가공과 유통 절차를 단축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커피 농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커피이스트들이여, 나와 함께 문화대혁명을 일으키자. 힘을 되찾고, 지갑을 사수하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자.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말되, 서로 도와 커피를 만드는 의식과 풍경과 소리를 음미하고, 더 나아가 삶의 작은 일에도 감사하자. 동지들이여, 이 시대에는 그것이 곧 혁명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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