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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9세기 이탈리아에서 대한민국을 읽다

등록 2015-02-05 20:26수정 2015-02-08 23:03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한 안토니오 그람시(왼쪽)와 르네상스 시대 <군주론>을 쓴 니콜로 마키아벨리. 그람시는 파시스트의 감옥에 갇혀 집필한 <옥중수고>에서 마키아벨리를 100번 이상 언급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한 안토니오 그람시(왼쪽)와 르네상스 시대 <군주론>을 쓴 니콜로 마키아벨리. 그람시는 파시스트의 감옥에 갇혀 집필한 <옥중수고>에서 마키아벨리를 100번 이상 언급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책과 생각]
뒤늦은 근대화, 친외세적 지배계급
주변국 침략에 시달린 공통점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한 그람시가
마키아벨리 100번 넘게 언급한 건
역사적 실천 모델 필요했기 때문
그람시의 군주론
김종법 지음/바다출판사·1만6000원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100번 넘게 등장한다. 병약한 몸으로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했으나 파시스트의 집중적인 탄압을 받아 감옥에서 나오자 마자 숨을 거둔 비운의 혁명가 그람시. 메디치 가문을 몰아내고 세운 피렌체 공화국의 고위공직자였으나 메디치 가문 복귀 뒤 가혹한 고문을 받고 시골에 은둔하며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 둘의 조합은 언뜻 논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감옥에 갇혀 절박한 심정으로 글을 쓰면서 그람시는 왜 그토록 애타게 마키아벨리의 이름을 불렀을까. 그람시의 발자취를 좇아, 그람시가 다녔던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에 입학해, 그람시를 다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지은이가 품은 의문이다.

현재 대전대 글로벌융합창의학부 교수인 지은이는 자신이 던진 의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람시가 살던 20세기 초의 이탈리아는 구체제의 불완전성과 새로운 시대를 향한 강력한 열망이 혼재되어 있었다. (…) 그람시는 마키아벨리를 통해 정치정당과 의회 문제 및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까지 끄집어내고 있으며, 마키아벨리를 역사·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 문제를 해결할 출발점으로도 삼고 있다.” 도시국가들이 난립하던 마키아벨리 시대와 파시즘의 약진 속에 좌파 정당들이 지리멸렬하던 20세기 초의 유사성에 그람시가 주목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 필요한 신생군주의 덕목을 정리한 책인데, 여기서 그람시는 ‘현대군주’로서의 정당을 호출한다. “실제의 한 인격체이거나 하나의 구체적인 개인”이 아닌 “유기체”로서의 군주, 정치정당이다. “그것은 보편적이고 전체적인 것이 되고자 하는 집단의지의 맹아들이 함께 모여 싹을 틔운 최초의 세포인 것이다.”(<옥중수고> 노트 13권 제1항 ‘마키아벨리 정치학에 대한 간단한 주석’)

그람시는 정당만이 아니라 ‘헤게모니’론이나 지배계급의 ‘역사적 블록’, ‘남부문제’를 비롯한 지역 격차 등을 설명하면서 마키아벨리를 소환한다. 이탈리아 역사에서 지배계급이 어떻게 헤게모니를 유지해 왔는지, 지식인은 그 안에서 어떤 구실을 했는지를 설명하고 그 구조를 해체하려 했던 그람시에게 마키아벨리는 실천적인 선구자 모델이었다.

지은이가 보기에 그람시를 통해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논점은 리소르지멘토(이탈리아 통일운동)를 비롯한 이탈리아 역사에 있다. 주변 열강들이 일찍 통일을 이뤄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바탕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데 반해, 이탈리아는 19세기 중반까지도 여러 도시국가로 나뉘어 수시로 외침에 시달리던 약소국이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지은이가 19세기 이탈리아와 우리나라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부분이다. 나폴레옹 1세로부터 두 차례의 침략을 받은 뒤 이탈리아는 반동의 시대를 맞았다. 토지제도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실시한 토지 몰수와 재분배는 오히려 신흥 귀족들에게 토지를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를 점령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외세와 결탁한 지배계급은 잃은 게 없었고, 농촌은 황폐해졌다. “이탈리아는 주변 강대국의 ‘종주권’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반봉건적 단계에 머물렀던 것이다.” 마치 구한말의 한반도를 보는 듯하다.

지은이는 이탈리아 파시즘의 등장과 득세 과정을 돌아보면서도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함의를 발견한다. 이탈리아어로 파쇼(fascio)가 ‘연대’를 의미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파시즘은 처음에 사회주의 색채를 띠었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1919년 총선 참패를 전후해 재빨리 우익으로 돌변했다. 열병처럼 번져나가던 붉은 기운에 놀란 지배계급의 입맛에 맞춘 전략이었다. 1차 대전 이후 극심한 인플레와 퇴역군인의 실업문제, 빈부 격차와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하락은 파시즘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었다. 좌파는 파시즘의 실체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백세테러의 희생양이 됐고, 급속히 무너져갔다. “한국 역시 민주주의 결핍 현상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영호남의 지역 문제나 반공주의 혹은 지연이나 학연 등에 의존하는 사회질서 및 부정부패한 사회구조” 아래서 “지배계급이 제시하는 이데올로기나 방향성에 대항할 수 있는 (…) 민주주의적인 대항 헤게모니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든 파시즘으로의 회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학계와 지식인 사회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거대 담론 생산에 실패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대통령 선출이나 정당 공약 수준의 미시적 정책화 담론에 매달리고 집착하게 되었다. (…) 더욱이 최근에 (…) 정치적 실체로까지 발전하는 박정희 시대나 그 잔재들의 부활을 보면서, 그람시가 가졌던 통찰력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깊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그람시의 통찰력이란 다음 문장을 말한다. “에밀리아, 토스카나, 베네토의 농민들과 지난 2년간의 백색테러란 고통스런 경험을 통해 통찰한 진정한 파시즘은 그 이름을 바꾸는 한이 있어도 계속될 것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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