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현의 책갈피 경제
파산
이건범 지음/피어나 펴냄(2014) 성공의 비결을 알려주는 책은 많지만 실패의 기록은 드물다. 실패하자고 사업하는 이가 있겠냐마는 통계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준다. 자영업자 가운데 15%는 시작한 지 1년안에 문을 닫고 3년 안에 10곳 중 6곳이 문을 닫는다. 통닭집이나 작은 식당이나 벤처기업이나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기는 무척 어렵다. 이 책의 부제는 ’현명하게 망하는 법’ 정도가 될 것이다. 80년대 초부터 얼굴 정도 알고 지내던 저자를 다시 본 것은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2012년 중반이었다. 몇 사람이 여는 토론회에 나와달라 부탁하는 내게 그는 자료가 있다면 어른 주먹만한 글씨로 인쇄해 줄 수 있는 지를 물었다. 그 새 그는 사물의 흐릿한 윤곽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져 있었다. 1급 장애인의 시력으로 몇 권의 우수한 책들을 기획하거나 썼다는 게 놀라웠다. 토론회에도 그는 “버스타고 왔다”며 혼자 들어섰다. 386출신 정치인이 있다면 저자는 386출신 사업가다. 하지만 90년대 초 감옥에서 나온 뒤 운동을 접고 사업을 시작했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에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사람들에게 강요하기 보다 “사는 방식대로 살면서 함께 깨달음의 수위를 높”여가는게 맞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꿈꾸는 기업은 “경쟁력도 갖추고 있으면서도 자유와 우애가 넘치는 공동체”였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한 소포트웨어 개발·유통업은 90년대 후반 컴퓨터 보급과 함께 연 매출 100억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한다. 하지만 ‘초심을 잊고’ 벤처 투자자금을 끌어들여 사업을 키우려다 매출부진과 이자부담을 못이기고 결국 2006년 초 사업을 접는다. 8년의 시간이 흘러 차분해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다 굴러 떨어지더라도 치명상만은 피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낙법’에 관한 것이다. 그의 경험으로는 경영자가 생각할 것도 있고 사회가 도전하는 젊음을 위해 마련해야 하는 낙법도 있다. 먼저 신용이다. 흔히 신용을 잃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의 지은이가 잘 한 게 있다면 사업의 종말이 보일 때 가족, 동료, 친구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들이지 않고 적절한 시점에서 단안을 내린 것이다. 이제 남은 자산으로 빚잔치를 해야 하는데, 대개의 경영자는 거래처나 직원들에게는 참아달라 읍소하면서도 금융권 채무를 먼저 갚으려 한다.
하지만 “금융기관의 신용평가보다 사회의 신용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저자는 반대로 했다. 거래처 외상을 먼저 갚고 임직원의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어떻게든 막은 다음 금융권에 집중된 50여억원의 부채를 안고 쓰러진다. 물론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최소한 사람을 잃지 않았기에 친구나 예전 동료와 열정으로 뛰었던 그 옛날을 안주삼아 소주잔 기울이며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아울러 복수심에 불타 급하게 재기하려다 미끄러지는 실수를 하지 않고 긴 모색을 거쳐 도서 기획자이자 저술가로 다시 일어나는 데는 사회 안전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파산제도는 끝모를 빚의 수렁에서 건져줬고, 월 몇십만원이라도 꼬박꼬박 나온 장애연금은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 주고 꿈을 버리지 않도록 뒷받침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이건범 지음/피어나 펴냄(2014) 성공의 비결을 알려주는 책은 많지만 실패의 기록은 드물다. 실패하자고 사업하는 이가 있겠냐마는 통계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준다. 자영업자 가운데 15%는 시작한 지 1년안에 문을 닫고 3년 안에 10곳 중 6곳이 문을 닫는다. 통닭집이나 작은 식당이나 벤처기업이나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기는 무척 어렵다. 이 책의 부제는 ’현명하게 망하는 법’ 정도가 될 것이다. 80년대 초부터 얼굴 정도 알고 지내던 저자를 다시 본 것은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2012년 중반이었다. 몇 사람이 여는 토론회에 나와달라 부탁하는 내게 그는 자료가 있다면 어른 주먹만한 글씨로 인쇄해 줄 수 있는 지를 물었다. 그 새 그는 사물의 흐릿한 윤곽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져 있었다. 1급 장애인의 시력으로 몇 권의 우수한 책들을 기획하거나 썼다는 게 놀라웠다. 토론회에도 그는 “버스타고 왔다”며 혼자 들어섰다. 386출신 정치인이 있다면 저자는 386출신 사업가다. 하지만 90년대 초 감옥에서 나온 뒤 운동을 접고 사업을 시작했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에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사람들에게 강요하기 보다 “사는 방식대로 살면서 함께 깨달음의 수위를 높”여가는게 맞는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꿈꾸는 기업은 “경쟁력도 갖추고 있으면서도 자유와 우애가 넘치는 공동체”였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한 소포트웨어 개발·유통업은 90년대 후반 컴퓨터 보급과 함께 연 매출 100억원이 넘는 규모로 성장한다. 하지만 ‘초심을 잊고’ 벤처 투자자금을 끌어들여 사업을 키우려다 매출부진과 이자부담을 못이기고 결국 2006년 초 사업을 접는다. 8년의 시간이 흘러 차분해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다 굴러 떨어지더라도 치명상만은 피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낙법’에 관한 것이다. 그의 경험으로는 경영자가 생각할 것도 있고 사회가 도전하는 젊음을 위해 마련해야 하는 낙법도 있다. 먼저 신용이다. 흔히 신용을 잃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의 지은이가 잘 한 게 있다면 사업의 종말이 보일 때 가족, 동료, 친구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들이지 않고 적절한 시점에서 단안을 내린 것이다. 이제 남은 자산으로 빚잔치를 해야 하는데, 대개의 경영자는 거래처나 직원들에게는 참아달라 읍소하면서도 금융권 채무를 먼저 갚으려 한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