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미가 그린 농촌 친구들
힘들어도 활기차게 열일곱이 된다
힘들어도 활기차게 열일곱이 된다
김중미 지음/창비·1만1000원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김중미(사진) 작가는 2001년 봄, 인천 만석동에서 강화도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공부방을 운영하며 농촌공동체 운동을 해왔다. 새 땅에 터를 잡은 지 13년 만에 농촌 아이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펴냈다. 만석동에서 공부방을 시작하고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과 같다. “나는 언청이다. 의학 용어로는 구순 구개열이라고 한단다. 나는 입술이 코 바로 밑까지 갈라지고 입천장마저 갈라진 채로 태어났다. 그런데 내가 언청이로 태어났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은 엄마가 성병을 앓았거나 술 담배를 해서 그렇다며 숙덕거렸다. 그런 소문이 돌 만했던 것은, 우리 엄마는 아버지가 집을 나가 공장 생활을 할 때 만난 외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유정이는 강화도 시골에서 할머니와 포도농사를 짓는 작은아빠, 베트남에서 온 작은엄마, 그리고 사촌동생들과 사는 중3 여학생이다. 아빠 엄마는 유정이가 갓난아기 시절 차례로 집을 나갔다. 유정이의 환경만 보면 안쓰럽게 느껴지지만 유정이를 수술시키고 보통의 아빠보다 지극정성으로 키운 작은아빠와 따뜻한 식구들로 인해 유정이의 삶은 평범한 시골 아이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엄마 없는 외로움을 꽁꽁 숨기고 사는 유정, 집 나간 엄마와 소를 잃고 술에 빠져 사는 아빠를 둔 광수, 언니 오빠들처럼 공부를 못해 구박받는 지희,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겼지만 잦은 이사로 친구 없이 자란 우주 등 아이들은 저마다의 빈구석을 더듬으며 사춘기를 겪는다. 그 주변으로 유기농 농사를 하는 작은아빠의 고된 노동과 부족한 일손, 갈수록 떨어지는 수익성, 에프티에이와 구제역 등으로 상처입는 농촌의 현실이 묘사된다. 중심에서 벗어난 동네, 그곳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그리고, 힘든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비슷하지만 이 소설은 전작들보다 경쾌하고 활기차다. 작은아빠의 걱정대로 “애들도 자부심이나 자신감 같은 것도 없고 매사에 의욕도 없”기는 하지만 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집집이 나누는 것도 많은 동네의 아이들은 도시의 아이들만큼 외롭지는 않다. 그 공동체성 안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터득해나간다. 유정이는 어린 시절부터 꼭 붙잡고 살았던 마음속 방패를 내려놓고 “할머니한테 대들어보기도 하고, 작은엄마에게 다가가 말도 걸었다. 그러자 작은엄마가, 용민이와 용우가 다르게 보였다. 할머니의 무뚝뚝한 말투에 숨은 마음도 보였다. 나는 그렇게 열일곱이 되었다.” ‘깜언’은 베트남어로 고맙다는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 유정이는 고등학교에 가면서 헤어진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모두 깜언!’ 소설 속 아이들에게, 그리고 결핍의 힘을 가르쳐준 마을과 공부방 아이들에게 작가가 보내는 인사말이기도 하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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