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민규
박민규, 땅콩회항 산문 ‘진격의 갑질’ 발표
작가 박민규(사진)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을 다룬 산문을 발표했다. <문학동네> 봄호에 실린 산문 ‘진격의 갑질’에서 그는 문제의 사건을 일본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빗대면서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 전근대성을 비판하고 시민적 자각을 촉구했다.
박민규는 <진격의 거인> 원작자가 넷카페 심야 아르바이트 때 상대했던 취객들에게서 거인 모티브를 따왔다는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역사는 인간을 잡아먹는 크고 작은 거인들로 가득했”으며 “‘근대’라는 벽은 진격해 오는 거인들을 막기 위해 쌓아 올린 인류의 방어벽이었다.”
땅콩 회항 사건에 여론이 분노한 이유도 “이 사건이 가진 전근대성 때문”이라고 그는 본다. 그럼에도 “시범 케이스로 하나를 잡고, 뜨겁게 끓어올라 욕을 퍼붓고, 한사람에게 갑질의 십자가를 지우고, 조롱하고, 기필코 갑을 응징했다는 이 분위기도 실은 매우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박민규는 경고한다.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해도, 천문학적인 국고를 탕진해도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느닷없이 이 쪼잔한(상대적으로) 갑질에 분노하는 현상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얘는 까도 돼, 어쩌면 더 큰 거인의 허락이 떨어졌음을 은연중에 감지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박민규는 역시 기내 난동을 부린 패리스 힐튼 남동생 콘래드 힐튼이 20년형 선고 가능성을 앞두고 있는 미국 현실을 들면서 두 사건 처벌 수위의 차이가 곧 “인프라의 차이”라고 파악한다. 그는 “결국 이것은 우리가 가진 전근대성과의 싸움”이라며 ‘을’로 비유되는 시민의 자각을 촉구한다. “이 글의 제목을 ‘진격의 을질’로 바꿔주면 고맙겠다. 당신의 손으로 직접/ 우리의 손으로 직접.”
박민규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다룬 산문 ‘눈먼 자들의 국가’를 <문학동네> 가을호에 발표했으며, 역시 세월호 문제를 다룬 문인들의 글을 묶은 단행본이 이 글 제목을 표제로 삼아 출간된 바 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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