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국가 인문학 지원, 학술진흥이냐 대중화냐

등록 2015-03-05 20:31수정 2015-03-05 21:01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문학이 고사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인문학 진흥법이 추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1년 중앙대 대학 구조조정 반대시위에 참가한 학생의 퇴학처분 항의 기자회견. <한겨레> 자료사진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문학이 고사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인문학 진흥법이 추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1년 중앙대 대학 구조조정 반대시위에 참가한 학생의 퇴학처분 항의 기자회견. <한겨레> 자료사진
국회 인문학진흥법 논의 ‘급물살’
교육부-문체부, 누가 주무냐 경쟁
“복지처럼 시장논리 완화 정책 필요”
지난 2013년 국회에 제출된 인문학 진흥 관련법 제정이 오랜만에 속도를 내면서 주무부처의 행방과 법안의 핵심을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인문학 위기에 대처하는 국가적 지원이 어렵게 논의되기 시작한 만큼 학계는 적잖은 기대감을 표출하면서도 법 제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본관 회의실에서 인문학진흥법 관련 공청회를 열었다. 2013년 발의된 ‘인문학 진흥 및 인문강좌 등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 대표발의), ‘인문사회과학진흥법안’(새누리당 이명수 의원 대표발의), ‘인문정신문화진흥법안’(새누리당 김장실 의원 대표발의)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자리가 이제야 마련된 것이다. 이날 학계와 전문가들이 진술인으로 출석했고, 각 당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 세 법안 차이

이들 법안은 모두 인문학의 위기 타개와 국가적 지원 방안을 담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과학기술기본법’을 필두로 여러 다양한 개별법이 시행되고 있는 것처럼 인문 분야 또한 비슷한 위상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 제정 취지에 걸맞게 왜곡되지 않고 통과된다면 미국의 대통령 직속 기관인 ‘국립인문재단’, 영국의 ‘예술·인문연구회’ 설립에 버금가는 범정부 차원의 인문학 진흥 관련 기본계획을 종합적으로 수립하고 시행하게 된다.

세 법안의 차이를 보면, 신 의원안(인문학·강좌법)의 경우 인문학의 학술적 연구를 장려하는 동시에 대학 바깥의 인문강좌에 대한 지원도 함께 이뤄진다. 이 의원안(인문사회법)은 인문학은 물론 ‘사회과학’을 포함해 함께 위기를 겪고 있는 해당 분야 학문의 동반성장을 폭넓게 꾀했다. 두 법안 각각 국무총리 소속하에 정책심의회 또는 진흥위원회를 두어 지원 대상의 기본계획 수립 및 집행을 하도록 했다. 학문 진작에 대한 국가 책임이 강화되는 것이다. 김 의원안(인문정신문화진흥법)은 인문정신의 대중적 확산을 위한 ‘인문정신문화 진흥센터’ 지정을 뼈대로 한다. 인문학·강좌법이나 인문사회법이 인문학 학술 지원에 방점을 찍었다면, 인문정신문화진흥법은 인문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대중화에 강조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 교육부냐 문체부냐

현재 가장 큰 쟁점은 주무부처를 어디로 둘 것이냐다. 인문학·강좌법과 인문사회법이 주무부처를 교육부로 지정한 반면, 인문정신문화진흥법은 주무를 문화체육관광부로 규정했다. 공청회에서도 인문학의 ‘연구’ 영역을 중심에 둬야 하느냐, 인문정신문화 대중 확산이 먼저냐를 두고 의견 다툼이 치열했다. 진술인으로 나온 위행복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한양대 중국학과 교수)은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문학이 지나치게 위축되어서는 안 되며 적정 규모의 연구·교육 역량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며 교육부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반면 강진갑 경기대 인문학연구소 교수는 “시민을 위한 인문학, 인문정신문화가 필요하다”며 문체부 쪽에 힘을 실었다.

애초 이 법안 처리가 지연된 이유도 각 부처의 업무분장 탓이다. 교육부는 초중등·대학정책과 함께 인문연구 지원을 총괄 책임지고 있으며 문체부는 대중인문학과 ‘문화융성’이라는 국정과제를 맡고 있다. 각각의 단점도 무시할 수 없다. 문체부가 주무를 담당하게 된다면 인문사회분야 학술과 연구지원 총괄부처가 교육부인 것과 상충되며 그저 인문정신의 대중화에만 머무를 수 있고, 교육부가 주무부처가 되었을 때는 대학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부처가 인문학 진흥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이 ‘자기분열’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지관 한국대학학회 회장(덕성여대 영문과 교수)은 “문체부가 주무를 담당하자는 법안은 인문학 고갈을 방기한 채 대중화에 매몰될 우려가 있으며 과거 국민정신문화 캠페인을 연상시킨다”면서도 “교육부가 이를 맡으려면 먼저 인문학을 고사시키는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전향적 대책 마련과 함께 사탕발림식 정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학계 우려 속 기대

그럼에도 학계는 대체로 교육부 쪽으로 법안이 통합되길 바라는 쪽이다. 인문학 연구자 재생산과 구조조정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회부총리가 장관을 겸하는 교육부 소관으로 추진하는 것이 장기계획수립과 법 집행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장재성 인문대학장은 “대학 구조조정 등 문제로 인문학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운데 인문학 진흥이 법률로서 보장된다면 학문 후속세대를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게 되므로 교육부가 주도하여 빠른 시일 내에 추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육부에서도 이런 의견에 힘입어 상반기 중으로 인문학진흥 종합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여기에는 예산 확보와 제도개선 방안이 포함될 예정이며 대학 구조조정에 따른 인문학의 피해를 줄이거나 보완하는 장치도 함께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체부는 지난해 이미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에서 인문정신문화진흥계획을 보고했고, 교육부가 고집한다면 인문정신문화 분야는 별도 법으로 가야 한다는 뜻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교육부와 공동소관한 학교체육진흥법의 예가 있듯이, 두 부처가 협업으로 인문학 학술진흥과 문화 가치 확산의 유기적 연계를 도모해야 한다”고 맞섰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문학의 토대 구축과 성과를 마련하기 위한 학문적 자유를 보장하고 신진 학자들의 지속적인 생산에 유념해야 한다는 점이다.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대학이란 제도 안의 인문학이 학과 폐쇄 등으로 위기에 몰리는데 대학 밖의 인문학만 발전될 리 없고, 무엇보다 복지 논의처럼 국가의 힘을 빌려 자본이나 시장논리를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내희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논문 생산 공장으로 전락한 지금 대학 구조처럼 인문학 진흥이 성과주의에만 집착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인문학의 핵심인 안정적 연구와 연구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