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호 사회평론 대표.
출판인회의 새 회장 된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 인터뷰
이런 게 운명일까. 법정(1989년 인민노련 사건)에서 “그렇소 나는 사회주의자요”라고 외쳤던 청년은 노동운동의 연장선으로 출판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십수억원의 빚을 지게 됐다. 빚을 갚으려 ‘팔리는 책’(<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등)을 만들기 시작하더니, 출판 사업가로 성공했다. 그가 한국 출판계를 대표하는 2대 단체의 하나를 이끌게 됐다.
지난달 한국출판인회의(출판인회의) 새 회장이 된 윤철호(54·사진) 사회평론 대표는 “부회장을 3년 반이나 했으니 의무복무를 마쳤다고 생각하고 도망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임 박은주 회장(전 김영사 대표)의 갑작스런 유고 사태로 회장 권한 대행을 맡게 됐고 9대 회장이라는 중책을 ‘끝내’ 피하지 못했다. 80학번인 그가 회장이 됨으로써 1998년 김언호(70) 한길사 대표를 초대회장으로 출범한 출판인회의는 명실상부한 2세대 시대를 맞게 됐다. 430여 단행본 출판사들을 대표하는 출판인회의는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며 1인 시위까지 벌인 적이 있다. 출판산업을 지원할 정부기관은 없고 검열기관(간행물윤리위원회)만 있는 기형적인 현실을 바꿔보려고 진흥원을 만들자고 했던 건데, 초대 원장에 출판산업을 잘 모르는 인사가 ‘투척’되자 기대가 분노로 바뀌었던 것이다.
“진흥원 싸움을 하면서 정부 예산을 들여다 봤거든요. 전체 문화 예산은 한 해 몇십퍼센트씩 늘어나는데 출판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어요. 출판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정부도 업계도 아무 생각이 없는 거에요.”
십수년간 가격으로만 승부하니
출판산업 정신 차릴 수가 없었죠
도서정가제, 새로운 모색 기회 될것 디지털시대 비전 등 할 일 많은데
내부 리더십 정립 안돼 대응 ‘미흡’ 책으로 할 수 있는 시도 아직 많아
자체 기획력 키우는 게 중요 회장 하기 싫어 도망가려고 했다지만 그의 머리는 이미 판 전체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출판 비전 정립, 책을 읽고 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문제(동네서점 현대화를 비롯한 유통 문제), 도서관 활성화” 등 할 일이 쌓여 있는데, “출판계 내부 리더십이 정립돼 있지 않아” 제대로 대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출판인회의 2세대의 1번 타자로 나서게 된 데는 운명보다 의지가 더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십몇년 동안 출판산업은 오로지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벌였어요. 허망한 짓이었죠. 새로운 모색이고 뭐고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서 문제가 아닙니다. 읽을 수 있는 책을 못 만들어서 문제인 거에요.” 출판인회의는 가격경쟁의 늪에 빠진 출판산업을 구하고 올바른 독서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새 도서정가제 도입 운동을 벌였고 이를 정부가 받아들여 지난해 11월부터 시행 중이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올해 2월25일까지 나온 신간 단행본 소비자가는 4.2% 내렸고(전년 같은 기간 대비), 동네서점들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 상태다. “도서정가제는 시장이 인간의 얼굴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가 단기적인 불편이나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드문 사례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도서정가제를 도입한 것은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서정가제가 정착되고 그 혜택이 독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출판계가 적극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출판계 내부에서도 여전히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매출이 줄었다거나 재고 처리가 어려워졌다거나 하는 류의 얘기들이다. 윤 회장은 “출판계에서 새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분들이 49% 가량 있었다. 주로 도서정가제를 하지 않는 게 유리한 대형업체들이다. 하지만 법이 바뀌었다는 건 흐름이 바뀐 것이고, 흐름이 한 번 바뀌면 10년 이상은 간다. 바뀐 흐름에 맞춰 사업의 상상력을 펼치는 게 그 분들에게도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출판사가 좋은 직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 출판의 역사가 짧고, 책으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실험적인 시도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출판산업이 성장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검색으로 채워지지 않는 정보욕구를 편집력, 그러니까 출판으로 채워줘야 하거든요. 자체 기획력이 있는 출판사들은 크게 성장할 겁니다. 일할 수 있는 기간도 길어지고, 억대 연봉을 받는 편집자도 나올 겁니다. 젊은이들이 왜 대기업만 바라보는지 모르겠어요.” 글 이재성 기자san@hani.co.kr,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출판산업 정신 차릴 수가 없었죠
도서정가제, 새로운 모색 기회 될것 디지털시대 비전 등 할 일 많은데
내부 리더십 정립 안돼 대응 ‘미흡’ 책으로 할 수 있는 시도 아직 많아
자체 기획력 키우는 게 중요 회장 하기 싫어 도망가려고 했다지만 그의 머리는 이미 판 전체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출판 비전 정립, 책을 읽고 소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문제(동네서점 현대화를 비롯한 유통 문제), 도서관 활성화” 등 할 일이 쌓여 있는데, “출판계 내부 리더십이 정립돼 있지 않아” 제대로 대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출판인회의 2세대의 1번 타자로 나서게 된 데는 운명보다 의지가 더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십몇년 동안 출판산업은 오로지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를 벌였어요. 허망한 짓이었죠. 새로운 모색이고 뭐고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서 문제가 아닙니다. 읽을 수 있는 책을 못 만들어서 문제인 거에요.” 출판인회의는 가격경쟁의 늪에 빠진 출판산업을 구하고 올바른 독서문화를 정립하기 위해 새 도서정가제 도입 운동을 벌였고 이를 정부가 받아들여 지난해 11월부터 시행 중이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올해 2월25일까지 나온 신간 단행본 소비자가는 4.2% 내렸고(전년 같은 기간 대비), 동네서점들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 상태다. “도서정가제는 시장이 인간의 얼굴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가 단기적인 불편이나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드문 사례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도서정가제를 도입한 것은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서정가제가 정착되고 그 혜택이 독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출판계가 적극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출판계 내부에서도 여전히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매출이 줄었다거나 재고 처리가 어려워졌다거나 하는 류의 얘기들이다. 윤 회장은 “출판계에서 새 도서정가제에 반대하는 분들이 49% 가량 있었다. 주로 도서정가제를 하지 않는 게 유리한 대형업체들이다. 하지만 법이 바뀌었다는 건 흐름이 바뀐 것이고, 흐름이 한 번 바뀌면 10년 이상은 간다. 바뀐 흐름에 맞춰 사업의 상상력을 펼치는 게 그 분들에게도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출판사가 좋은 직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 출판의 역사가 짧고, 책으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실험적인 시도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출판산업이 성장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검색으로 채워지지 않는 정보욕구를 편집력, 그러니까 출판으로 채워줘야 하거든요. 자체 기획력이 있는 출판사들은 크게 성장할 겁니다. 일할 수 있는 기간도 길어지고, 억대 연봉을 받는 편집자도 나올 겁니다. 젊은이들이 왜 대기업만 바라보는지 모르겠어요.” 글 이재성 기자san@hani.co.kr,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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