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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성장판’ 닫힌 포유류는 다른 방식으로 ‘성숙’해진다

등록 2015-03-12 20:22

멕시코시티 외곽의 신흥 부촌인 산타페 전경.
멕시코시티 외곽의 신흥 부촌인 산타페 전경.
“심장에 총탄이 지나가느냐
벌금이 지나가느냐, 그 차이만 있다”
늘 ‘대안’ 찾는 경제학자 우석훈
퇴행 아닌 성숙의 길을 말하다
성숙 자본주의
우석훈 지음/레디앙·1만5000원

잡놈들 전성시대
우석훈 지음/새로운현재·1만5000원

자칭 ‘C급 경제학자’ 우석훈의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이미 그의 성향을 간파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동시대 학자 누구보다도 다양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력적인 저술가이며, 인문학과 대중문화 콘텐츠를 ‘조자룡이 헌 창 쓰듯’ 부릴 줄 아는 대중적인 필자다. 그리고 경제학자로는 보기 드문 생태주의자이며, 무엇보다 (이게 가장 중요한데)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현실주의자다. 짧은 칼럼이라도 그의 글에는 늘 대안이 있다.

‘월간 우석훈’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책을 내는 그가 최근 동시에 펴낸 <성숙 자본주의>와 <잡놈들 전성시대>도 대안을 찾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성숙…>은 경제에세이, <잡놈들…>은 정치에세이다. 두 책은 묘하게 ‘연결돼’ 있다.

2012년 대선이 끝난 뒤 여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망연자실한 상태로 세월을 보내던 그는 멕시코처럼 망해가는 한국 경제를 이대로 둘 순 없다는 절박감에 “혐오재” 취급을 받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당직자가 된다.(혐오재는 비쌀수록 더 사고 싶은 ‘사치재’의 반대편에 있는 개념으로 “하나를 팔아도 안 사고, 원 플러스 원을 해도 안 사고, 다른 데 끼워 팔면 그 물건도 안”사는 물건이다.) 혐오재가 되어버린 그 정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에서 부원장으로 일하게 된 사연과 직접 겪어본 여의도 정치의 현실을 다룬 책이 <잡놈들 전성시대>이고, 거기서 그가 요즘 설파하는 경제 대안이 ‘성숙 자본주의’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1988년부터 1996년까지 멕시코 대통령을 지낸 카를로스 살리나스는 한 나라가 망하는 데 6년이면 충분하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했다. 상원의원이었던 살리나스의 아버지는 아들을 하버드대에 보내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멕시코는 극단적인 양극화로 인해 2류국가로 전락했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1988년부터 1996년까지 멕시코 대통령을 지낸 카를로스 살리나스는 한 나라가 망하는 데 6년이면 충분하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말했다. 상원의원이었던 살리나스의 아버지는 아들을 하버드대에 보내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지만, 멕시코는 극단적인 양극화로 인해 2류국가로 전락했다.
“성년이 되는 시점까지는 포유류와 파충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그냥 닥치는 대로 먹고, 먹는 대로 크고, 더 크기 위해서 모든 생체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러나 포유류는 성년이 지나면, 이른바 ‘성장판’이 닫히고, 다른 방식으로 성숙해진다. (…) 초기 자본주의는 공룡처럼 되기를 추구하였지만, 어느 단계에서는 포유류의 모습으로 진화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 경제는, 마치 중남미의 경제가 그러한 것처럼 결국 스스로 서지 못하는 상황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성숙…>)

경제를 동물에 비유한 이유는 경제 또한 자연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부터 로버트 솔로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성장 그래프는 기본적으로 우상향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끝이 평평해지는 에스(S)자 곡선이다.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기를 지나 성숙기에 들어섰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처방을 했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성장률이 더 높았을 것이라는 게 우석훈의 생각이다.

예를 들어 그가 전세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한국형 조합아파트’를 보자. “국가가 자금의 일부를 지원하고 지자체에서 택지와 기반 시설을 지원하면 수년 내에 조합 아파트 단지에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다. (…) 이런 정도의 틀이면 100㎡(30평 규모) 이하의 집들을 지금의 전세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 (…) 예를 들면 4인 가정용의 조합원 지분을 1억원, 혼자 사는 솔로용 소형가구는 3000만원, 이 정도에 건설비를 맞출 수 있다면 현실적 절충안이 될 것이다.”(<성숙…>)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버블 정책을 펴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온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결국 부동산 거품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외형적인 성장에 집착하는 구시대 패러다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토건 위주의 성장 정책을 지역과 농업, 복지와 생태, 환경을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 텐데, 이 정부는 그럴 생각이 없다.

경제규모로만 보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지만, 경제를 운용하는 방식은 반(半)봉건적이거나 반(半)자본주의적이다. 100년 전 미국 재벌 록펠러의 경비원들이 저임금에 항의하던 노동자들에게 기관총을 쏘았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수십억원의 손배소라는 기관총을 난사하고 있다. “심장에 총탄이 지나가느냐, 벌금이 지나가느냐, 그 차이만 있”다. (물론, 쌍용차 파업 강제 진압 당시 경찰은 노동자들에게 ‘테이저건’을 쏘았다.) 그가 보기에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은 성숙도 성장도 아닌 ‘퇴행’이다.

그는 퇴행을 막기 위해 여의도로 갔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진보정당 사람들과 일했으며, 시민단체 활동도 한 그의 선택이 왜 진보정당이 아닌 새정치민주연합이었을까. “‘잡놈들 전성시대’를 우리 시대에서 정지시키고 해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7·4 재보궐 선거로 제1야당이 비대위체제로 들어가고 지지율이 14%로 내려앉는 일이 없었다면, 내가 서로 간에 증오로 가득 찬 이 당에서 사람들과 논의하고 대화하는 일이 벌어졌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나는 2017년의 대선을 ‘우리 시대의 마지막 전쟁’이라고 부른다. (…) 이 전쟁에서 우리가 지면, 한국은 과거 멕시코나 아르헨티나가 영광스럽던 순간을 뒤로하고 내부 분열로 간 것처럼 ‘단절형 경제’로 가게 될 것이다.”(<잡놈들…>)

중남미 ‘단절형 경제’의 특징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사는 동네가 다르고, 먹는 음식과 학교, 다니는 길도 다르다는 것이다. 타인의 출입을 막는 한국형 ‘요새 주택’인 타워팰리스에 이어, 잇따라 하늘을 찌르고 있는 고급 주상복합주택의 출현은 우리가 이미 단절형 경제로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그는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2017년 대선이라고 본다. 선거는 정당이 치르는 것인데, 박근혜의 ‘천막 당사’ 이후 새누리당은 ‘선거의 달인’이 되어 크고 작은 선거에서 25전25승의 화려한 전력을 자랑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새누리당의 막강한 화력을 제어하기에 진보정당은 아직 역부족이라고 우석훈은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나 혼자 마음먹었다. 힘닿는 한 이 당에서 정책과 실무를 하는 사람들과 현장에 같이 있으려고 한다. 공을 조금 세웠다고 쪼르르 당대표 등 실권자에게 달려가 공천이나 비례대표 달라고 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대선에서 이겼다고 해서, 입법부가 아닌 행정부로 옮겨가는 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 입법부의 꽃, 그걸로 정당이 서 있는 순간을 한 번쯤은 거쳐야 한다. 그래야 박근혜 시대에 펼쳐진 고대와 중세 그리고 반봉건의 이상한 증후군을 넘어, 비로소 21세기로 넘어올 수 있다.”(<잡놈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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