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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
스테파노 자마니·루이지노 브루니 지음, 제현주 옮김/북돋움 펴냄(2015) 이기적 인간이 합리적 계산 아래 거래하는 시장을 완벽한 제도라 믿는 주류 경제학은 2008년 경제위기로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주류 경제학은 그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안을 찾는 이들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사회성) 및 ‘공감하는 인간’(상호성)에 뿌리를 둔 사회적경제에 주목했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공유경제, 비영리조직 등이 그런 경제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11일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진 협동조합 선거가 상당히 혼탁했던 모양이다. 윤리가 빠진 사회적경제는 시장 경제보다 나을 게 없어 보인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스테파노 자마니가 동료 루이지노 브루니와 함께 지은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을 잡고 읽게 된 것은 이런 현실의 실망감을 상쇄해 보고자 함이었다. 스테파노 자마니는 협동조합 연구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북돋움 펴냄, 2012) 같은 저서가 국내에도 번역돼 나왔고 여러 차례 방한해 강연했다. 풍부한 예를 드는 그의 강연은 흥미로웠지만, 이번 책은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지은이들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중세의 수도원, 13세기 이탈리아의 시민인본주의, 아담 스미스 등 근대 정치경제학자를 섭렵하면서 주류 경제학의 왜곡된 전제와 주장을 뒤집고 경제적인 생각의 기원을 재구성해 놓는다. 지은이들이 ‘시민경제학’이라 이름 붙인 경제학의 핵심 주장은 인간의 사회성과 상호성이 이기성이나 이타성에 앞서는 본성이란 것이다. 사회를 떠나 행복은 없으며, 우정과 공감 같은 시민의 덕성과 공공선을 추구하기에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 사회성과 상호성은 경제생활에서 수천년간 중심에 있었는데, 심지어 우리가 ‘냉정한’ 제도로 믿는 시장도 등가성이 아닌 상호성에, 익명의 개인이 아닌 전체를 생각하는 시민덕성에 바탕을 둔 제도였음을 밝힌다. 행복이 본성상 시민적(관계적)이므로 경제생활이 추구하는 복지는 인간관계의 함수이다. 나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평가나 만족감과 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품질은 시장에서 파는 것과 별다를 것 없는 명품을 비싸게 주고 사는 것만 봐도 만족이 관계적임을 보여준다. 이런 관계적 행복은 주류 경제학이 말하는 효용, 즉 사람과 사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만족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이스털린의 역설’(기본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이 증가하지 않는 현상)은 관계가 빠진 ‘효용’ 개념의 한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행복 증진을 위해서는 시장거래에서 생산되지 않는 재화 즉 공감, 우애와 같은 관계재를 만드는 경제영역이 더 커져야 하고 시민경제가 그런 경제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지은이들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일자리 부족 문제를 푸는 데 시민경제론을 적용하자고 제안한다. 모든 정부의 공언과 반대로, 계속된 생산성 증가가 모든 사람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헛된 꿈이란 게 저자들의 판단이다. 생산성 증가로 일자리에서 ‘해방’된 사람에게 사유재를 위한 시장이 생산할 여력도 관심도 없는 관계재를 생산하는 활동으로 길을 내주자는 것이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bhlee@hani.co.kr
스테파노 자마니·루이지노 브루니 지음, 제현주 옮김/북돋움 펴냄(2015) 이기적 인간이 합리적 계산 아래 거래하는 시장을 완벽한 제도라 믿는 주류 경제학은 2008년 경제위기로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주류 경제학은 그로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안을 찾는 이들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사회성) 및 ‘공감하는 인간’(상호성)에 뿌리를 둔 사회적경제에 주목했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공유경제, 비영리조직 등이 그런 경제의 구체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11일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진 협동조합 선거가 상당히 혼탁했던 모양이다. 윤리가 빠진 사회적경제는 시장 경제보다 나을 게 없어 보인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스테파노 자마니가 동료 루이지노 브루니와 함께 지은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을 잡고 읽게 된 것은 이런 현실의 실망감을 상쇄해 보고자 함이었다. 스테파노 자마니는 협동조합 연구의 대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협동조합으로 기업하라>(북돋움 펴냄, 2012) 같은 저서가 국내에도 번역돼 나왔고 여러 차례 방한해 강연했다. 풍부한 예를 드는 그의 강연은 흥미로웠지만, 이번 책은 가볍게 읽히지는 않는다. 지은이들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중세의 수도원, 13세기 이탈리아의 시민인본주의, 아담 스미스 등 근대 정치경제학자를 섭렵하면서 주류 경제학의 왜곡된 전제와 주장을 뒤집고 경제적인 생각의 기원을 재구성해 놓는다. 지은이들이 ‘시민경제학’이라 이름 붙인 경제학의 핵심 주장은 인간의 사회성과 상호성이 이기성이나 이타성에 앞서는 본성이란 것이다. 사회를 떠나 행복은 없으며, 우정과 공감 같은 시민의 덕성과 공공선을 추구하기에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 사회성과 상호성은 경제생활에서 수천년간 중심에 있었는데, 심지어 우리가 ‘냉정한’ 제도로 믿는 시장도 등가성이 아닌 상호성에, 익명의 개인이 아닌 전체를 생각하는 시민덕성에 바탕을 둔 제도였음을 밝힌다. 행복이 본성상 시민적(관계적)이므로 경제생활이 추구하는 복지는 인간관계의 함수이다. 나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평가나 만족감과 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품질은 시장에서 파는 것과 별다를 것 없는 명품을 비싸게 주고 사는 것만 봐도 만족이 관계적임을 보여준다. 이런 관계적 행복은 주류 경제학이 말하는 효용, 즉 사람과 사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만족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이스털린의 역설’(기본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이 증가하지 않는 현상)은 관계가 빠진 ‘효용’ 개념의 한계를 보여준다. 따라서 행복 증진을 위해서는 시장거래에서 생산되지 않는 재화 즉 공감, 우애와 같은 관계재를 만드는 경제영역이 더 커져야 하고 시민경제가 그런 경제라는 것이다.
이봉현 편집국 미디어전략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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