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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톡토기 연구와 사회생물학에 바친 일생

등록 2015-04-09 22:06

유전자 전쟁의 현대사 산책
이병훈 지음/사이언스북스·2만원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는 재미있다.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의 이야기는 더더구나 흥미로운데, 여기에 자기 객관화와 통찰마저 더해진다면 그 자체가 사회적 의미를 지닌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병훈 전 전북대 생물과학부 교수가 낸 <유전자 전쟁의 현대사 산책>이 딱 그런 책이다.

2년 전 <한국에서의 생물다양성과 국립자연박물관 추진의 현대사>에 이어 지은이의 ‘인생 회고 3부작’ 가운데 두번째로 출간된 이 책은 분류학, 진화생물학 연구자가 사회생물학을 만나 어떤 생각을 했고, 사회생물학을 한국에 소개하기 위해 얼마나 성실히 노력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사회생물학이란 ‘사회성을 나타내는 생물의 생물학적 기초를 연구하는 과학’으로 정의된다. 가령 일개미는 왜 여왕개미에게 복종만 하고, 적이 침입할 땐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을 희생해 공동체를 지킬까? 이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으로 퍼트리려는 시도라는 것이 사회생물학의 설명이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개체는 유전자의 생존기계”라며, “심리학을 비롯한 사회학 전반이 생물학의 한 분과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책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 <사회생물학: 축약판>을 내고 미국 과학계에 일대 논쟁을 일으켰다. 지은이는 1984년 이 책을 접한 뒤 “분류학과 진화생물학이 단순한 분류나 자연보존 차원이 아니라, 인류를 설명할 수 있는 논리”라는 점을 깨닫는다. 8년 동안의 작업 끝에 그는 축약판 번역본을 냈고, 2년 뒤인 1994년엔 사회생물학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과학교양서 <유전자들의 전쟁: 행동으로 본 사회생물학의 세계>를 출간하게 된다.

지은이가 번역본 등을 낸 뒤 199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생물학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진다. 과학계에선 사회생물학이 과학적 근거 없이 진화 과정에 유전자의 ‘목적’을 끼워넣어 윤리학이라는 ‘추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본능도 유전적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지은이조차 ‘생물학적 결정론자’로 매도당하기도 했다.

연구자로서, 학자로서 그리고 선생으로서 끊임없는 저술활동, 강의, 번역 등 그의 활동도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변변한 실험기구 하나 없던 때인 1966년부터 지름 5mm 이하 톡토기 연구에 매진해 2006년까지 한국에서 알려진 톡토기의 34%에 이르는 87종, 타이산, 대만산 등 외국 톡토기 13종을 발견했다. 톡토기는 겨잣과 채소나 토마토 따위를 먹고 사는 해충이다.

1970년대 시청각 교구가 없어, 카메라에 접사렌즈를 끼우고 책에 나온 그림을 찍어 직접 흑백 슬라이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보여준 일화 등은 “연구는 교수로서의 생명이요, 강의는 대학의 존재 이유”라는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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