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꺼낸 한국사
존 레니 쇼트 지음, 김영진 옮김
서해문집·1만3900원
유럽인이 그린 세계 지도에 조선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얀 하위헌 판 린스호턴의 <포르투갈인 동양 항해기>(1595)와 <동방 안내기>(1596)에 수록된 지도에서다. 중국 위에 있는 동그란 모양의 텅 빈 섬나라. “일본보다 약간 왼쪽, 즉 위도 34도 내지 35도 정도에, 그리고 중국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또 하나의 큰 섬이 있다. 코레 섬(Insula de Core)이라 한다. 예로부터 오늘날까지, 그곳의 면적, 주민, 상업 어느 것 하나 분명히 알려진 것이 없다.”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의 지도책 <세계의 무대> 1570년 판에는 중국과 일본만 있고, 조선은 없다. <세계의 무대> 1596년 판에 와서야 조선은 섬이긴 해도 길쭉하게 그려져 원래 모양에 더 가까워진다. 지명이 빼곡한 일본과 달리 텅 비어 있는 건 마찬가지다. 요안 블라외의 <대 지도책>(1662), <신 중국 지도 총람>(1655)에서 조선은 비로소 섬이 아닌 대륙의 일부로 묘사된다.
얀 하위헌 판 린스호턴의 <포르투갈인 동양 항해기>(1595)에 와서야 중국 위에 있는 동그란 모양의 텅 빈 섬나라로 그려진다. 서해문집 제공
<지도 밖으로 꺼낸 한국사>는 지도로 본 세계 속 한국 이야기다. ‘은둔의 나라’답게 가장 늦게 세계 지도에 실렸고, 세부 정보도 가장 더디게 채워졌다. 17세기 말에 널리 보급된 빈첸초 코로넬리의 <지구전서>에서도 한국의 내부는 여전히 거대한 공백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조선은 일찍이 <혼일강리역대국지도(강리도)> 같은 훌륭한 세계 지도를 남겼다. <강리도>를 처음 제작한 것은 조선 건국 초기인 1402년 김사형(1341~1407)과 이무(?~1409), 이회(?~?)였다. 새로 나라를 세운 조선은 영토를 점검하고 정치적 합법성을 선포하기 위해 지도를 제작했다. 백성들은 지도를 소유할 수 없었다. 지도는 소수 집권층만의 전유물이었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지도를 그렸는데도 유럽을 비롯한 세계에 조선의 존재가 늦게 알려진 것은 폐쇄적 비밀주의 탓이다.
<세계의 무대> 1596년 판에서 조선은 섬이긴 해도 길쭉하게 그려져 원래 모양에 더 가까워진다. 서해문집 제공
지도로만 보면 조선과 일본의 관계에서 애초 상대방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인 것은 조선이었다. 조선의 1482년 지리지에는 일본과 류큐(오키나와)의 지도가 수록돼 있다. 1471년 편찬된 <해동제국기>에도 일본 지도가 여러 장 실렸다. 이 시기 조선 지리지에 일본 지도는 꾸준히 등장하지만 일본 지도에 조선이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도쿠가와 막부 초기까지만 해도 일본의 지도 제작은 일본 국내에 집중됐다. 그러나 네덜란드 등과의 교역으로 바깥세상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커진 일본은 점차 다른 나라의 지도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1785년 일본의 군사전략가 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한 조선 지도는 팽창주의 일본의 초기 단계를 보여준다.
이 책의 지은이 존 레니 쇼트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볼티모어 카운티 캠퍼스 교수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가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한 그는 지도에 관한 책을 여러권 냈는데, 지도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아버지의 한국과의 인연이 이번 책을 쓰게 했다.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의 지도책 <세계의 무대> 1570년 판에는 중국과 일본만 있고, 조선은 없다. 서해문집 제공
독도와 동해에 관한 지도를 훑은 뒤 그는 “일본 지도들에 나타나는 기록이 한국의 주권을 확증하거나 아예 독도가 생략되어 있는 반면, 한국 지도들은 독도가 한국 소유임을 암시하고 있다”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일축한다. 이어 “한국인에게 이름 논쟁과 독도는 극복하고 싶은 식민지 역사의 대표적 찌꺼기들”이라며 “동해와 일본해의 이중 지명을 인정한다면, 일본은 탈식민지 정서를 환기시키고 더욱 현실적인 세계시민의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식민 과거를 인정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할 수 있고 나아가 세계에서 더욱 영향력 있고 도덕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고, 미국은 그런 일본의 군사력 강화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한국은 되레 그런 미국, 일본과 한편이 되어 군사정보를 공유한단다. 구한말의 기시감을 떨치기 어렵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