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헌법론
국순옥 지음/아카넷·2만7500원 “지배체제가 위기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드는 불청객이 있다. 이른바 공안정국의 망령이다. 그것은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된 동서 냉전의 이데올로기적 대결 구도를 인위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하여 국가폭력기구가 수시로 연출하는 일종의 정치적 살풀이굿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의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와 이를 받아들인 헌법재판소 결정을 비판한 ‘소장 학자’의 결기가 느껴지는 글이다. 그러나 이는 1997년, 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법연)의 <민주법학> 12호에 실린 ‘헌법학의 입장에서 본 자유민주주의의 두 얼굴’이라는 글의 일부다. 진보적 헌법학계의 원로인 국순옥(78) 인하대 명예교수가 18년 전에 쓴 글이다. 민주법연의 후배 학자들은 1970년대 말부터 2006년까지 이어진 국 명예교수의 글과 강연을 <민주주의 헌법론>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다시 불러냈다.
국 명예교수의 문제의식은 ‘자유민주주의’ 개념 정리에서 특히 도드라진다. 그는 “공안정국이라는 이름의 정치적 살풀이굿이 한바탕 벌어지면, 아전인수식 국가안보논리가 기지개를 켜”는데 “이때 으레 머리를 내미는 것이 다름 아닌 자유민주주의 수호론”이라고 했다. 그의 분석을 보면, 자유민주주의는 유신체제가 들어선 1970년대에 구체적 운동 목표로서 비로소 무게감을 갖는다. 그때의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타도하고자 했던 박정희 정권도 유신헌법에 삽입한 조항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였고 박정희가 의도한 ‘자유민주주의’는 1980년대 신군부에 의해 ‘발전’된다. 광주민중항쟁을 폭압적으로 진압한 신군부가 정권의 부족한 정당성을 벌충하기 위해 ‘반공산주의를 바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를 정립한 것이다.
이때부터 개념의 혼란은 극에 달한다. 국 명예교수는 이를 “자유민주주의가 본디 표상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자유로운 민주주의”라고 정의했다. ‘자유로운 민주주의’(Freiheitlich Demokratie)의 기원은 기본권 박탈과 정당규제 조항을 명문화한 독일의 ‘본(Bonn) 기본법’에서 찾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동일시하고 있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도 그렇게 해석되는 게 문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의 이유도,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 모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국 명예교수는 2004년 강연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반공산주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이는 한 “민주주의는 백년하청”이라며, ‘민주주의의 민주화’ 방법의 하나로 헌법재판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회가 골치 아픈 현안을 헌재에 떠넘기는 현실을 개탄하며 “정당 민주주의의 확립을 통하여 의회의 국민 대표성을 높이고, 헌법재판제도를 민주주의가 용인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 가두어놓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해 헌재는 관습헌법을 들먹이며 신행정수도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고, 2008년에는 종합부동산세 세대별 합산 규정이 위헌이라며 종부세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1990년 <민주법학> 4호 권두언에서 밝힌 그의 걱정은 더욱 직접적이다. “헌법재판소가 앞으로 맡게 될 정치적 억압 기능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수호의 가면을 쓰고 사법반동의 첨병으로 기능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퇴임 이후 건강이 안 좋아 최근 10년 동안 집필 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다지만 그의 문제의식은 시간이라는 장벽을 이미 넘어섰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사진 아카넷 제공
국순옥 지음/아카넷·2만7500원 “지배체제가 위기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드는 불청객이 있다. 이른바 공안정국의 망령이다. 그것은 이미 과거의 유물이 된 동서 냉전의 이데올로기적 대결 구도를 인위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하여 국가폭력기구가 수시로 연출하는 일종의 정치적 살풀이굿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의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와 이를 받아들인 헌법재판소 결정을 비판한 ‘소장 학자’의 결기가 느껴지는 글이다. 그러나 이는 1997년, 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법연)의 <민주법학> 12호에 실린 ‘헌법학의 입장에서 본 자유민주주의의 두 얼굴’이라는 글의 일부다. 진보적 헌법학계의 원로인 국순옥(78) 인하대 명예교수가 18년 전에 쓴 글이다. 민주법연의 후배 학자들은 1970년대 말부터 2006년까지 이어진 국 명예교수의 글과 강연을 <민주주의 헌법론>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다시 불러냈다.
국순옥 인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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