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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중·일 부엌 문화 집대성한 묵직한 대작

등록 2015-05-14 19:35

전라남도 장성군 한 농가의 부엌. 지은이는 “넉넉지 못
한 살림임에도 부엌을 저처럼 정갈하게 차리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눌와 제공
전라남도 장성군 한 농가의 부엌. 지은이는 “넉넉지 못 한 살림임에도 부엌을 저처럼 정갈하게 차리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눌와 제공
민속학 권위자 김광언 교수
부엌 둘러싼 9가지 사물 분석
한·중·일 비교하며 속뜻 캐내
동아시아의 부엌
김광언 지음/눌와·7만원

국립민속박물관장을 역임한 김광언 인하대 명예교수가 734쪽짜리 묵직한 대작으로 돌아왔다. <동아시아의 부엌-민속학이 드러낸 옛 부엌의 자취>는 <동아시아의 뒷간>(2002), <동아시아의 놀이>(2004)에 이은 ‘동아시아 민속학’ 3탄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 중국(소수민족 포함), 일본의 여러 지역을 돌며 현지에서 거둔 화덕, 불씨, 부뚜막, 부엌, 조왕, 세간, 솥, 숟가락과 젓가락, 박까지 9가지 사물에 깃든 뜻을 캐고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살폈다.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의 부엌 살림살이를 설명하며 관습에 대한 구술사 기록을 보탰고, 자료조사 외에도 신화·민담 같은 이야기, 고문헌을 비롯한 시 따위 문학작품도 뒤졌다. 2013년 중앙대 비교민속학과가 폐과되는 등 민속학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나온 이 방대한 연구는 앞으로 동아시아 민속학 분야 학문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치밀한 조사가 바탕이 돼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지은이는 1994년 초 한 신문에서 종가에 500년 동안 한번도 꺼뜨리지 않고 이어오는 불씨가 있다는 기사를 보고 직접 찾아가 확인한 결과 거짓임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아직까지 서적에 인용돼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은이는 밝혔다. “옛분네들이 느끼고 깨우친 / (…) / 잊혀가는 슬기 보따리를 캐고 풀어서 남겨야 한다”는 머리말에서 보듯, 편안하고 단정한 우리말도 눈에 띈다. 김 교수는 전화인터뷰에서 “한글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든 이해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 오래된 소신”이라고 말했다. 부엌을 소재로 삼은 데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이미 없어졌고, 우리도 거의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는 부엌과 기물에 대해 조상들이 어떤 철학과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그 차곡차곡 쌓인 의미를 후세를 위해 기록으로라도 남기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은이가 뜻을 캔 동아시아의 부엌을 잠시 들여다보자.

■ 화덕·불씨·부뚜막

중국 윈난성 소수민족인 와족은 두개의 화덕을 둔다. 안 화덕이 상좌인데, 집지기 기둥(여신)이 있는 까닭이다. 모계 사회이던 시절에는 위 화덕이 여성의 것이었지만 부계 사회로 바뀌며 남성의 것이 되었다. 주인 자리만은 잘못 앉으면 목을 쳐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만큼 엄격하게 지켰다. 한국의 제주도에서는 마당에서 볼 때 왼쪽이 주인 자리였다. 부모는 물론 나이 많은 친척도 그 자리에는 앉지 못했다. 일본은 중심기둥을 등진 데가 남성 주인자리였고, 그 왼쪽이 손님자리였다. 손님 맞은편은 아낙자리다. 한국에서 불씨는 며느리의 책임이어서, 불씨 꺼뜨린 며느리가 쫓겨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섣달그믐날 신사의 복불을 받아오고, 정월 초하루에는 복이 없어진다고 절대로 불씨를 나누어주지 않는다. 일본은 집안에서만 위세를 부리거나 건방지게 권세를 휘두르는 여인을 가리켜 “부뚜막장군이다” 했다고 한다.

■ 부엌에 신경 쓴 한국

<증보산림경제>를 보면, 한국의 부엌 세간은 솥·발우·탕기·보시기·대접·소접·단지 등 무려 77가지나 되었다. 김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격식이 까다롭고 그릇 수가 많은데다 부엌을 주부들이 자랑하는 공간으로 생각했다. 그릇을 켜켜이 쌓고 찬장이다 뭐다 차려놓고 지낸 것이 중국과 일본은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부엌’ 개념은 12세기 말부터 16세기 사이에 생겼고, 무로마치 시대(1392~1573)에는 본처가 첩에게 앙갚음하려고 하녀와 친구들을 이끌고 상대 부엌으로 가 솥과 냄비를 부수는 관습이 있었다.

■ 여성의 한 서린 그릇

중국의 그릇은 천지의 도, 군자의 지혜, 의로움, 벼슬을 상징했다. 한국의 놋밥그릇은 신라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그릇 이름 ‘사하리’는 경상도 사투리 ‘사바리’가 그 뿌리다. 일본의 숟가락과 젓가락도 한국에서 건너갔지만, 숟가락 위주의 한국과 달리 젓가락만 남았다. 한국 서사민요를 보면, 그릇 깬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값을 물리자 “당신 아들이 금쪽같은 내 몸을 게 발 같은 손으로 더듬었으니 그 값을 내라”며 항의하는 유가 많았다. 일본에서는 귀한 그릇을 깬 하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주인에게 죽임을 당한 뒤 밤마다 그릇 세는 소리가 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그릇을 깨뜨린 하녀가 얼마나 큰 학대와 고통을 겪었는지를 알려주는 보기”라고 지은이는 풀이했다.

■ 여신에서 남신이 된 조왕

중국에서 조왕은 하늘의 최고신 옥황상제가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살피라고 보낸 심부름꾼이다. 조왕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뀐 것은 모계 사회가 부계 사회로 바뀐 전한 무렵이다. 한국에는 기원전 1세기 무렵 부뚜막을 지으며 조왕도 받든 것으로 본다. 제주도의 조왕 유래담을 보면, 첩이 본처를 물에 떠밀어 죽인 뒤 본처의 아들들이 물속의 어머니를 건져 환생꽃으로 되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아들들은 어머니를 모셔 ‘삼덕조왕이 되어 따뜻한 불을 쬐며 하루 세끼 편히 자십시오’ 했다. 죽은 아비를 살리는 <바리데기> 설화와 비슷하다. 일본에서는 새끼 꼰 금줄을 부뚜막 위에 둘러 신을 섬겼다. 부엌은 신령함의 보고였던 셈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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