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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38선이 만든 한권의 베스트셀러

등록 2015-05-14 21:53수정 2015-10-22 15:50

후지와라 데이 지음 ‘내가 넘은 삼팔선’
통신사 기자 셋이 하룻저녁에 번역
만주 일본여인이 귀국하기까지 고생담
“까짓게 뭐라고” 한국전쟁 뒤는 안팔려
<내가 넘은 삼팔선>
<내가 넘은 삼팔선>
38선의 비극을 상징하는 베스트셀러 한 권을 특별히 기억해 둘 만하다.

수도문화사는 1949년 11월 후지와라 데이가 쓴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를 번역해 <내가 넘은 삼팔선>(사진)으로 제목을 고쳐 간행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6월까지 반년 남짓한 기간에 14판, 총 4만5천부가 팔려나갔다. 이 책은 만주 신경 관상대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시베리아로 끌려간 뒤, 여린 주부의 몸으로 홀로 3명의 자녀를 이끌고 북한을 거쳐 월남해 일본에 도착하기까지의 고난을 기록한 수기다. 후지와라의 가족을 포함한 일행 17가구 49명은 북한에서 고통스런 공동생활을 이어간다. 질병과 영양실조로 속속 죽어가고 더러는 미쳐간다. 후지와라는 동족인 일본인들의 이기적인 인간성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또한 자신의 아들이 장질부사로 혈청값을 구하지 못해 죽기 직전 조선인 의사의 호의로 살아나게 되는 장면을 통해 지배·피지배의 기억을 뛰어넘는 인간애를 그리기도 한다. 이렇게 북한에서 1년여 동안 고난을 겪고 1946년 8월1일부터 10여일간 삼팔선을 넘어 부산을 거쳐 일본에 귀국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고 있다.

이 책은 합동통신사 기자 3명이 하루 저녁 동안 번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가 넘은 삼팔선’이라는 제목은 수도문화사 사장 변우경이 고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북한에서 각각 단정이 수립되고 38선이 국경선으로 고착되면서 실향민이 된 많은 월남민들은 일본여인의 식민지 탈출 고난에서 자신들의 38선 월경의 비극을 겹쳐 읽었다. 식민자였던 일본인들의 후일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 것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였다.

그렇지만 곧 한국 사회는 일본 여인의 고생담쯤은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미증유의 고난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수도문화사는 1964년 똑같은 형태로 제15판, 3천부를 찍었지만 전혀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38선의 비극은 한국전쟁과 휴전선의 비극에 밀려난 것이다.

정종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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