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학출활동가들이 참여해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준 두가지 투쟁이 일어났다. 하나는 여성노동자 중심 사업장들에서 벌인 구로동맹파업(왼쪽), 또 하나는 남성노동자 중심 사업장인 대우자동차의 임금인상파업투쟁이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80년대 변혁적 노동운동사
정치조직과 구술생애사 종합
폭압적 시대·개인사 생생한 증언
정치조직과 구술생애사 종합
폭압적 시대·개인사 생생한 증언
유경순 지음/봄날의박씨·각 권 2만5000원, 2만3000원 1980년대 한국 학생운동가들의 집단적 노동현장 투신은 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 ‘위장취업자’ ‘학출’ ‘학삐리’ 등으로 일컬어진 이들은 모두 1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추정될 뿐, 그 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은 당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추구한 노동운동과 ‘학출활동가’, 그리고 정치조직과 노동조합운동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첫 연구서로, 현대 한국 노동운동사의 독보적인 연구성과다. 지은이 유경순 박사(노동자교육센터 부대표)는 올해로 30돌을 맞은 구로동맹파업을 다룬 <아름다운 연대>(2007)와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나, 여성노동자>(2011) 등으로 ‘묻힌’ 노동자 이야기 복원에 힘써온 역사학 연구자다. 총 2권 중 1권의 부제는 ‘학출활동가와 변혁운동’(720쪽), 2권은 ‘학출활동가의 삶 이야기’(544쪽)다. 부제에서 보듯, 이번 연구가 복원·발굴한 것은 크게 두가지. 80년대 조직과 개인의 삶이다. 먼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변혁적 노동운동과 정치조직 전반을 검토하며 그 의의와 한계를 규명했고, 1970~80년대 학출활동가 12명의 구술생애사는 따로 담았다. 80년대 노동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노조와 성격이 다른 ‘사회변혁적 정치조직’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지은이가 굳이 당시 변혁적 노동운동을 조직별(서울노동운동연합, 서울남부지역노동자연맹,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다산보임그룹 등)로 꼼꼼히 정리한 이유다. 문헌자료의 한계 때문에 총 82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구술 작업도 병행했다. 가만있어도 아픈 일이 많은 청춘 시절, 노동현장에서 젊은 학출활동가들은 동료와 노동자들과 연대했지만 때로 갈등하고 상처를 주고받았다. 정권과 회사 쪽의 끝없는 색출작업, 이간질 탓이 컸다. 1985년 기업에 배포된 ‘위장취업자’ 색출 지침을 보면, “안경을 쓰고” “글씨 쓰는 손마디에 굳은살이 박여있는 경우” “이유 없이 동료들에게 선심과 친절을 베푸는 경우” 등이 적혀 있다. 현장 노동자들은 ‘학출’의 신분이 회사 쪽 악선전 속에 드러난 경우 적대적인 반응을, 신뢰가 확보된 상태에서 신분을 밝힌 경우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구술자들 가운데는 노회찬(정치인), 신정길(통일운동가), 심상정(정치인), 김문수(정치인) 등 익히 알려진 인물들이 포함돼 있어 흥미를 돋운다. 정치조직에서 여성 활동가들이 주도한 사례는 단 한곳,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 뿐이었다. 구술을 보면, 리더급 남성들은 지금도 당시 시대와 조직을 주도했다는 자부심이 뚜렷했지만, 여성들의 경우 신분을 감춰야 하는 숨막히는 일상과 조직의 수직적 권위를 아프게 기억했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에 대해서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노련)은 “그저 일반적인 고문의 하나”로밖에 인식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은이는 “계급문제의 해결만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단적인 의식의 반영이었다”고 분석한다. 소련 사회주의 붕괴 이후 80년대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도 지금 개인의 위치나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긍정과 부정으로 각자 달랐다. 가족들을 모질게 끊어내고 역사 속에 개인을 내던지면서 투신했지만 전체 노동운동사에서 일반 활동가 각자의 삶은 배제돼 있었다. 현장 노동자들과 다른 “이질적 존재”로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못한 측면”도 컸다. 그럼에도 학출활동은 비록 왜곡되고 낮은 수준이지만 대안이념으로서 사회주의를 상상하며 한국 사회 이념 지형에 균열을 낸 데 의의가 있다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그 자신 ‘학출활동가’ 출신인 지은이는 “연구자로서 그 시대 경험이 이입돼 거리두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변혁에 대한 열정, 배신과 강요 등이 복잡하게 흘러넘치는 이야기를 분석적인 시선으로 종합하려 한 지은이의 노력이 책갈피마다 느껴진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이들을 곧장 80년대로 소환하는 힘이 세다. 이 책의 저본인 박사학위 논문은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이 우리 역사 연구와 사회 진보에 이바지할 수 있는 한국 근현대사 논문에 주는 ‘강만길 연구기금’을 2013년에 받았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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