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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평등에서 결과의 평등으로

등록 2015-05-21 20:49수정 2015-05-21 20:49

평생 불평등 문제 연구해온 석학
“지금 불평등 수준은 지나치다”
불평등 해소 위한 15가지 방안 제시
70년대까지 불평등 낮았던 이유는
복지국가와 노조의 적극적 개입 덕분
불평등을 넘어
앤서니 앳킨슨 지음, 장경덕 옮김
글항아리·2만2000원

‘누구도 그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네 배 넘게 부유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사람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었다. 민주주의를 비판하며 철인정치를 주장한 보수 논객 플라톤이 부의 격차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불평등성이 커지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국가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 불평등을 심화시킨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최근 아이엠에프의 연구는 불평등이 낮을수록 거시경제적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말해준다”(2012년 국제통화기금 및 세계은행 연차총회 연설 ‘불평등과 미래 세계의 성장의 질’)고 말한 것도 플라톤과 같은 심정에서였을 것이다.

<불평등을 넘어-정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원제: Inequality-What Can Be Done?)를 쓴 앤서니 앳킨슨(71) 역시 플라톤이나 라가르드와 같은 줄에 서 있다. 같은 줄에 서 있다는 말은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불평등을 연구한다기보다는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불평등을 연구한다는 뜻이다. 그는 “내 목표는 완전한 평등이라기보다는 지금의 불평등 수준이 지나치다는 믿음에 따라 현재 수준 아래로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 점에서는 <21세기 자본>의 토마 피케티, <불평등의 대가>의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불평등 문제 연구에 바친 앳킨슨(영국 런던정경대학 센테니얼 교수 겸 옥스퍼드대 너필드칼리지 특임연구원)은 ‘기회의 평등’보다 ‘결과의 평등’이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책을 시작한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개념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 기회의 평등은 본질적으로 모두가 같은 출발점에 서야 한다는 사전적인 개념인 데 반해 많은 재분배 활동은 사후적 결과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이 실수로 넘어져 가난에 빠진다고 해보자. (…) 무료급식소에 줄을 서게 된 것이 환경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노력 부족 탓인지 따져보고 그에 따라 수프를 나눠준다는 조건을 거는 것은 도덕적으로 혐오스러운 일일 것이다.” 또한 “오늘 사후적으로 나타난 결과는 내일 경기의 사전적인 조건이 된다. 오늘 결과의 불평등에서 이득을 얻는 이들은 내일 자녀들에게 불공평한 이익을 물려줄 수 있다. (…) 우리가 내일의 기회의 불평등을 걱정한다면 오늘의 결과의 불평등을 걱정해야 할 것이다.”

앤서니 앳킨슨이 출판 기념 사인회에서 독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앳킨슨은 시민권이 아니라 참여(취업·봉사·돌봄·교육·훈련·구직활동 등)를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주는 ‘참여소득’을 제안한다. 글항아리 제공
앤서니 앳킨슨이 출판 기념 사인회에서 독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앳킨슨은 시민권이 아니라 참여(취업·봉사·돌봄·교육·훈련·구직활동 등)를 조건으로 기본소득을 주는 ‘참여소득’을 제안한다. 글항아리 제공
앳킨슨은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지금 세계가 얼마나 불평등한 상태인지 입증하는 데 주력한다. 지니계수를 활용해 100년간의 불평등 추이를 보여주는데 1, 2차 세계대전 뒤 1970년대까지 불평등이 꾸준히 개선되다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가 기승을 부리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다시 100년 전 수준으로 나빠지는 추세가 확인된다.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입증한 것과 동일한 결과다.

2차 세계대전 뒤 유럽과 미국에서 불평등이 크게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부분에서 앳킨슨은 피케티보다 한 발 더 나아간다. “첫째로 꼽을 수 있는 명백한 요인은 이때가 복지국가와 사회적 급여가 확대된 시기라는 점이다. 그 재원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누진적인 소득세로 조달됐다. 국가연금제도가 성숙함에 따라 노인층 빈곤은 줄어들었고, 장애가 있는 이들을 비롯해 다른 부문으로 사회적 이전이 확대되면서 사회안전망의 효과가 커졌다.” 미국에서는 뉴딜프로그램이 노령·유족·장애보험으로 발전한 것을 포함해 ‘정부 이전 지출’의 증가가 가구소득 불평등을 줄이는 쪽으로 작용했다.

이와 함께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대신해 단체교섭을 하고 (최저임금제도 등) 정부가 노동시장에 개입하면서 근로소득 격차가 확실히 줄어들게 된다. “80년대 이후 평등화 추세가 끝나게 된 주된 이유는 이들 요인이 거꾸로 뒤집혔거나(복지국가 축소, 임금 분배율 하락, 근로소득 격차 확대) 아예 끝나버린(부의 재분배)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불평등을 넘어>는 <21세기 자본>보다 좀 더 실용적이면서도 좀 더 전문적이다. 특히 불평등에 관한 단순 분석에 그치지 않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 15가지를 제안한다. △실업 예방을 위한 명시적 목표 채택과 공공부문 고용 보장 △노동조합의 안정적 활동을 위한 법적 보장 △모든 성인에게 기초자본 지급 △개인 소득세 누진율 강화 및 한계세율 65%까지 인상 △최근 부동산 시세를 바탕으로 한 누진적 재산세 △자녀수당 및 기본소득 지급 △글로벌 불평등 개선을 위해 공적개발원조 목표 인상(국민총소득의 1%) 등이다. 이런 구체적인 대안을 설명하려다 보니 다소 전문적인 내용들이 많이 등장한다. 정책 결정자나 연구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앳킨슨은 결론에서 “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1980년 이후 우리가 ‘불평등 회귀’를 목격한 것은 사실이며, 21세기는 인구 고령화, 기후변화, 그리고 글로벌 불균형 면에서 여러 도전을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은 우리 손안에 있다. 우리가 오늘날 더욱 거대해진 부를 이러한 도전에 맞서는 데 기꺼이 쓰려고 한다면, 그리고 자원을 덜 불평등하게 나눠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분명 미래를 낙관할 근거가 있다.” 보수를 자처하는 우리나라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이 책을 완독하기 바란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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