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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함석헌의 간디 해석에 대한 비판적 성찰

등록 2015-05-28 20:33

함석헌(왼쪽)과 간디.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이조 500년 허송세월” 운운한 문창극의 발언이 함석헌이 한 말과 같다는 주장을 접하고 함석헌을 재조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극우들의 사고에 오용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함석헌이 잘못 쓴 것이 있으면 잘못이라고 해야” 새로이 부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함석헌(왼쪽)과 간디.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이조 500년 허송세월” 운운한 문창극의 발언이 함석헌이 한 말과 같다는 주장을 접하고 함석헌을 재조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극우들의 사고에 오용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함석헌이 잘못 쓴 것이 있으면 잘못이라고 해야” 새로이 부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박홍규 영남대 교수 새 책
함석헌의 간디 이해 재조명
간디는 정교일치 주장한 적 없어
‘신의섭리’ 역사관도 회의적 접근
함석헌과 간디
박홍규 지음/들녁·1만4000원

“예언의 나팔을 불어라!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겠는가?”

함석헌(1901~1989)이 사랑했던 19세기 영국시인 셸리의 시 ‘서풍’의 명구다. 겨울로 상징되는 식민과 분단, 냉전, 그리고 독재에 신음하던 씨알들에게 봄을 가져오는 생명의 바람인 ‘서풍’은 “나를 몇 번이나 엎어진 데서 일으켜주었다”고 한다. “혁명의 바람”인 서풍을 그리워한 그는 평생 저항인, 자유인으로 살았다. 그가 존경해서 닮고자 했던 사표는 32년 앞서 태어나 비폭력 민족해방투쟁을 치열하게 펼쳤던 인도 민족지도자 간디다. ‘한국의 간디’라 불리는 함석헌이 살다 간 20세기가 지났건만, ‘서풍’은 어디쯤 불어오고 있는가?

인문예술 다방면의 ‘르네상스맨’ 박홍규 영남대 교수가 이번에 20세기 대표 사상가인 ‘함석헌과 간디’에 주목했다. 사상을 숭상하는 차원을 넘어 비판적 읽기를 시도한 이 책은 지난해 6월 벌어진 ‘문창극 사태’가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두 ‘거인’을 50여년 세월 동안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며 그들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했음을 전제한다. “이조 500년 허송세월” 운운한 문창극의 말이 함석헌이 한 말이나 같다는 주장은 어떻게 나왔나? 기독교사상가, 민주화운동가, 독립운동가, 역사가, 시인, 언론인으로서 크나큰 족적을 남긴 위인의 역사관이 한국 극우들의 사고에 오용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함석헌이 잘못 쓴 것이 있으면 잘못이라고 해야” 새로이 부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비폭력 평화의 길을 걸은 함석헌이 간디 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을 되짚으며, 간디와 같고도 다른 길에 대해서도 재조명한다.

지은이가 회의하는 지점은 함석헌이 ‘신의 섭리’로 설명하는 역사관이다. 그의 만주 중심 사관은 신채호와 같다. 여기에 고난 사관이 더해지는데,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켜 만주 땅을 잃어버리고 반도에 머문 것이 고난사의 시작이었다고 본다. 이로 인해 “중국을 모방한 조선민족의 자아 상실이 시작되고 치욕과 고난의 역사가 전개”됐으며, 이를 “신의 섭리”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5·16도 임진왜란도 일제 침략도 ‘신의 섭리’였다. 다만 5·16은 ‘필연적인 악’이었으며, 외침의 고난 앞에서 “원인의 죄악의 길에서 발길을 돌려 나오려는” 고난 극복의 섭리가 우리 민족에 내재돼 있어 저항해 왔다는 것이다. 함석헌은 특히 “조선 500년 역사는 당파싸움뿐”이었다며, 새로운 역사 원리로 정치와 종교의 통일을 내세운다. 간디의 비폭력주의를 정치와 종교의 일치로 본 함석헌은 비폭력주의야말로 민족성 개조와 섭리에 의한 고난 극복의 방법으로 삼았다.

얼핏 보면 뉴라이트의 식민사관이나 오늘날의 기독교 보수주의가 차용할 법한 관점이 있는 듯하지만, 지은이는 순응과 저항이라는 차이를 언급하며 선을 긋는다. 한국 극우들은 대부분 기득권에 순응하며, 다수의 고난을 외면한다. 그렇게 되면 “역사는 그것을 만드는 소수에 의해 제멋대로 흘러간다.” 반면, 일제나 독재라는 고난의 역사 앞에서 함석헌은 ‘씨알’들과 함께 저항으로 맞섰다. 그들이 함석헌을 인용하는 게 견강부회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함석헌이 존경한 간디도 힌두교라는 종교에 바탕을 둔 위대한 사상가이자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또한 생태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인 면도 같다. 하지만 비폭력주의를 정치와 종교의 일치 또는 조화라고 수용한 것은 간디에 대한 오해라고 지적한다. 간디는 정치의 원리와 종교의 원리가 모두 ‘진실’의 추구라고 보았고, 정교일치를 주장한 적도 없다. 함석헌은 또 “간디같이 위대한 혼이 크리스천이 못된 것은 기독교의 부끄러움”이라고 썼지만, 사실 간디는 다원주의적 종교관 때문에 개종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서양문명에 대한 태도도 상반된다. 간디는 인도가 망한 것이 서양문명을 좋아해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며, 서양문명 이전의 물레를 돌리는 마을 자치 공동체로 돌아가자고 한다. 이에 반해 함석헌은 미국 여행에서 돌아와 기계문명과 서부개척정신을 높이 사며 “넓은 곳으로 이민을 가라”고 채근한다. 함석헌이 믿은 기독교는 제국주의적 잔재였고, 비폭력이 반제국주의에서 나오는 것을 명백히 자각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지은이는 “함석헌을 되살리고 한국을 되살리는 길이 간디의 사상을 주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이며, 간디와 함께 함석헌을 뛰어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맺는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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