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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양주동 외 9인 지음 ‘적화삼삭구인집’…잔류파 지식인들 “난 빨갱이가 아니오”

등록 2015-05-28 22:07수정 2015-10-22 15:47

[광복 70년, 책읽기 70년] ② 한국전쟁기의 책과 지식풍경

인민군 치하 90일간 서울에 남아
‘공산주의에 감염된’ 이들은
살기 위해 결백을 증명해야 했다
서울 수복 직후인 9월30일 경무대로 이승만을 찾아간 모윤숙은 분한 생각에 이승만의 넥타이를 붙잡고 대로대롱 매달려 “할아버지 도대체 나를 부려먹고 막판에는 방송을 시키고 혼자만 살려고 피난 가기예요”라고 바락바락 악을 썼다고 회고했다. 친분이 있던 모윤숙은 따지기라도 했지만, 대부분의 잔류파들은 결백을 증명함으로써 생명을 도모해야만 할 형편이었다.

9·28 서울 수복 직후 피난(도강)은 곧 ‘반공’의 표식이 되었다. 잔류파란 명명은 공산주의라는 질병에 노출되고 감염된 표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도강하지 못한 자들은 의심과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잔류파들이 부역 혐의로 처형되기도 했다. 잔류파 문화인들에게는 ‘참회’와 ‘속죄’의 기록이 직접적으로 요구되었다.

양주동·백철·장덕조·김용호·박계주·최정희·오제도·손소희·송지영 등 9인의 저명인사가 인민군 치하 90일 동안 겪은 고난을 담은 <적화삼삭구인집>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탄생한 책이다. 이 수기집은 고백을 통한 고해성사와 알리바이를 입증하는 자술서적 글쓰기의 형식을 취했다. 이 글들에는 잔류 및 소소한 부역행위의 불가피성이 드러나 있고, ‘빨갱이’(인민공화국)에 대한 증오의 언어로 점철되어 있다.

이를테면, 양주동은 공산주의의 만행을 열거하며 ‘아메리카적 민주주의’냐, ‘소련적 정치양식’이냐라는 양자택일이 있을 뿐, 중간파적 입장은 독이라고 선언한다.

그렇지만 그는 ‘빨갱이’의 등급을 나누는 논의에서 악질은 처결해야 하지만, 일시적 선전에 기만되거나 압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협조의 제스처를 취했던 자유주의 지식인들에 대해서는 아량있게 포용하고 선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부류의 지식인에는 그 자신도 포함될 터이다. 백철은 ‘살아야 되겠다’는 생의 욕망을 자신의 알리바이로 제시하고 있다. 수기집 전편에서 문인들은 지속적으로 부역행위를 반성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문장들 이면에는 도강파를 향한 억울한 반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너희라고 달랐겠느냐.”

정종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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