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주변화된 노동’에 초점을 맞추면서 베트남전 파병 또한 미군을 대신한 ‘대리 노동’의 성격을 띤다고 말한다. 보도사진연감
재미동포 교수의 한국문학 분석
주변화한 노동에 눈길
한강의 기적 탈신비화
‘대리 노동’의 ‘죽음정치적’ 성격 밝혀
주변화한 노동에 눈길
한강의 기적 탈신비화
‘대리 노동’의 ‘죽음정치적’ 성격 밝혀
한국의 군사주의·성 노동·이주 노동
이진경 지음, 나병철 옮김
소명출판·2만8000원 최근 한국 사회를 분석한 중요한 연구서들이 외국에서 먼저 발간되는 일이 잦다. <서비스 이코노미: 한국의 군사주의·성노동·이주노동>도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지난 2010년 미국에서 출판된 한국 문학 연구서로, 근대 한국의 개발을 좀더 넓은 초국적 맥락에 놓고 거시-미시적 차원에서 역사, 정치경제, 문화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분석한다. 한국 문학을 분석하는 데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지만 문학 연구서라기보다 힘있고 탁월한 학제간 연구서로 보인다. 재미동포 1.5세대인 지은이 이진경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 문학학과 교수는 우선 ‘한강의 기적’으로 묘사되곤 했던 한국의 개발 “성공”을 탈신비화한다. 근대화 과정을 밝히기 위해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 학계가 주로 분석해온 일반적인 산업노동 대신 주변화된 노동에 눈길을 준다. 이 노동은 한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떠받치고도 외면받아온 군사노동·성노동·군대 매춘(기지촌 성매매)·이주노동을 가리킨다. 한국의 산업화는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참여 및 경제적 패권 장악의 트랜스내셔널(초국적)한 맥락과 분리할 수 없다. 반세기가 넘도록 한반도에서 주둔 병력이 3만5000명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는 미군의 존재, 베트남전, 기지촌과 성노동, 아시아인들의 이주노동은 언제나 초국적 성격을 띤다. 군사노동·성노동·이주노동은 프롤레타리아의 신체 자체가 상품이 되는 ‘서비스 노동’이다. 노동자는 소모품이자 누군가의 신체를 대신하는 ‘대리 노동자’로서 신체의 상해 또는 죽음의 가능성에 직면한다. “내던져지고, 대체되고, (비유적으로) 살해될 수 있는 어떤 대상이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를 지은이는 ‘죽음정치적 노동’이라고 개념화한다. 국가 또한 이 노동에 적극 개입한다. 베트남전쟁 때 군사노동을 수출하는 “초국적 노동중개자”였고, 기지촌에서 군대 매춘을 조장하고 관리하는 데 간여했으며 오늘날에는 아시아 이주-이민 노동자를 통제하면서 자본과 공모해 ‘죽음정치적 노동’의 착취 구조를 방조하거나 획책해왔다는 것이다. 성노동 또한 심리적·육체적·성적 폭력과 상해로 이어지거나 폭력과 연관 속에 놓이기 때문에 죽음정치적 노동 범주 안에 넣는다. 성매매방지 특별법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과거와 달리 지금의 성 판매가 자발적 노동으로 변모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강압적인 “매춘”의 동원이 경제적 요인에 의한 “성적 프롤레타리아화”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대중소설부터 순수문학까지 한국 문학을 전방위적으로 검토한다. 사창가 여자와 베트남 제대병 사이의 이야기(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 다른 인종 여성을 폭행하거나(안정효의 <하얀전쟁>) 강간하며 복수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남정현의 <분지>) 등이 도마 위에 오른다. 근대 이후 한국 문학에서 가장 진보적인 문학적 성취라고 찬사받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도 예외가 아니다. “조세희의 좌파 민족주의 소설은, 가문·국가·남성의 더 큰 대의를 위해 마음을 바쳐 기꺼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희생하는 과거의 원형적 여성주인공들을 재창조한다.” 민족과 대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희생하는 여성들은 그밖에도 곳곳에 등장한다. <겨울여자>(조해일)에서 아름답고 정숙한 여자주인공 ‘이화’는 개발 독재의 그늘에서 기갈로 고통받는 젊은 한국 남성을 위한 “수원”이자 군사정권 아래 근대화의 트라우마를 치유해주는 여신으로 거듭난다. “상징적 질서”에서 이화는 “어머니, 처녀, 창녀”를 합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박범신의 <나마스테>는 주류 한국인의 외국인 혐오적 차별을 가차 없이 비판하는 중요한 창작물이라며 높게 평가하지만 분명한 한계를 지녔다고 본다. 한국 여성을 외국인 노동자를 재생시키려는 ‘모성주의’로 재현하고, 미성숙한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에서 성장하며 혁명적 인간이 되어가는 것으로 묘사했다는 얘기다. 이런 점은 지배와 동화를 용이하게 하는 ‘하위제국적’ 이해와 공모한다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베트남전 관련 소설에서도 보듯, 당시 지원 병사 대다수는 미국이 제공한 경제적 이익에 끌린 빈곤계층 출신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남성성을 입증하는 데 열성적이었고, 미국에는 효과적인 일원이었으며 북베트남에는 잔인한 적이었다.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은 베트남 파병으로 한국이 “성숙한 성인국가”가 되었다고 박정희가 연설했듯, “국가적인 남성적·성적 개발을 서사화한다”고 지적한다. 강대국의 힘에 상처받은 약소국 한국 남성을, 더 위계가 낮은 나라의 여성에 대한 정복으로 재남성화한다는 것이다. 옮긴이 나병철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역자 서문에서 “이제까지 배제되고 주변화되어온 영역이 오히려 근대성과 식민지성에 대한 복합적인 통찰을 제공한다는 것이 이 책이 알려주는 역설”이라고 썼다. 지은이는 특히 이주/이민노동의 유입으로 한국의 역사 기술이 변화되는 이때, 인종·섹슈얼리티·젠더·계급의 범주를 고려해 ‘민족’을 더욱 적극적으로 사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민족주의’나 ‘비민족주의’처럼 ‘민족’을 단순히 삭제할 경우 이것이 또 다른 부정적인 모습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