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바로 옆의 북 민가와 학교. 교사 벽에 내걸린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라는 구호가 보인다. 김진향 제공
“날마다 작은 통일 이뤄지는 기적의 공간”
북에 하나 주고 남이 열 얻는 개성공단
공단 장기체류 체험자들 인터뷰 통해
취업 주민들 삶의 실상 접근
북에 하나 주고 남이 열 얻는 개성공단
공단 장기체류 체험자들 인터뷰 통해
취업 주민들 삶의 실상 접근
김진향 기획총괄, 강승환·이용구·김세라 취재
내일을여는책·1만5000원 개성공단은 정말 ‘대북 퍼주기’의 총본산인가? 개성공단에서 4년간 체류하며 대북협상 등을 담당했던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의 북한·통일문제 전문가 김진향 교수가 취재작가 3명과 2년여의 공동작업 끝에 내놓은 <개성공단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북쪽에 비해 오히려 우리가 몇 배는 더 많이 퍼오는 곳”이 바로 개성공단이란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런 경제효과만이 아니다. 개성공단에 근무하거나, 한 적 있는 남쪽 주재원 9명을 인터뷰해 “개성공단과 북쪽 사람들에 대한 살아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이 책을 보면, 가장 군사적 긴장이 높은 최고도의 무장지대였던 개성 일대 서부전선이 남북 상생과 분단 해체의 최전선으로 변모하고 있다. 아직은 다소 희망 섞인 관측일지 모르지만, 그곳이 이미 “전세계에게 가장 경제성이 높은 생산기지”요 “전쟁의 위협이 일상화된 서울보다 오히려 더 안전한” 곳이 됐다고 말한다. 이런 얘기는 또 어떤가? “오늘도 쌩쌩 돌아가는 개성공단에서, 화성에서 온 남쪽 근로자와 금성에서 온 북쪽 근로자들은 티격태격 ‘미운정 고운 정’을 쌓아가면서 서로서로 동화되어 간다. 그래서 그들은 개성공단을 ‘날마다 작은 통일이 이루어지는 기적의 공간’이라고 부른다.” 이런 얘기를 얼마나 믿어야 할까? 2000년에 남북이 합의하고, 2004년에 첫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개성공단에는 지금 124개의 남쪽 기업들이 공장을 돌리고 있다. 거기서 일하는 북 주민은 5만3000명. 개성시와 인근 군에서 동원 가능한 일꾼들을 최대한 모은 인원이다. 한 사람당 한 달에 50달러로 시작해서 지금 130달러 정도인 개성공단 봉급에 기대고 있는 북 주민들은 그 가족 등을 합하면 수십만으로 추산된다. 공단 가동 10여년 만에 60~70%가 여성인 개성 일꾼들 얼굴은 뽀얗게 되고 화장과 의류 등 생활패션, 그리고 사고방식마저 남쪽 사람의 그것에 근접하는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단다. 5만3000여명의 북 노동자들 임금과 세금을 합쳐 1년에 약 1억달러(약 1000억원) 정도가 북에 들어가지만, 남쪽이 거기서 올리는 생산액은 15억~30억달러가 넘는단다. 정부 발표로는 개성공단 1년 생산액이 약 5억달러지만, 임가공료(봉제비=단순 임가공료) 기준으로 산정한 이 수치는 허점이 있단다. 이를 공장도가나 소비자가로 환산하면 적어도 5~1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남북이 경제적으로 윈윈하는 곳이지만, 더 엄밀히 평가하면 남쪽이 북쪽보다 몇배, 몇십배는 더 많이 벌고, 국가경제적 관점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많이 퍼오는 곳”이 개성공단이란다. “우리나라 속옷의 70%가 개성공단에서 나오죠. 우리가 입고 있는 의복의 30%는 개성공단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휴대폰 부품도 상당수가 개성공단에서 조립되고 있어요. 소위 ‘개성단가’라는 게 있어요.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들 때문에 가격이 엄청나게 싸게 형성되는 거죠. 그만큼 개성공단의 경제적 가치는 참으로 어마어마합니다.” 경쟁력 세계 최고란 것도 빈말이 아니다. “해외 어디를 가 봐도 개성공단만큼의 비교우위, 경쟁력을 지닌 곳은 없다. 개성에서 이윤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한다. 인건비, 근접성(물류비), 기술성(생산성) 등에서 압도적 우위란 얘기다. 그래서 ‘통일이 대박’이란 말은 ‘평화가 대박’이란 말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치명적인 손실을 안긴 가동중단과 같은 긴장과 대결이 없는 평화가 곧 대박이란 얘기다. “거창한 통일론이 뭐 필요해요? 개성공단 몇개만 더 있으면 저절로 통일이 될 텐데.” 따라서 천문학적인 수치의 통일비용 논쟁도 허구라고 못박는다. 개성공단식 평화통일 과정에는 “한 푼의 돈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직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상호존중”만 실천되면 남북은 오히려 함께 돈을 벌면서 통일로 갈 수 있다고 얘기한다. 북쪽이 거의 공짜로 내준 개성공단 부지와 인근지역은 북한군 6사단과 64사단, 2군단 포병연대 등이 있던 땅이다. 북은 그 기지들을 5~10㎞나 후퇴시켰고, 공단 취업 북 주민 봉급도 스스로 대폭 낮추는 양보를 했다. 원래 개성공단은 3단계에 걸쳐 공단 800만평과 배후도시 1200만평 등 총 2000만평의, 창원공단과 창원시를 합친 규모의 거대도시로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지금 1단계 100만평의 약 40%에만 공장이 들어서 있다. 기세 좋던 공단확장계획은 이명박 정권 등장과 함께 전면 중단됐다. 2008년 7월 ‘박왕자씨 총격 사망’ 사건 때문이라는 주장은 오해거나 왜곡이란다. 그 전인 그해 3월에 이미 통일부 장관이 “핵문제 타결 없는 개성공단 확대 불가”를 분명히 했고, “개성공단 중단도 무방하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남북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로 인한 “비정상적 상태”가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가로막았다. 흡수통일을 지향하면서 남북 분단·대결 체제를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존속시키려는 세력, 기적을 가로막으려는 그들은 누구인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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