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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꼰대 같은 기획’ 없는 이유, 격주 ‘격정토론’에 비밀이…

등록 2015-06-16 19:46수정 2015-06-16 21:55

 <황해문화> 편집회의는 ‘격정토론’으로 이름 높다. 김명인 편집주간(왼쪽부터), 백원담, 김진방, 이광일 편집위원과 전성원 편집장, 김진석 편집위원이 편집회의를 하고 있다. 회의에는 이희환 편집위원, 장수영 편집간사도 참석했다.
<황해문화> 편집회의는 ‘격정토론’으로 이름 높다. 김명인 편집주간(왼쪽부터), 백원담, 김진방, 이광일 편집위원과 전성원 편집장, 김진석 편집위원이 편집회의를 하고 있다. 회의에는 이희환 편집위원, 장수영 편집간사도 참석했다.
계간지 ‘황해문화’ 편집회의 참관기
인천에 기반을 둔 계간지 <황해문화>는 전국적 의제를 제시하는 시사 문화지로서 위상이 높다. 이번 여름호에서는 ‘세금 공부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증세 논의에 파장을 던졌다. 조세 개혁 과정의 주민 참여와 민주성을 강조한 것으로,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 한발 나아간 쟁점을 내놓았다.

그동안 발간된 <황해문화>에는 한국 사회 전반을 진단하는 특집과 문화비평, 서평, 인천문화 지리지까지 지식담론과 ‘현장’을 오가며 고민한 티가 뚜렷하다. 정기독자 비율도 85%에 이른다. 지난 2013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잡지산업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잡지 1788종 가운데 정기구독 비율이 80%가 넘는 것은 16.4%에 불과했다. <황해문화>의독자기반이 그만큼 튼튼하다는 방증이다.

<황해문화>의 질을 담보하는 건 격주로 열리는 편집회의다. ‘격정토론’이라고 소문난 편집회의는 지역과 세계에 대한 흥미진진한 논쟁이 아슬아슬하게 진행된다고 했다. 그 현장이 궁금해 지난 11일 저녁, 인천 중구에 위치한 새얼문화재단 사무실을 찾았다.

‘전지구적 사고, 지역적 행동’ 슬로건으로 한국사회 진단·문화비평 풀어내
중견 지식인들로 구성된 편집위원들, 다양성 인정하는 ‘열린회의’ 눈길

새얼문화재단은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시민문화재단이다. 재단의 지용택 이사장은 “재단법인 새얼장학회를 설립한 것이 1975년이었는데, 당시 모두가 만류했다”고 말했다. 지 이사장은 1983년 “시민의 힘으로 운영한다”는 원칙 아래 노동자 자녀를 돕기 위한 장학회를 새얼문화재단으로 확대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사상계> <청맥> 등 언론·출판물을 모아온 다독가, 탐독가로 유명하다. 지금도 <한겨레21> <창작과비평>의 꼼꼼한 정기구독자로 자타공인 ‘잡지 전문가’다. <황해문화>의 발행인·편집인을 맡고 있지만 “잡지 편집에 일절 입김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잡지의 주축인 김진방(인하대·경제학), 김진석(인하대·철학), 이광일(한신대·정치학), 이희환(인터넷신문 ‘인천in’ 대표·국문학), 백원담(성공회대·중국학) 편집위원과 김명인(인하대·국어교육학, 문학평론가) 편집주간이 차례차례 사무실로 들어왔다. 한국 사회 중견 지식인인 이들 각자의 뚜렷한 개성은 지면에도 반영된다. 이 잡지가 서울에서 발행되는 전국지들이 무색할 정도로 날선 젊은 시각과 무게감까지 두루 갖출 수 있었던 데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열린 편집회의’가 큰 구실을 했다.

회의 탁자에 석식으로 김밥과 컵라면이 놓이자, 위원들은 면발이 익기를 기다리며 “이날을 고대하는 큰 이유”라고 말했다. 전성원 편집장과 장수영 간사가 합석한 가운데 회의가 시나브로 막을 올렸다. “메르스도 이번호에 뭔가 써야지?” “차벽은 청와대가 아니라 다른 곳에 세웠어야 했어.” “그런데 백 선생 컵라면은 우리 것보다 고급이네?”

라면부터 감염병까지 농담과 묵직한 이야기가 속사포같이 오갔고, 특집 논의가 시작되었다. 가을호 특집은 지난 회의에서 이미 결정된 상태. ‘보수 vs 진보의 진영 논리를 넘어 중도의 확장을 위하여’다. 전성원 편집장이 “원고를 써달라고 청탁한 필진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기꺼이 쓰겠노라 답했다”고 말하자 편집위원들 사이에서 낮은 환호성이 울렸다. “예감이 벌써 좋은데요.”

곧장 겨울호 회의가 속개되어 백원담 위원이 특집에 대한 내용을 발제했다. ‘1958년 개띠’로 같은 세대인 김진방, 김진석, 백원담 위원, 김명인 주간이 ‘불꽃 토론’을 먼저 펼쳤다. 좀더 젊은 이희환·이광일 위원도 ‘선배들’이 진땀 뺄만한 날카로운 지적으로 토론에 가세했다. 백 위원이 “대중이 원한다면 조정하자”며 얘기가 마무리됐고, 김 주간이 유머를 곁들인 ‘자폭 멘트’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런데 이게 벌써 겨울호에 들어갈 건가? 아참, 내가 회의를 미리 하자 그랬지. 아참, 나 주간이었지?”

그동안 <황해문화>에 대한 상찬은 적지 않았다. 언론인 고종석씨는 “<황해문화>는 1970년대에 <창작과비평>이 했던 역할을 떠맡고 있는 것 같다”고 평한 바 있다. 출판평론가 최성일씨도 “계간지 지형에서 실로 독보적인 존재”라고 높이 샀다. 1993년 창간해 ‘전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슬로건으로 20년 넘게 시사 언론의 본령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편집위원들은 지나친 선정주의와 원론적인 아카데미즘을 경계한다. 이들이 ‘전투적 편집회의’를 하는 것도 ‘꼴통보수’ 아니면 ‘좌빨’ 뿐인 것처럼 보이는 저널리즘의 이원구조에서 벗어나려는 까닭이다. “우리는 석연찮은 것들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요. 서로 납득이 안되면 독자들도 설득할 수 없으니까요.” 김 주간이 말했다. 이에 전 편집장은 “편집위원들이 젊은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데 거리낌이 없어서 ‘꼰대같은 기획’이 덜 나온다”고 덧붙였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잡지들이 담론 중심으로 후퇴했다면 <황해문화>는 여전히 현장에서 ‘시사적 기동전’을 펼치는 셈이죠.”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를 넘자는 다음호 기획 또한 ‘현장’에서 살아가는 각자의 삶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지난 20주년 기념호 권두언에서 김 주간이 썼듯 <황해문화>가 “계절마다 한번 정도 좁은 소견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성마른 광기가 지배하는 이 불길한 시대의 속도를 얼마간은 멈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천/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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