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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학살 한인 희생자, 92년 만에 신원 확인

등록 2015-06-22 21:03수정 2015-06-25 11:11

‘한일협정 50년’ 세미나서
이진희 미국 대학교수 발표
강대흥씨의 묘에 세워져 있는 비석. 사진 오충공씨 제공
강대흥씨의 묘에 세워져 있는 비석. 사진 오충공씨 제공
1923년 일본 관동대학살 때 자경단의 손에 목숨을 잃어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땅에 묻힌 한국인의 구체적인 신원이 확인됐다. 이진희 미국 이스턴일리노이대 교수는 22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이 연 ‘한일협정 50년의 성찰과 평화공동체의 모색’ 국제학술회의에서 “‘일본진재시 피살자 명부’와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의 자료 같은 여러 기록물들을 대조한 결과, 관동대학살 당시 한인 피해자로서 사이타마현에 묘(사진)가 있는 강대흥씨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강씨의 유족은 당시 그가 실종된 것으로 생각해 고향인 경남 함안에 가묘를 써둔 상태였는데, 일본에 그의 실제 묘가 있었다는 점이 강씨 사후 92년 만에 확인된 것이다. 이 묘는 학살 사건이 발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 관계자가 책임을 느껴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관동대학살 때 목숨을 잃은 한국인들의 묘가 일본 사이타마현 등 여러 곳에 있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지만, 누구의 것인지 신원이 확인된 것은 지극히 드물다.

강씨는 관동대지진 직후인 1923년 9월4일 새벽, 조선인 폭동과 관련한 유언비어가 발생한 뒤 사이타마현 경찰이 조선인을 모아 다른 곳으로 이송하려는 과정에서 사이타마현에 결성돼 있던 자경단의 손에 타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당시 자경단은 오미야 경찰서에 출두해 조선인을 잡으면 무공훈장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믿었고, ‘꼭 상을 받고 싶다’고 자청하고 나선 이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번에 확인된 것은 학살 피해자의 이름, 나이, 출신지, 일본 내 학살지 및 학살 방법, 피살 신고 사실까지 확인된 매우 중요한 기록”이라며 “당시 피살 실태의 진상 규명과 유족을 찾는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오충공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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