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친일파청산·주한미군…고착화된 이념형 명제 비판학문 성립·성장해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진)가 지난 6일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주최로 열린 ‘인문학 이야기’에 초청된 자리였다. 동행한 홍윤기 동국대 교수가 발제문을 대신 읽었다.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경찰은 지난 5일 강 교수에 대한 구속 수사 방침을 밝힌 상태다.
발제문을 통해 강 교수는 자신이 “냉전성역 허물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가 보기에 21세기는 “탈냉전이라는 세계사적 흐름과 통일이라는 민족사적 흐름을 바탕으로 ‘통일학’이라는 새로운 한국학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이며 이를 위해서는 “냉전성역 허물기가 가장 핵심적인 과제”다.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는 금기의 영역으로 굳어진 것이 ‘냉전 성역’이라는 것이다. 강 교수는 항일무장투쟁, 친일파 청산, 한국전쟁, 전쟁 후 민간인학살, 주한미군, 주체사상, 김일성 등을 그 대표로 꼽았다.
이런 냉전 성역에 금줄을 두른 한국 사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몇가지 이념형 명제를 고착화시켰다고 강 교수는 주장했다. △사회주의는 모든 악의 근원이다 △미군은 점령군이 아니라 해방군이었다 △주한미군 철군 주장은 적화통일에 동조하는 주장이다 등이 대표적이다. 강 교수는 “신비화된 표준정답을 중심 연구과제로 설정해 이를 들춰내고 폭로하는 비판학문이 성립·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의 학문적 궤적은 이들 냉전의 성역을 허무는 작업이었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강 교수는 “사실논쟁을 이념·가치논쟁으로 환원시켜 색깔몰이하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학문적 귀결인 통일전쟁론이 틀렸다면 실증적 차원에서 남북 지도부가 전쟁의 목표에서 통일을 배제했다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이 내걸었던 국토완정론, 남이 지향했던 북진통일론 등이 통일의 목적과 관계없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는 것이다.
강 교수에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고 있는 중요한 근거 중의 하나가 한 인터넷 매체에 실린 글이다. “6·25 전쟁은 후삼국 시대 견훤과 궁예, 왕건이 삼한통일의 대의를 위해 서로 전쟁을 했듯이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었다.” 읽기에 따라서는 북의 남침 사실을 인정하는 듯한 이 문장에 담긴 판단이 무엇이 잘못 됐는지, 그것이 법적 판단의 문제인지, 여전히 이해못할 사람이 많다. 강 교수는 지금 자신의 판단에 물음표를 달지언정 족쇄를 채우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동감하는 전남대 인문학 연구원은 오는 11일과 18일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와 홍윤기 동국대 교수를 불러 ‘국가보안법과 학문의 자유’를 주제로 인문학 이야기 연속 강좌를 연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