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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사상계’가 혁명을 낳고 혁명은 ‘광장’을 낳았다

등록 2015-06-25 22:20수정 2015-10-22 15:20

1960년 4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에 진입해 있던 조재미 계엄부대장이 시민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박용윤 제공
1960년 4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에 진입해 있던 조재미 계엄부대장이 시민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있다. 박용윤 제공
[광복 70년, 책읽기 70년] ④ 4·19혁명과 책
■ 4·19의 주체는 누구인가?

4·19는 왜 4·19라 불리게 되었을까? 처음 4월 혁명으로 불리다 4·19로 명명이 바뀌게 된 것은 ‘피의 화요일’로 불리는 이날 111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온 때문이겠지만, 아마도 서울의 대학생들이 시위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도 중요한 이유일 터이다. 그렇다면 4·19는 대학생만의 시위였던가? 박태순의 단편소설 ‘무너진 극장’(1968)은 4·19의 주체와 혁명의 실상에 대해 흥미로운 인식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4월25일 밤 군중들이 정치깡패 임화수가 운영하던 평화극장을 무너뜨리는 순간을 그리며 혁명의 진면모를 날카롭게 환기시킨다. 작가는 극장을 때려부수는 군중을 그리면서 혁명을 숭고와 장엄의 후광이 비치는 초월적 비약이 아니라 사소함과 비루함 그리고 광기를 포함한 무질서한 파괴로 포착한다. 극장에 모인 군중은 무질서의 해방 상태에서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짐승처럼 소리 지르며 집기를 부수는 광기를 보여주었으며, 혼란의 와중에 매점에서 캐러멜 등속과 빵, 과자를 훔쳐가는 도둑들도 있었다.

혁명은 ‘빵과 자유’에 대한 갈구를 기본으로 한다. 군중들의 평화극장 파괴가 자유를 참칭한 자유당 정권에 대한 항거였다면, 매점에서 먹을 것을 들고 나온 이들은 단순한 도둑이 아니라 혁명의 또 하나의 원인인 ‘빵’에 대한 요구를 실행한 셈이다. 그렇지만 혁명의 주체였던 거리의 군중들은 ‘부랑아’라는 명명과 더불어 대학생-지식인 중심의 ‘거룩한’ 자유 혁명의 서사에서 축출되었다. 쫓겨난 것은 이들 하층민-부랑아뿐만은 아니었다. 4·19는 흔히 학생 혁명으로 일컬어지거니와, 이때의 학생은 대학생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많은 기록들이 4·19에서 중고등학생들의 주도적 역할과 희생을 전하고 있다. 4·19의 상징이 된 김주열은 마산상고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으며,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리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총탄에 맞아 죽은 진영숙은 한성여중 2학년생이었다.

중고생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관제 궐기대회에 동원되었던 경험이 작용했다. 이승만 정권은 학생들을 동원하고 규율하기 위해 각급 학교에 학도호국단을 만들었다. 1950년대 중고생들은 권력의 규율 시스템인 학도호국단을 자치조직으로 활용하여 부패한 사학재단에 대한 스트라이크를 벌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학습하였다. 이러한 경험은 3·15 부정선거에 대한 고등학생 연합 시위의 훌륭한 토대가 되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은 더 이상 정치적 주체가 아니다. 단지 훈육의 대상으로 유폐된 청소년과 취업시장에 내몰린 대학생들은 어떻게 하면 다시 자기 삶의 주체로 설 수 있을까?

정권의 부패를 폭로한 ‘사상계’
1953년 첫선 이후 3천부 선
55년 1만, 56년에는 3만부
60년 4월호 9만7천부 이르며
혁명을 견인했다. 무엇보다
남북한 모두 미·소 꼭두각시라는
함석헌의 글이 잠자는 민중을 깨웠다

4·19 직후 나온 최인훈의 ‘광장’
남북한 모두 거부하고
중립국 인도를 택하는 주인공
이승만 정권에서는 불가능
탈냉전적 시각의 소설은 80년대까지
대학생 필독서가 되었다

<사상계> 1958년 8월호 표지.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가 실려 있다.(왼쪽) <광장> 초판본 표지.(오른쪽)
<사상계> 1958년 8월호 표지.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가 실려 있다.(왼쪽) <광장> 초판본 표지.(오른쪽)
■ 4·19를 만든 책 - <사상계>

4·19를 언급하며 종합교양지 <사상계>를 언급하는 것은 식상하지만,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4·19 세대를 자임하는 비평가 김병익은 “1950년대 중반의 혼란과 궁핍에서 성장한 4·19 세대가 <사상계>로부터 위안을 받았고 자기를 개발할 수 있었던 바탕”이었다고 술회한다. 그에 따르면 “4·19가 일어날 수 있었던 시작”은 <사상계>였다.

<사상계>는 한국 지성사와 언론사상 가장 중요한 잡지의 하나이다. 식민지 시기의 <개벽>과 이후의 <창작과비평>으로 이어지는 지식인 잡지 계보의 중추이기도 하다. 1953년 4월1일에 창간되어, 1970년 5월호에 실린 김지하의 <오적> 때문에 당국으로부터 폐간 처분을 받기까지 통권 205호를 발행했다. “<사상계>를 끼고 다니지 않으면 대학생이 아니다”는 말이 있을 만큼 4·19 전후의 지식인과 대학생들에 대한 영향도 압도적이었다.

<사상계>는 창간 때부터 1955년도까지는 대략 3000부 선에서 머물러 있다가 1955년 12월호는 1만부를 돌파하고, 1956년에는 3만부, 4·19 직전인 1960년 4월호는 9만7천부를 찍었다. 이는 그때까지의 잡지 역사상 최고 발행부수를 자랑한다. 이러한 판매부수의 증가와 비례하여 지면도 꾸준히 늘었다. 12월호를 기준으로 지면의 증감을 살펴보면, 1954년 178면, 1955년 308면, 1956년 374면, 1957년 366면, 1958년 444면, 1959년 412면, 1960년 428면으로 늘어났으며, 이후 전성기에는 지면이 500면에 육박했다.

<사상계>의 목소리는 ‘기독교 민족주의’, ‘서구지향적 자유주의’, ‘반공주의’라는 틀 안에서 공명하고 있다. <사상계>에 민족주의적 목소리를 가미한 데에는 함석헌의 영향이 컸다. <사상계>의 첫 필화사건의 주인공인 그는 1958년 8월호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6·25가 주는 역사적 교훈’을 게재한다. 10면에 걸친 이 글의 2절에서 함석헌은 “남한은 북한을 소련·중공의 꼭두각시라 하고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꼭두각시라 하니, 남이 볼 때 있는 것은 꼭두각시뿐이지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다. 6·25는 꼭두각시의 놀음이었다. 민중의 시대에 민중이 살았어야 할 터인데 민중이 죽었으니 남의 꼭두각시밖에 될 것이 없지 않은가?”고 반문한다. 당국은 대한민국을 ‘북괴’와 나란히 동일시하며 ‘꼭두각시’로 표현한 것이 국체의 부정이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그를 20일간 구속했다. 여기에는 이승만이 6·25 때 도망친 것을 임진왜란 때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간 것에 비유한 데 대한 괘씸죄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후 1959년 2월호에는 ‘무엇을 말하랴-민권을 짓밟는 횡포를 보고’라는 표제만을 내건 백지 권두언을 통해 이승만 정권의 폭정을 비판했고, 3·15 부정 선거 직후에는 장준하의 권두언 ‘자유의 나무는 피를 마시고 자란다’를 통해 4·19를 예비하고 있다. <사상계>는 자유당 정권의 부패를 일소하고 경제적 근대화를 향상시키는 것만이 공산화를 방지하는 길이라는, 반공주의와 결합된 근대화론을 설파하였다.

‘자유’의 승리로 의미화된 4·19는 이후 정치적, 사회적 혼돈 속에서 ‘빵 없는 자유’로 탄식되었다. 곧이어 5·16 쿠데타가 발생했다. 5·16을 기획하고 ‘혁명 공약’의 초안을 작성한 김종필도 <사상계>의 독자였다. 그는 한 회고에서 “4·19의 역사성을 철학화해서 근대화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 5·16을 결행했다고 술회했다.

군인들은 빵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사상계>의 근대화론과 결합시켜 그것을 정치적 수사로 전유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다. 박정희 시대는 ‘빵과 자유’를 대립시키며 ‘빵’의 선결적 해결을 제시한 ‘조국 근대화’ 구호를 통해 4·19의 성과를 자기화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축으로 엇갈리는 현대사의 평가는 어쩌면 4·19와 5·16을 둘러싼 ‘빵과 자유’ 담론 프레임의 연장은 아닐까?

4·19 이후 각계각층에서 억눌려 있던 의견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1961년 5월 남북왕래와 통일을 촉구하는 서울 시민학생들의 시위. 이때 군은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었다. 눈빛아카이브 제공
4·19 이후 각계각층에서 억눌려 있던 의견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1961년 5월 남북왕래와 통일을 촉구하는 서울 시민학생들의 시위. 이때 군은 쿠데타를 모의하고 있었다. 눈빛아카이브 제공
■ 4·19가 만든 책 - <광장>과 <흑막>

최인훈의 <광장>은 4·19의 상징이 된 책이다. 초판 서문에서 작가는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감격하고 있다. 함석헌이 남북한을 동일하게 ‘꼭두각시’로 명명하는 상호 인식을 언급한 까닭에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것을 생각하면, 남북한 모두를 거부하고 중립국 인도를 선택하는 전쟁포로 이명준의 사유와 행로를 다루는 이 소설의 서사는 ‘구정권’하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냉전 이데올로기의 주박이 강화된 박정희 시대에도 용납되기 어려웠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탈냉전적 시각은 4·19의 자유로운 사상적 지평에서만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런 시각이 <광장>을 80년대까지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잡게 했다.

4·19 직후 잠시 동안 베스트셀러의 지위를 누리고 금세 잊혀진 책도 있다. <흑막-압정 12년에 짓밟힌 민주역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 책은 신태양사가 간행해 오던 잡지 <실화>의 임시증간호로, 단행본과 잡지의 중간 형태인 일종의 무크지이다. 엮은이는 다시는 어리석은 백성이 되지 않기 위하여 “폭정 12년에 우리 주변에는 어떠한 흑막이 햇빛을 가리웠고 그 많은 사건의 내막은 어떠했던가를 알아야 하겠다”고 책의 출판 이유를 밝힌다. 이 책은 이승만 정권 12년 동안 말할 수 없었던 중요 사건에 대하여 제1부 ‘흑막’, 제2부 ‘내막’ 편으로 나누어 다루고, ‘해방 16년 주요 사건 일지’를 특별부록으로 첨부했다. 일간지 기자를 동원하여 한 명에 한 사건을 맡겨 총 56꼭지의 사건 기사를 정리했다. 사건의 경중과 무관하게 한 사건당 4면씩 동일한 지면을 배당하여 총 270면짜리 책으로 꾸렸다.

<흑막>은 ‘한현우와 송진우씨 암살사건’, ‘한지근과 여운형씨 암살사건’, ‘안두희와 김구씨 암살사건’ 등 해방기 이래의 정치테러로부터 시작하여 거창양민학살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진보당 사건, 사사오입 개헌사건 등 이승만 정권기의 굵직한 사건의 흑막과 내막을 폭로하는 기사를 순차적으로 게재하고 마지막 56번째 기사 ‘이승만과 이화장 새벽의 탈출’로 끝맺고 있다. 4·19 직후의 열기에 힘입어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1960년 6월15일 초판이 나온 지 불과 5일 뒤에 재판을 찍었으며, 2개월 만에 10만부를 돌파했다. 하지만 간행 두 달이 지나자 찾는 이가 줄어들었다. 정국이 혼란스러워지며 지난날 자유당 정권의 비행보다도 당면한 정국의 추이를 쫓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서서히 5·16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종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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