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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용기’ 시리즈의 씁쓸한 뒷맛…“열등 콤플렉스는 뭐든지 팔 수 있다”

등록 2015-07-20 19:07수정 2015-07-22 15:40

[울림과 스밈] 아들러 열풍 유감
일본 철학자이자 카운슬러인 기시미 이치로의 ‘용기’ 시리즈.
일본 철학자이자 카운슬러인 기시미 이치로의 ‘용기’ 시리즈.
지난주 어느 출판사가 한 백화점과 함께 열기로 했던 유명 외국 저자 초청 강연이 틀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취재에 나섰다. 출판사는 외국까지 날아가 저자의 승낙을 받아왔는데 백화점쪽의 무리한 추가 요구 때문에 틀어져 수천만원 비용을 오롯이 물어가며 단독 개최를 해야 하게 생겼다며 울상이었다. 양쪽 사정을 모두 듣고자 했지만 백화점쪽은 “왜 이걸 취재하느냐”고 반응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출판사와 백화점은 다시 협의를 시작했다. 백화점쪽에서 부랴부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보겠다며 연락해왔다는 것이다.

그의 ‘열등 콤플렉스’ 개념은
자기계발을 빌미로 한
소비문화를 긍정하는 쪽으로
더욱 폭넓게 응용돼왔다

다음달 방한할 저자는 아들러 심리학 책으로 유명한 일본 철학자이자 카운슬러인 기시미 이치로. 지난해 11월 국내 출간된 그의 책 <미움받을 용기>는 22주 동안 예스24 집계 종합 베스트셀러 1위, 교보문고 집계 상반기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했다. 글항아리의 <늙어갈 용기>를 비롯해 각종 ‘용기’ 시리즈가 쏟아져나왔고 기시미 이치로의 책만 국내에 10권 넘게 출간됐다. 대체 아들러가 누구길래 이 난리법석일까?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알프레드 아들러는 ‘상처 받은 내면 아이’에서 벗어나 누구나 변화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 운동을 하다가 1911년 결별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미국인들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이후 아들러는 <카네기 성공론>의 데일 카네기,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 등에 영향을 주며 ‘자기계발의 아버지’가 됐다.

미국인들은 그의 ‘열등 콤플렉스’ 개념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열등 콤플렉스는 열등감을 변명 삼아 머물러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은 음울한데다 ‘무의식’ ‘성욕’ 같은 어렵고 불편한 개념을 사용했지만 아들러의 이론은 ‘노력’ ‘용기’ ‘자기 의지’ 등을 강조해 대중이 받아들이기에 훨씬 쉬웠다.

그의 이론은 성형외과 시술에도 정당성을 부여했다. 1930년대 미국의 성형외과와 대중잡지는 이 개념을 수단 삼아 미용산업의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주름, 점, 이중턱, 매부리코 같은 노화나 특징까지 “기형이나 결함”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이다. 외과 수술로 외모를 고친 뒤 심적 고통을 극복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속속 미디어를 장식했다. 아들러 스스로도 이런 흐름에 협조적이어서 1936년 뉴욕 외과의사 맥스웰 몰츠의 책 <새 얼굴, 새 미래>에 “얼굴 기형은 행동에 매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열정적인 서문을 써주었다. 이에 미국 역사학자이자 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하이켄은 이렇게 말한다. “그 당시 열등 콤플렉스는 거의 모든 것을 팔 수 있었다.” 열등 콤플렉스는 한국 미용 성형의 의학적 위상을 정립하는 데도 적극 활용되었다.(엘리자베스 하이켄 <비너스의 유혹>, 태희원 <성형>)

이유진 기자
이유진 기자
기시미 이치로는 아들러가 ‘자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충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러의 열등 콤플렉스 개념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 계발을 빌미로 한 소비 문화를 긍정하는 쪽으로 더욱 폭넓게 응용돼왔다. ‘의지와 노력만이 너의 처지를 구원할 것’이라고 명쾌하게 요약된 그의 충고는 오늘날 자본주의 최전선, 신자유주의의 자기개조 명령과도 다르지 않게 소비된다. 이런 우려를 유념해서 본다면, 지금의 아들러에 대한 ‘이상 열풍’은 앞으로 좀더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시미 이치로 강연을 둘러싸고 벌어진 웃지못할 해프닝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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